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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05. 2022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자주 간식을 찾는 헬가 할머니


혼자 있는 시간이
아직 너무 이상해서..,


얼마 전 독감 예방 주사 접종 때문에 왕진 환자 전체를 한 바퀴 돌며 진료 시간 외에는 계속 왕진을 다닌 주가 있었다.

그때 만난 헬가 할머니는 그간 체중이 많이 느신 것 같아 보였다.

젊은 사람들도 마찬 가지이지만 특히나 노인들은 체중이 갑자기 줄어도 늘어도 위험 신호일 수가 있다.


왕진 환자 분들은 대부분 고령에 질환 몇 가지씩은 가지고 계신다. 평소 다니시는 것도 용이치 않은 분들이라 날씨가 추워져서 정원 산책도 쉽지 않은 겨울철 이라던가 너무 더워서 집안에서도 수분을 많이 잃게 되는 여름에 조금씩 체중의 변화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갑자기 늘어난 몸무게는 가장 먼저 다리 등에 물이 찬 것이 아닌가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해서 남편은 헬가 할머니의 팔다리 구석구석을 검사 확인해 보았고 다행히 물이 찬 것은 아니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조금 쑥스러운 듯 웃으시며 "독터(닥터의 독일식 발음) 내가 요즘 들어 부쩍 간식을 먹어요"

"그러니까 엄마, 손주들 주신다던 젤리를 그렇게 많이 드시면 어떻게 해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고민 이라며 옆에 있는 딸내미가 타박을 한다.


내가 "왜 그렇게 간식을 찾으세요?"라고 할머니께 여쭸더니 헬가 할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혼자 앉아 있으려면 이상해요 그래서 자꾸 뭐라도 입에 넣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러실 것이다 왕진 오는 우리도 이렇게 이상한데....


헬가 할머니는 얼마 전 할아버지와 사별하셨다.

두 분 다 왕진 환자 셨지만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지병이 조금 더 위급한 경우가 많아서 우리가 왕진을 나가는 날이면 언제나 할아버지, 할머니 순으로 진료를 봐 드리고는 했다.

집으로 왕진을 가는 것이어서 그 집 문을 열고 들어 가면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나고는 한다.

언제나 갈색 소파 가운데 다리를 비스듬히 펴고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말이다.

우리도 이렇게 할머니만 따로 진료를 해 드리는 것이 이상한데...

평생 함께 해 오신 할머니에게 할아버지의 빈자리는 얼마나 클지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건물은 작은 빌라처럼 되어 있어 맨 아래 딸이 살고 중간에 아들이 살고 맨 위층에 할머니가 사신다.

하루에도 수시로 딸과 아들이 번갈아 가며 할머니를 보살펴 드린다.

게다가 딸이 오랜 시간 부모님을 살펴 드리고 있었던 터라 응급 상황에 있어서도 대처를 잘한다.

그러나 아무리 야무진 딸이라 해도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 할머니와 하루 종일 있어 드릴 수도 없고 손주들 오면 주시겠다고 해서 사다 둔 잴리들을 계속 꺼내 드시니 방법이 없었던 거다.


그래서 우리는 당분간 집에 간식거리들을 일체 사다 두지 말고 다른 동네 사는 형제들과도 이야기해서 가족들이 조금 더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 드리는 게 좋겠다고 당부했다.

계속되는 간식으로 당뇨까지 오게 되면 안 되는 일이고 외로움에서 비롯되는 심리 적인 것일 테니 가족들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시기 이기 때문이다.

주택가 한가운데 작은 빌라들과 나라히 위치한 장의사
공동묘지와 마주 보고 있는 빌라들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공동묘지가 주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에게는 조금 생경하지만

독일은 동네 주택가 한가운데 공동묘지가 있고 장의사 가 있다.

길 건너 묘지가 마주 보이는 곳에서 사는 이들도 많고 바로 옆에 운구 차가 주차되어 있는 장의사 옆에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것에 집 값이 오르내리 지도 않으며 꺼려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도 없다.


독일 친구 중에 한 명은 주방에서 공동묘지 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산다.

어느 때는 설거지를 하려고 주방에 서있으면 장례식 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 친구는 일상이라는 듯 자연스레 꺼낸 이야기였지만 나는 사실 내심 놀랬다.

집 근처에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도 그런데... 주방에서 장례식이 보인다니 말이다.

이렇게 우리와 너무 다른 면을 마주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서로 다른 문화는 제쳐 두고라도 우리 인생 가운데 삶과 죽음은 언제나 공존한다는 것을 평소 독일 사람들 같이 무뚝뚝하고 덤덤하게 그들만의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게 아닐까?



누구에게나 죽음으로 인한 가족과의 이별은 갑작스럽다.

그 황망함을 받아들이는 데는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오랜 세월 독일에서 살고 있는 남편과 나는 두 분 아버님을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 보내 드려야 했다.

전화로 날아든 부고 소식에 비행기를 타고도 하루가 걸려야 도착할 수 있었던 고향.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야 했던 장례절차는 이별을 받아들일새 조차 주지 않았다.

정신없는 가운데 한국의 가족들과 지인들 덕분에 큰일을 무사히 치르고 나서도 이것이 현실인지 받아들이기까지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던 우리는 제법 긴 시간이 지나서야 엉켜 있던 이별의 조각들을 마음에서 조금씩 떠나보낼 수 있었다.


아직도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시간에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에 가슴이 철렁해 지고는 한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장례식 장면이 나올 때면 울컥 해져서 눈가가 촉촉해지고 코끝이 쌔 해진다.

시간이 지난 다고 해서 가족을 잃은 슬픔의 크기가 달라지거나 그리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단지 살아가면서 슬픔의 모양과 그리움의 빛깔을 조금 달리 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순간순간이 너무 버거워질 테니 말이다.


To. 애정 하는 독자님

지난주 정말 믿을 수 없는 비극이 한국에서 일어났습니다.

독일에서도 시간대별로 저녁 뉴스 시간에 보도되었지요

아직도 이게 진짜 대한민국 서울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싶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소리가 반복되는 한 주였습니다.


시간도 다른 머나먼 타지에서 사는 저도 그런데 한국에… 서울에…. 살고 계신 분들은 어떨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유가족들은 어떠실까 감히 어떤 위로의 말씀조차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거리에서 일어난 참사로 희생된 우리 아이들 또래의 수많은 젊은이 들....

그 어떤 단어로도 이 불행한 일의 안타까움을 표현할 수 없었지요.

무언가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켜도 마음이 복잡해져서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더군요.


한동안 유가족분들의 시간은 아마도 그날 그 자리에 머물러 계실 겁니다.

정부와 사회 그리고 애도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지금만이 아니라

유가족들이 살아내야 할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도 관심을 갖고 위로하며 이 아픈 시간을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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