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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02. 2023

독일 개인병원의 특이한 시스템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Vertretung이라 쓰고 땜빵이라 읽는다.


독일에서 살다 보면 페어트레퉁 Vertretung이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뜻은 누군가를 대신해서 업무를 행하는 것을 일컫는다. 가령 어느 날 학교 교사가 갑자기 병가를 냈다.

아이들 수업을 다른 선생님이 대신해 주는 것을 Vertretung이라고 한다.

내식으로 직역하자면 땜빵을 말한다. 국어사전에 땜빵을 찾아보니 남의 일을 대신하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되어 있었다.

나는 속된 사람이라 그런지 속된 말이 입에 촥촥 붙어 좋다.

독일식 땜빵인 Vertretung 은 비단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거쳐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병원 같은 개인병원이 몇 주씩 문을 닫고 여름휴가를 간다거나 의사나 간호사 의료진들이 코로나 또는 감기에 걸려 병원 문을 열 수가 없다던가… 하는 수많은 이유로 병원 들은 서로 간에 땜빵을 해준다. 이때의 Vertretung 은 말하자면 서로 간의 품앗이 진료 인 셈이다.


우리 병원은 요즘 3주째 다른 동료 병원들 4곳을 땜빵 진료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의 우리 병원 환자들에 다른 병원 환자들 까지 더해지니 바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4군데 병원의 환자들이 몽땅 우리 병원으로만 몰려오는 것은 아니다.

보통 이렇게 2주 3주 병원 문을 길게 닫을 경우..,

독일 개인병원 들은 최소한 한두 군데 또는 서너 군데 자기네 병원 환자들의 진료를 대신해 줄 Vertretung 병원들을 섭외해 두기 때문이다.


아무 병원이나 문 열린 데 가면 되는 게 아닌가?


독일에서는 아무 병원이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독일 의료시스템은 가정의 병원을 중심으로 해서 주치의 시스템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이하게도 독일 개인 병원들은 마치 아이들 학교처럼 각병원마다 그 병원 환자들이 따로 있다.

때문에 개인 병원에 처음 진료 예약을 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 가장 먼저 묻는 것이 우리 병원 환자 세요? 또는 저희 병원에 오신 적이 있으신가요? 등이다.


오래전부터 독일에서는 한두 군데 병원의 독점을 막기 위해 독일 의료보험 공단 약칭 KV에서 의료수가뿐만 아니라 환자수 리미트라는 것을 정해놓았고 철저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병원의 환자수가 정해진 선을 넘기면 그 병원은 더 이상 새 환자를 받기 어렵다. 중간에 이사 등으로 옮겨간 환자가 있다거나 돌아가셨다거나 하는 이유로 자리가 나는 것 아니고서는 말이다.

예전에 독일 온 지 얼마 안 된 한국 유학생이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독일 병원은 배가 불렀나 봐요 새 환자를 받지 않는데요 글쎄..

그 친구처럼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일 경우 독일의 의료시스템은 오해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종합병원에 있는 응급실이나 응급센터를 제외하고는 문 열렸다고 아무 병원이나 갈 수가 없다.

가정의 병원이나 산부인과 피부과 등 필요에 따라 환자가 개인병원을 선택할 수 있지만 모두 진료예약을 받을 수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독일 사람들은 이사를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중에 하나가 가정의 병원, 소아과, 피부과, 산부인과, 안과 등 병원 찾기다.


어느 병원 환자 인지 금방 안다.


독일 사람들은 그렇게 한번 병원을 찾고 나면 같은 병원을 꾸준히 다닌다.

물론 게 중에는 의료진들이 불친절하다, 병원에 전화가 잘 안 된다,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의사가 아는 게 없다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이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을 전문용어로 의사 쇼핑 한다고 한다.(요 이야기는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서 다음번에 날 잡아서 씁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다니던 병원을 수십 년간 다닌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땜빵 진료를 하다 보면 다른 병원 환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재밌겠도 병원마다 환자들 의 분위기가 각기 다르다.

마치 우리 어린 시절 크게는 이 학교 애들은 저렇고 저 학교애들은 이렇다 더라 하는 것처럼 또는 이반 애들은 이런데 전반 애들은 요렇다 뭐 그런 것처럼 병원마다 다른 환자들의 특징들이 있더라는 거다.

국적도 성별도 연령층도 다양하건만 이상하게도 그 병원 환자들은 대충 이렇더라 하는 특징...

아마도 환자들을 한 줄로 줄 세워 놓으면 어느 병원 환자인지 금방 알 수 있도록 말이다.


그중에서도 동료 병원 H의 환자들은 우리 사이에 진상 떨기로 그악명이 자자하다.

우리 병원 환자들도 만만치 않을 때가 있지만 H 병원 환자들은 그 레벨이 다르다.

그 저세상급 진상 떨기 중에 하나는 독일 사람들 특징 중에 인내심을 꼽는데

그들의 사전엔 인내심 기다림 이런 건 없다.

또 보통 환자들이 남의 병원에 땜빵 진료로 가게 되면 그 병원에서 없는 진료 시간 쪼개서 해 주는 것이니 자기네 병원에서 보다 훨씬 고마워하며 점잖이 기다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H병원 환자들은 다르다. 마치 맡겨둔 보따리 내놓으라 고 하듯 의료보험 카드 들고 와서 당장 진료를 받아야 하겠다 또는 약 처방전 내놓으라고 하는 스타일 들이라고나 할까?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그날도 H, M, S, B 네 군데 병원의 환자들과 우리 병원 진료예약 환자들이 겹쳐져 눈썹이 휘날리게 일하고 있었다.

한 50대 말 가량의 젊은? 여자 환자가 진료가 끝나 병원 문을 나서는 환자가 문을 열자 그 틈에 득달 같이 병원 안으로 들어와서는 의료보험 카드 던지듯 내어 놓고는 자기는 약 처방전 하나만 받아 가면 되니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환자 대기실도 꽉 차 있고 그러시라고 했다.

그런데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누가 병원 초인종을 마구 누르기에 (병원 문을 열어 줘야 환자가 들어올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코로나 이후 직접 사람이 나가서 환자를 들어오게 한다)

문을 열었더니 몇 분 전 그녀가 곱슬 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넘기며 삐딱한 시선으로 내게 물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요?"

나는 속으로 참을 인을 그리며 "잘 아시겠지만 오늘 저희 병원 4군데 병원 페어트리퉁이 (땜빵) 있어서 다른 날 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려요 기다리시면 의사 선생님 만나게 되세요 조금만 인내심을 가져주세요"

했다.

그러고 나서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다른 환자를 진료실로 안내하자마자 또 누가 병원 초인종을 미친 듯이 눌러 댔다.


또 그녀였다. 미간에 짜증을 잔뜩 얹은 그녀는 "아니 약 처방전 하나 해 주는 게 왜 이리 오래 걸려요

우리 병원 같으면 벌써 끝났을 일인데 나원참.."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나는 친절한 미소로 변장한 썩소를 날리며 이렇게 물었다.

"조금 더 기다리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녀는 표독스러운 눈길로 나를 째려보며 "아니요 그럴 리가요!" 했다.


나는 '어머나 잘됬어요!' 하는 표정으로 그녀의 의료보험 카드를 고이 돌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저희 병원 환자의 처방전 같았으면 벌써 끝났죠 그런데 환자분은 다른 병원 환자시라 저희 병원에 진료 기록도 없고 무슨 이유로 이 약들이 필요하신 지 의사와 면담도 없이 저희 마음대로 써 드릴수도 없고 기다리실 수도 없다 하니 방법이 없네요 다른 땜빵 병원으로 가시던가 다음 주에 H병원 문 열면 가셔서 받으세요"

나의 친절을 처바른 팩트 폭격에 뭐라 할 수도 없고 뿌루퉁하게 되돌아가는 H병원의 그 환자 뒤통수를 보며

나는 오래전 한국에서 들었던 노래 타타타가 떠올랐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로 시작 되는 그 노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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