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전 정기 왕진
이번주는 왕진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날도 덥고 힘은 들지만 여름휴가 가기 전에 이렇게 왕진 환자들을 전체적으로 한 바퀴 돌고 나야 안심이 된다는 우리 병원 원장쌤 뜻에 따라
오전 진료 후 왕진 가방 다시 챙기느라 바쁘다.
우리 병원은 원래도 월요일 수요일 오전 진료 후에는 왕진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평소 에는 주로 응급한 환자들 위주로 다닌다.
그러나 계절별 분기별로 대대적으로 정기 왕진을 돌 때가 있다. 봄에는 부활절 연휴 전에 그리고 여름휴가 전 가을에는 독감 예방주사 들고 또 겨울 에는 크리스마스 휴가 전 되겠다.
모든 왕진 환자들을 빠짐없이 한 바퀴 돌고 필요하신 약 처방전도 가져다 드리고 여름휴가 일정과 우리 대신 땜빵 진료 해 드릴 동료 병원들도 알려 드리고 몸상태도 체크해 드리고 혈액 검사도 하고 꼼꼼하게 진료하고 나면 비로소 할 일을 다 했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노인들의 내일은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5년 전에 몇 페이지가 넘어가던 왕진 환자 진료 리스트와 새로 리스트 업 된 한 장짜리 리스트는 숫자 상뿐만 아니라 심정적인 차이가 많다.
왕진은 집이나 양로원 또는 요양원 등의 환자가 계신 곳으로 의료진이 직접 찾아 가는 것이라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 하고 느낌이 조금 다르다.
해서 리스트업 할 때마다 지워야 할 환자 이름 들고 한참을 머뭇거리고는 한다.
그 환자의 생전 모습과 목소리가 눈에 선 하기 때문이다.
왕진 환자들은 주로 고령의 기저질환을 가진 분들이다. 질환의 경중에 따라 다르지만 왕진 환자라 해서 모두 누워 계신 분들만 계신 건 아니다.
여기서는 Rollator 롤라토아 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할머니 유모차라 부르는 보행보조기를 밀고 아주 가까운 곳은 다닐 수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왕진을 가는 날이면 어찌나 반가워들 하시는지 어느 때는 마치 시골 벽촌에 의사 도 병원도 없는 곳에 의료봉사를 나온 느낌이 들고는 한다.
환자들은 가지고 계신 상황과 형편에 따라 계신 곳도 각기 다르다.
늘 살던 주택에 계시지만 자식들이 위아래로 살고 있어 보살핌을 받고 계신 분들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우리로 하면 아파트 같은 보눙에 홀로 사셨었는데 더 이상은 혼자 계실 수가 없어 양로원에 입소하신 분들도 있다.
독일에서도 양로원과 요양원 그리고 요양병원도 그 종류가 아주 다양하고 주거 형태 또는 복지 상황이 천차만별이다.
시에서 보조를 많이 받는 곳부터 자비가 많이 드는 곳들 지병의 경중에 따라 나뉘는데…
독일 노인들도 정말이지 웬만하면 자신이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싶지 양로원이나 요양원 또는 요양병원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번주 우리가 왕진을 다녀온 곳 중에 한 곳은 독일 노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주거형태의 양로원이었다
우선 이곳은 각각 부부 또는 혼자 기거할 방들이 독립되어 나뉘어 있는 곳이다
동과 횟수로 나뉘어 있어 얼핏 보면 작은 빌라 같기도 하고 학생 기숙사 같아 보이기도 하다.
바이겔트 할아버지 할머니는 두 분이 계셔서 그런지 밖에서 보는 것보다 안은 넓게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
우리가 들어서면 입구 바로 옆이 욕실이고 주로 진료를 해드리는 곳은 작은 거실 그리고 그 옆으로 침실과 간단한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주방이 나란히 있다
그 안의 시설은 아기자기한 작은 아파트 같다.
그리고 식사 때가 되면 커다란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시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그 안에 있다.
어떻게 보면 노인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 같다고나 할까?
집집마다 집 앞에 예쁘게 꾸며 놓으신 것도 그렇고 뒷정원과 가는 길마다 어여쁘게 가꾸어 놓은 것들도 여느 양로원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러나 이곳은 대기자 명단이 길어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왕진을 가는 바이겔트 할아버지 할머니 댁은 C동 맨 끝에 집이라 가면서 이 집 저 집을 지나게 되는데 한결 같이 집 앞에 아기자기 하게 꾸며 두고 문 앞에 롤라도아 가 자동차 주차 되듯 주차가 되어 있다.
그 모습이 재밌어서 슬며시 웃음이 났다.
보행보조기가 운신이 쉽지 않은 노인 분들에게 자동차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분들이 식사를 하시러 앞쪽 건물 식당에 가시거나 춤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하러 가시려면 그 길을 밀고 다니셔야 하니 되도록 계단은 없이 오목조목 만들어진 작은 길 들이 오솔길 같기도 해서 정스럽다.
바이겔 할아버지는 아담한 키에 동그란 얼굴에 안경을 쓰셨고 머릿숫은 많지 않지만 93세라고는 느껴지지 않게 기억력도 좋고 정정하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보다 조금 더 아담 하시고 곱슬머리에 예쁜 핀을 꼽고 계실 때가 많은 90세 시다.
그런데 이분들 티카타카 하시는 것을 보면 그 댁 창틀에 놓인 아담한 한쌍의 인형처럼 그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귀엽다는 말이 자꾸 떠오르고는 한다.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여기저기 아프신 곳도 많다. 특히나 할머니는 언제나 무릎도 아프고 어지럽고 힘도 없고... 의 레퍼토리를 시작하신다
그런 할머니의 투정을 듣고 있노라면 그 모습이 그리 밉게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 옆에서 내내 웃고만 계신 할아버지 표정이 늘 '진짜 못 말리게 귀엽네!'라는 말을 하고 있어 보는 우리도 덩달아 웃음이 나서 그런가 보다.
징징 거리는 걸 귀엽게 하는 것도 재주이지 싶다.
그분들과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이분들이 90이 넘으셨나? 싶을 만큼 지난번 왕진 때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들 까지도 세세이 다 기억하신다.
올여름도 이렇게 잘 지내시며 보내면 좋겠다.
우리 병원 여름휴가 일정을 말씀드리며 다른 때 보다 길게 다니오니 필요하신 약들은 미리 신청하시라는 이야기를 해드렸고 또 대신 진료 해 드릴 동료 병원들은 넉넉히 구해 놓았으니 염려 마시라는 말씀도 드렸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처음엔 "아유 그렇게나 오래 가요?" 라며 특유의 목소리로 툴툴 대시더니 진료가 끝나고 문을 나설 때쯤 되니
"두 분 모두 여름휴가 건강히 잘 다녀와요 그리고 또 왕진 와줘요!"
하신다.
나는 씩씩한 목소리로 "네 저희 건강히 잘 다녀와서 또 왕진 나올게요"
라고 대답했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와 큰 차이 없이 건강한 모습의 두 분을 오래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할머니의 귀여운 투정도 두 분의 티키타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