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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25. 2020

응급했던 토요일의 왕진

그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오래간만에 아시아 식품 점에서 사 온 냉동 꽃게에 쑥갓까지 넣어 맛난 꽃게탕을 보글보글 끓이고 있을 때였다. 이제 한소끔 만 더 끓어오르면 담아서 먹어야지 하고 있던 타이밍에 남편의 핸디가 요란스레 울려 댔다.


금요일 저녁 7시 독일에서는 이미 주말이 시작된 시간이며 공적인 전화는 물론 이려니와 친구들과 지인들조차도 웬만해서는 개인적인 전화를 하지 않을 시간이다. 게다가 모르는 번. 호. 다. 뭘까?

안 그래도 늘어가는 코로나 때문에 이번 한주는 특히나 전투적으로 길었다.

여러모로 심신이 지친 주말 그것도 하필 저녁 식사 시간을 방해? 받는 데시벨 높은 벨 소리에 슬슬 짜증이 나려고 했다.


그런데...

진짜 급한 일이 아니었다면 울리지 않았을 시간의 정체불명 전화벨 소리의 근원지는 임상병리센터였다.

음? 임상병리센터? 우리 병원에서 환자들의 혈액검사를 비롯한 염증 검사, 코로나 검사 등등 많은 검사를 의뢰하는 곳이다.

그곳은 카셀에 있는 수많은 가정의 병원 들뿐만이 아니라 카셀 인근의 흉부내과, 심장내과 , 피부과 등의 전문병원들 까지 모두 담당하고 있다. 진료 시간도 아닌 주말 저녁에 병원 전화도 아닌 병원 원장의 개인 핸디로 전화가 올 정도라면 급한 일인 거다. 그 샐 수 없는 개인 병원들 중에 많고 많은 원장들 개인 핸디 번호를 모두 알고 있지는 않을 터인데 남편의 번호를 어느 경로로 어떻게 알아냈는가는 차후 문제다. 이건 분명 주말을 넘기면 안 되는 응급한 사안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통화 중에 남편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환자의 이름은 낯익다. 낮에 진료를 오셨던 괜찮아 할아버지다.

괜찮아 할아버지... 우리끼리는 그 환자를 그렇게 부른다.

여든여덟의 할아버지는 터어키 분으로 독일어를 거의 하지 못하신다. 비록 의사소통은 잘 되지 않으나 그럼에도 사람 좋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분이다.

만약 산타 할아버지가 실존한다면 이런 인자한 얼굴이 아닐까 싶을 만큼 따뜻한 웃음.
병원에서 처방전 받고 가시다가 다시 오셔서 주머니 속에 사탕 몇 알을 나누어 먹으라고 손에 들려주시던 모습은 시골에 계신 우리네 할아버지의 정스런 모습 그대로 다.


가정의 병원인 우리 병원에는 직원 네 명 중에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님 고향이 터어키 여서 두언 어가 모두 원활한 직원이 둘 있다. 덕분에 할아버지는 그 직원들이 모두 나오는 화요일에 우연히 병원에 오시게 되면 이쪽을 보나 저쪽을 보나 말이 통하니 세상 행복한 표정이 되시곤 한다.

그런 날 통역해 달라고 하고 할아버지의 안부를 물으면 괜찮아, 다 괜찮아 를 연발하시고는 하는데 사실 할아버지의 건강 상태는 그리 괜찮지가 않았다.


몇 달에 한번 처방전만 받아 가시는 할아버지에게 작년에도 남편이 건강검진을 권유해서 혈액검사랑 모두 해 드렸었는데 그때도 병원에 입원을 하셔야 할 만큼 상태가 좋지 못했다.

가정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남편은 원래 신장내과 전문의다. 개인병원을 개원하기 전까지는 대학병원 과장으로 수많은 신장내과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것도 심각한 케이스 들 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남편의 눈에 낮에 진료 오셨던 괜찮아 할아버지의 상태는 절대 괜찮지 않았다. 진료 시간에 남편은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받으셔야 한다고 했다.   

의료인이 아닌 누가 보아도 낯빛도 좋지 않으셨고 걷는 것도 예전보다 훨씬 힘든 상태 셨으며 얼마 전 에는 3시간가량 방바닥에 쓰러져 계시기도 했다고 했다.


문제는, 괜찮아 할아버지는 그 상황에도 괜찮다고 웃고만 계셨고 할아버지가 그 지경이 되시도록 병원 한번 제때 모시고 오지 않았던 아들은 귀찮음이 역력한 얼굴로 오늘 이 검사를 다 해야 하느냐 물었다. 자기돈 내서 검사받으라는 것도 아니고 보험처리 다 되는 검사를 그것도 필요하니 받으셔야 한다는데 그 아들의 반응은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보통, 이런 경우 모시고 온 자식들의 대부분은 걱정을 가득 담아 무엇을 더 해 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할아버지에게 그런 아들이 있었는지 조차 몰랐다.그렇게 아버지의 건강 상태에 무관심 한 아들에게 남편은 "사람이 세 시간 동안이나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 꼭 검사받고 가셔야 해요"라며 강경하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아들은 마지못해 그러마 하고 병원 한 구석에서 잘 걷지도 못하는 아버지가 검사받느라 이방 저 방 왔다 갔다 하는 동안 핸디만 쳐보고 앉아 있었다.

보고 있던 우리도 속으로 정말 저런 것도 자식새끼라고... 하며 진짜 뒤통수를 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혈액검사에서 나온 수치들은 심각했다. 정상 적인 수치가 50 인 것에 반해 할아버지는 5만이 나왔고 또 다른 수치는 0.5가 정상 수치인데 4.8이 나왔다.

오직이 응급했으면 임상병리센터 에서 긴급히 연락을 해 왔을까 를 입증하는 숫자였다.

우리는 괜찮아 할아버지 댁 근처에 살고 있는 우리 병원 직원에게 급하게 연락을 취해 전후 사정을 이야기했다. 퇴근 후에 연락은 예의가 아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우리 직원도 이해를 해 주었고 무엇보다 우리 병원 진료 카드에는 할아버지의 보험 회사에 기록되어 있는 주소가 전부이니 연락을 드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그 아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우리 직원이 주말에 할아버지 댁에 직접 방문하는 수고도 마다 하지 않았건만 그 아들에게 연락이 온건 그다음 날인 토요일 아침이었다.

남편은 그 아들에게 혈액 검사 내용이 워낙 좋지 못해 빨리 할아버지를 대학병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지금 우리 병원에 들러 입원하실 때 필요한 서류를 해서 그 댁으로 왕진을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 아무 생각 없는 아들이 그럼 대학병원으로 당신이 모시고 갈 거냐고 물었다.

자기 아버지 때문에 주말에 의료진이 자기네 집으로 왕진을 해 주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게 무신 호강에 겨워 요강 깨는 소리인가?

빡치는 말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예의 그 차분하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건 아들인 당신이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은 환자가 입원하실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진료도 없는 토요일 아침 일찍 불 꺼진 병원으로 출근했다.

정말 싸가지가 바가지인 아들을 보면 응급차 불러서 병원에 가던 말던 알아서 하라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런 상태의 환자를 보고 그냥 있을 남편도 아닐뿐더러 괜찮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안도와 드릴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 팩스기에는 어제저녁 급하게 연구소에서 날아든 혈액검사서 들이 연거푸 걸려 있었다.

그 검사서 들과 종합병원에 입원할 때 환자가 들고 가야 하는 소견서를 쓰고 남편은 본인이 예전에 근무했던 대학병원 응급센터로 전화해서 직접 환자 입원 신청을 다.

워낙에 환자 상황이 응급이라 의사 소견서만 있어도 지금 상황에서 입원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환자가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고 치료 들어가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서였다.

우리는 그 싹퉁머리 없는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왕진을 갔다.

왕진을 나가고 보니 괜찮아 할아버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건물에 살고 계셨다. 예전에 우리 병원의 다른 환자 일로 왕진을 나갔던 적이 있던 곳이었다.


우리로 하면 빌라 같이 생긴 3층짜리 건물은 층마다 양쪽으로 두 집이 산다.

예전에 다른 환자는 아마도 그 집은 2층이었던 것 같은데..

괜찮아 할아버지의 성함이 붙어 있는 초인종을 누르니 어느 아주머니가 나와 건물의 출입문을 열어주며 시아버지는 꼭대기 층에 살고 계신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계단 많은 3층 꼭대기라.... 나이 드신 분이 사시기에는 힘든 곳이다.


주말 아침부터 운동 이라도 하듯 빠른 걸음으로 헉헉 대며 계단을 올라가니 양쪽으로 두 개의 집 모두 이름표가 붙어 있지 도 않았고 문이 열려 있는 곳도 없었다.

왕진을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들은 이미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 있다 했는데 나와 보지도 않고 문도 열어 놓지 않고 있으니 어느 집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몇 분 동안 왕진 가방 들고 복도에 서 있는데 그중에 한집에서 청소기 소리가 요란히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분명 그 반대편 조용한 집일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급히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이 상황에 청소를 하고 앉았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막 반대편 집 문에 초인종을 누르려고 하던 순간 이였다.

뜻밖에도 청소기 소리가 나던 집에서 문이 열렸다.

그러나 그 이유는 그 집에 발을 디딘 순간 바로 알 수가 있었다.


문이 열리고 안내된 할아버지의 방 창문은 밖으로 크게 열려 있고 침대에 간신히 기대어 앉아 계신 할아버지는 생각보다는 덜 했으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터어키 말로 우리에게 뭐라 뭐라 하시면서 자꾸 탁자 위에 있는 물컵을 가리키셨다.아마도 손님이 왔으니 이와 중에도 대접을 하고 싶으셨던가 보다. 집이 얼마나 엉망이었던지 방금 치우다 만 것이 빤한 할아버지 방에서 멀뚱이 서있던 아들에게 입원 서류들을 건네주며 남편은 다시 한번 할아버지의 상태를 체크했다.그리고  아들에게 단호히 경고했다.

"지금 당장 입원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주말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물론 환자의 상태가 분초 싸움을 해야 할 만큼은 아니지만 이대로 두고 주말을 넘긴다면 투석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은 혹시나 그 아들이 주말을 넘기고 병원으로 모시고 갈까 염려되어 일부러 세게 이야기한 거다. 그런데 남편의 그 초강수가 먹혔다.

큰 병원에 입원하셔야 한다고 하니 의사 더러 자기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갈 거냐고 묻던

개념 없는 아들이 의사가 진료 없는 주말에 뛰어 와 줄 정도면 얼마나 한 일인지 사태 파악이 안 되던 아들이 그 말에서야 눈이 동그래 지며 "돌아 가실 수도 있다고요?"라며 묻더니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 단 하나다.독일은 의료보험에서 환자 돌봄 비용을 신청해서 받을 수가 있다. 그것으로 전문 간병인을 신청할 수도 있고 요양병원에 보내드릴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아들인 본인이 한다고 하고 돌봄비용을 착복? 하는 경우 그거다.

그래서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것은 귀찮고 싫지만 돌아 가시는 것만은 막아야 하는 그런 상황인 거다.

우리가 개인병원을 하며 이런 경우를 처음 만나 보는 것은 아니다. 더러 있다 그러나 이런 부류 들은 만날 때마다 화나고 혈압이 오른다 그래서 정말 이지 상대하고 싶지 않다.

저런 자식도 있는게 나을까?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그저 손님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 하시는 괜찮아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께 알아듣지 못하실 지라도 병원 잘 다녀오세요 하고 인사드리고 속으로는 꼭 다시 건강해지세요 라는 말을 담아 웃어 드렸다.


왕진을 끝내고 돌아 나오는 길...

우리는 가을 색을 입은 낙엽들이 거리마다 가을을 물들이고 있는 것을 눈으로 으며 다행이다 싶었다.

비록 우리의 귀한 주말의 반을 나누어 드렸지만 그래도... 괜찮아 할아버지를 도와 드릴수 있었음에 말이다.

우리가 왕진을 가 있던 상황에도 아버지가 위급한 상황에도 전화로 마누라와 싸워 대던 저런 개차반 같은 아들과는 상종 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내년 가을에도 할아버지의 괜찮다 라는 말을 더 듣고 싶다. 그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다는 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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