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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16. 2022

독일은 개인병원들도 여름휴가를 간다

휴가기간엔 서로 간의 땜빵 진료


백수도 여름휴가 간다


독일에서 7월과 8월은 본격적인 여름휴가 기간이다

주마다 날짜가 조금씩 다르지만 이 기간엔 아이들 학교도 여름 방학이다.

독일 사람들에게 여름휴가란? 일 년 중 개인에게 꼭 보장되어야 하는 중요한 것이다.

그 시간을 통해 되풀이되는 일상과 직장생활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적립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동네 사람들은 여름휴가를 가기 위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휴가에 진심이다.

어디론가 휴가를 떠나는 이들도 있고 집에서 보내는 이들도 있겠지만 휴가는 쉼 자체로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백수가 휴가를 간다는 것이 백수가 과로사한다 처럼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병원일을 하며 경험한다.

환자들 중에 이런저런 이유로 일을 하지 않고 있어도 일명 백수 여도 휴가 때문에 진료 예약을 미뤄야 하는 경우들이 자주 있기 때문이다.


개인병원이 여름휴가를 가기 위해 해야 할 일들


독일에서 가정의 병원을 개원하고 네 번째 맞는 여름휴가 기간이다.

이렇듯 개인병원들도 여름이면 휴가기간을 맞이 하게 된다.

그것을 위해 개인병원들은 동료 병원들과 가급적 서로 겹치지 않는 휴가 기간 계획을 일 년 전부터 세워 둔다.

그래야 서로가 바꿔 가며 환자들을 대신 진료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우리 병원도 휴가 떠난 동료 병원들의 환자들을 대신 진료해 주느라 정신없었다.

너무 더워 마스크 쓴 입에서 용처럼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날도 여러 날 이였다.

동료 병원들의 휴가 날짜가 겹쳤던 어느 주는 여섯 군데 가정의 병원을 대신해 땜빵 진료를 하느라 병원에 우리 병원 환자보다 다른 병원 환자들이 더 많은 날들도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휴가를 갈 차례다.


휴가 전 병원은 마치 가족 휴가 떠나기 전에 할 일이 많은 주부처럼 분주하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분들 차례로 한 바퀴 돌며 휴가 기간 동안 필요한 약은 없으신지 더운 날 잘 지내고 계신지 왕진을 해야 한다.

왕진 환자들 중에는 통증이 심해 진통제를 매일 드시거나 바르셔야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 약들은 의사 처방전 없이는 약국에서 그냥 살 수 없는 약들 이기 때문에 휴가 전 꼭 챙겨야 하는 사항 중 하나다.

우리가 없는 동안 동료 병원에서 우리 병원 환자들의 진료를 대신 담당해 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지만 응급이 아닌 왕진 환자들까지 맡기기는 어렵다.

진료 예약된 환자들부터 왕진 그리고 휴가 간 동료 병원의 환자들 땜빵 진료까지 휴가 전에는 언제나 병원 안팎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넘쳐 난다.


독일의 의료시스템


독일 의료시스템은 한마디로 주치의 시스템이라 부르기도 한다. 1차 진료소인 가정의 병원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잘 짜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구나 주치의 한 명쯤은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독일 사람들은 몸이 아플 때 문 열려 있는 동네 아무 병원이나 또는 큰 병원으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늘 다니던 가정의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간다.

가정의 병원에서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치료와 약을 처방하고 병가를 내어 주고 또 필요한 경우 채혈도 하고 심전도 검사도 하고 초음파 검사도 한다.

환자가 전문의 병원 대학병원 에서의 진료가 필요할 경우 소견서를 써 주거나 바로 큰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한다.

이때 가정의 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기 위한 서류들을 작성한다.

그 서류들에는 환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병에 관한 정보와 그전에 수술을 했거나 종합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했던 기록 등이다.

또 환자가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물 리스트와 현재 환자 상태가 적힌 소견서를 함께 보낸다.

이송된 환자가 종합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는 경우 이 모든 서류를 담당의가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 환자가 퇴원할 때 가정의 병원은 입원 당시 환자를 담당했던 주치의가 작성한 입원 동안 진행된 검사, 진단, 치료, 등의 관한 자세한 내용이 담긴 퇴원 편지를 받게 된다.

편지 내용에 따라 환자의 후속 치료를 위한 약물 치료 등의 변경 사항이 들어 있기도 하기 때문에 퇴원 편지는 매우 중요하다.

이런 편지들은 종합병원 입원 시에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안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심장내과, 신경정신과 등의 전문의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다녀와도 보내오고 필요에 따라 협진 의뢰서가 오기도 한다.

한마디로 환자의 건강상에 대한 모든 것을 가정의 병원에서 관리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병원 휴가 기간이 끝나고 다시 진료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그간 여기저기서 날아와 차곡차곡 탑 쌓고 있을 서류들을 챙기는 일이다


독일 사람들의 주치의 닥터 김


우리 병원은 3대째 바통을 이어받은 독일 가정의 병원이다.

첫 번째 주자였던 닥터 뮬러 때부터 두 번째 주자였던 닥터 벤젤 그리고 세 번째 주자인 닥터 김 까지 3대에 거쳐 같은 자리에서 가정의 병원을 하고 있다.

70대 80대 90대의 환자들 중에는 세 번째로 가정의가 바뀌는 동안 길가의 가로수처럼 그대로 병원을 다니고 계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 인생의 두께만큼이나 두둑한 진료 기록지들이 병원 서랍장 안에 보관되어 있다.


처음엔 환자들 중에 본인의 건강에 관한 모든 부분을 맡겨야 하는 주치의가 한국에서 온 검은 머리 의사라고 못 미더운 눈빛으로 대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남편에게 진료를 받고 시간이 지나 서로 간에 신뢰가 쌓이고 실력 면에서나 마음 씀씀이에서나 독일 의사들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면들을 보고 난 환자들은 이제는 가정의 병원 닥터 김이 휴가를 간다고 하면 그동안 아플까 걱정을 한다

다섯 군데의 든든한 동료 병원들이 대신 진료해 줄 것인데도 말이다.


병원 문 앞에는 커다란 포스터를 붙여 두었다. 포스터 안에는 우리 병원 휴가 기간을 적고 그 기간 동안 환자들을 대신 진료해줄 동료 병원들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 두었다

그리고 병원 전화에도 우리 병원에서 제일 목소리 예쁜 직원의 목소리로 휴가 안내 녹음을 해 두었다.

내용은 포스터에 쓰여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병원 우편함이 넘쳐날 것을 우려해 이웃집에 병원 우편물도 부탁을 해 두었다.

또 혹시라도 휴가 기간 동안 우리 병원 환자들 중에 약이 똑 떨어졌는데 처방전은 없고 약은 필요한데 동료 병원으로 진료받으러 가지 않고 버티는? 환자들이 있을까 봐 ( 해마다 그런 환자 분들이 몇 분씩 나오고는 했다.)

우리 병원 환자들이 제일 자주 가는 약국과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다.

약국도 익히 알고 있는 우리 병원 환자분들 중에 혹시라도 처방전이 없는데 약이 필요하다고 오는 분이 있으면 미리 약을 내어 주고 우리 병원 휴가가 끝나면 처방전을 받아 가게끔 말이다.

처방전이 필요한 약을 그냥 내어 주는 것은 말하자면 외상이다.

약국도 환자들도 우리 병원과 그 정도 신뢰는 서로 쌓인 것이다.

게다가 정해진 대로만 가는 것을 선호하는 독일에서 이 정도 융통성은 우리 병원은 한국 사람이 원장이어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제 우리 병원도 여름휴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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