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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15. 2021

차를 타고 다닐땐 놓쳤던것 들을 만난다.


지난주 내내 우리 집 차는 집 앞에 얌전히 세워 두고 남편과 함께 독일의 전차 StraßenBahn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덕분에 조금 더 부지런해졌고 시간에 맞춰 티켓을 끊기 위해 마치 작전회의 라도 하듯 남편과 수시로 머리를 맞대었다.

우리 동네 전차와 버스는 한 사람당 편도 1장이 4 정거장 이내의 짧은 구간은 1유로 90 전체 구간은 3유로 한다 한번 쓰면 끝! 그러나 믈티 티켓이라 해서 8유로 짜리 한 장으로 24시간 동안 성인 둘에 아이 셋 까지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티켓이 있다. 말하자면 그 한 장으로 가족이 다 움직일 수 있는 원데이 티켓이다. 그런데 요것이 금요일 오후 14시 이후부터는 24시간이 아닌 일요일 밤까지 주말을 통째로 쓸 수가 있다.

요거이 전차 안에 있는 기계에서 선택하고 요금을 지불하고 뽑은 믈티티켓 9월 15일 13시 32분 에 티켓팅 되어 24시간 유효

그래서 금요일 아침 둘이 3유로짜리 티켓 하나씩 끊고 출근을 했다가 퇴근할 때 8유로짜리 하나를 끊으면 삼일 내내 쓸 수 있는 것이니 그게 더 훨씬 효율 적이다.

그것을 위해 매일 우리가 병원 외에 다녀야 할 곳들의 동선과 시간 그리고 거기에 맞는 티켓의 구성을 두고 우리는 둘이 앉아 작전회의를 했다.

사실 말이 작전회의이지 남편은 그런 계산은 빠른 사람이다 이미 통밥이 나와 있다는 말씀! 워낙 유학생 시절부터 요리조리 아끼고 조금이라도 싸게 구입하는 것에 탁월한 소질을 보이던 사람이다. 마트 세일 광고 전단지를 연애편지 들고 다니듯 했다고나 할까 여하튼 세일 김 선생의 갈고닦은 옛 취미가 빛나던 한주였다.

가방 하나씩 둘러메고 뛰어가서 전차를 타려니 마치 먼 옛날에 둘이 학생이었을 그때로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물론 고거 뛰었다고 숨이 턱까지 차서 헉헉 대고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무릎은 어머 이것이 뭔 일 이래니! 하며 다른 말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전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자동차로 약 20분 에서 25분 정도 걸린다. 신호등에서 번번이 빨간불에 멈춘다거나 가는 길 어딘가에 공사가 시작되어 돌아가시오 표지판을 만나지 않는다면... 또 갑작스레 나타난 청소차가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않다면 그 정도 걸린다.

그에 비해 전차 정거장은 우리 집 바로 앞에 있지는 않다. 길 건너서 골목길로 들어서 가파르진 않지만 언덕을 올라 걸어 내려가면 우리 동네 공대 건물들이 나오고 대로변 이 나온다. 거기까지 가야 탈 수 있다. 뛰듯이 걷는 다면 약 10분 걸린다.

우리가 타야 할 3번 전차는 아이들 등교 시간이 맞물리는 오전 8시 이전에는 5분에서 10분 간격 그 이후에는 15분 간격으로 다닌다.

그런 3번을 타고 종점에서 내려야 하니 전차를 타고서도 30분 이상이 걸린다.

한마디로 전차 타고 병원까지 출근하려면 빠르면 40분 정도 걸리는 셈이다.

우리가 허벌라게 뛰듯이 걸어 전차 정거장 건너편에 도착했을 때 3번이 딱 서있고 누군가 그전차를 발 걸어 세워 두고 있는 사이 우리가 안전하게 건널목을 건너 슬라이딩하듯 전차에 오른 다면 말이다.


우리는 집에서 조금 서둘러 출발하고 여유 있게 그 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골목길 구석구석 퍼져 가는 포근한 햇살을 마주 하며 길을 걸으면 그 햇살 받아 유리알 같은 아침이슬이 (유사품 주의!) 만져질 듯 초록의 나뭇잎에 조롱조롱 맺혀 있다.

그 맑음은 우릴 무아지경으로(술 안 깸 아님 주의!) 인도한다.

또, 한입 베어 물면 말캉한 단물이 넘치게 생긴 보라색 자두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 위를 몰려다니며 수다 떠는 소녀들처럼 이 가지 저 가지 옮겨 다니며 분주히 오가는 새들의 소리를 음악 삼아 들으며 걷는 것도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혹시 그 지저귐을 사람의 말로 통역하면 지들끼리 이런 말들을 나누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머어머 얘들아 저 아줌마 잠 깬 지 얼마 안 됐나 봄! 눈이 게슴츠레함”

지지배배...

“아냐 아냐 원래 저렇게 생긴 눈깔이다에 내 쒝쉬한 부리를 걸 수 있음”

“얘들아 얘들아 니들 그 옆에 아저씨 뛸 때 배는 봤어? 대에박! 뱃살로 줄넘기하는 줄”

지지배배....

우리는 한들한들한 가냘픈 코스모스가 아니라 떡 벌어지게 튼실한 독일 코스모스 곁을 지나치며 아 이제 가을이구나 를 눈으로 담으며 전차 정거장으로 향한다. 자동차를 타고 출근을 했더라면 만나지 못할 장면들 이다.

어쩌면 우린 바쁘다는 핑계로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느라 주변에 숨 쉬고 있는 작지만 반짝이는 것들을 놓치고 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간혹 자동차 바퀴를 갈아 야 한다거나 차를 정비해야 할 때면 하루 이틀 버스나 전차를 타고 다녔다.

무면허 인 나는 남편과 각기 다른 시간에 출근을 해야 할 때라 던가 (상상이 실제 상황이 되는 순간 )

각자 볼일이 따로 있어 각각 움직여야 할 때는 걷던가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렇게 남편과 둘이 일주일 내내 함께 전차를 타고 오간 것은 올해 대학을 졸업한 큰아이가 유모차를 타고 있던 그때 이후로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20년도 훨씬 전인 그때에 비해 우리의 피부는 쳐지고 흰머리는 늘고 체력은 떨어지고 체중은 늘었다.하지만 이쁜 것을 보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갬성은 그대로요 전차 놓칠까 순간적으로 빨리 뛸 때의 순발력은 그때 못지않다.

뛸 때 양옆으로 흔들리는 뱃살을 복근이라 우기며 힘주어 뛰다 보이 자연스레 배출되는 가스 소리에 박자 맞추며 이 정도면 환경보호법에 걸리지 않는다며 아무도 못들었을 것이라 여기는 뻔치는 그때보다 훨씬 업그레이드 되었고 말이다.

오늘도 우리는 저 멀리서 들어오는 3번 전차를 보며 뱃살을 흔들어 대며 뛴다.

들리지도 않을 전차 기사 아저씨에게 "헥헥 아저씨 스톱! 잠시만 기둘려요 같이 갑시다"를 외쳐 대며...

그리고 진짜 이루어질 것 같은 주문을 외우며...

"살아 살아 내 살들아 욜라 뛰는 동안 알아서 공중분해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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