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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30. 2021

허벌라게 운수 좋은 날.

몇 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베를린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내미가 집에 다니러 오는 날이다.

아침 7시 12분 도착하는 기차다. 그중 제일 싼 기차를 끊다 보니 이 시간이라고 했다.

6시 30분 우리는 조금 이른 시간에 딸내미가 도착할 기차역으로 향했다.

출근하는 사람들도 등교하는 아이들도 겹치지 않는 시간이라 이른 아침 도로는 한산했다.

10분 만에 역에 도착했다. 기차역 앞은 줄지어 서서 손님을 기다리는 몇 대의 택시와 세워둔 자전거들.. 그리고 몇 대의 자동차만 주차되어 있을 뿐 제법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오가는 전차와 버스가 잘 보이고 기차역 출구가 보이는 곳에 주차를 했다.

좋은 자리다. 주차를 하기에도 나중에 주차를 해둔 차를 움직 이기에도 딱이다. 운이 좋았다.

거기에 역 앞 주차장은 이 시간에는 한 시간 무료 주차를 할 수가 있다. 운수 좋은 날이다.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우선 기차역 안에 있는 빵집에서 아침 먹을 빵을 미리 사기로 한다.

이른 시간이라 역 안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한 군데 빵집 앞만 빼고는 말이다

빵을 사서 바로 플랫폼으로 내려가야 하는 것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여행용 가방을 밀고 역 중앙에 있는 빵집 앞에 늘어서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 동네에서 자주 만나는 나뭇가지 위에 조로 미 앉은 작은 새 들 같아 웃음이 났다

남편이 여기 말고 역 안 제일 끝에 있는 새로 생긴 빵집으로 가자고 했다.

가보니 진짜 그곳은 역의 구석진 곳에 위치해서 그런지 기차 시간이 조금 여유 있는 사람들만 간간이 오가며 빵을 사고 있는 듯 보였다.

그 참새 모임 같은 곳에 줄을 섰다면 아직도 기다리고 서 있었을 텐데 여기 오기 잘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운이 좋았다.


빵집 쟁반 위에 식구들 취향별로 골라 담았다.

남편은 곡식 붙은 작은 빵 안에 양상추, 토마토, 오이 그리고 치즈가 들어간 것 그리고 새벽기차 타고 오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을 딸내미는 부드러운 빵 안에 토마토와 루꼴라 그리고 모자렐라 치즈가 들어 가 있는 빵, 고기 좋아하는 막내는 닭고기가 들어 있는 빵으로 그리고 내것은 부드러운 크로와상에 초콜릿이 들어 있는 것으로 골랐다. 그리고 카푸치노 큰 것, 라쥐 사이즈 로다가 한잔.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나니 얼추 시간이 7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빵 봉지와 커피를 나누어 들고 딸내미가 조금 있으면 도착할 플랫폼 쪽으로 갔다.

역 안 전광판은 지금 도착한 기차, 이제 도착할 기차, 그리고 지금 출발하는 기차 등이 시간대별로 수시로 자리를 바꿔 가며 바람맞은 바람개비처럼 돌고 있었다.



울 딸내미가 타고 올 기차는 몇 분 후에 2번 플랫폼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 기차는 베를린을 거쳐 우리 동네를 찍고 프랑크푸르트를 찍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기차다.

갑자기 정겨운 뽕짝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아하 하는 노래가 생각나 커피든 손을 조심해서 발을 까딱거렸다.

몸이 리듬을 타는 순간에도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물음표가 떠다녔다.

얼마 전에 베를린에서 아팠던 딸내미가 몸이 축나서 그새 살이 쪽 빠졌을까?

아침잠 많은 아인데 새벽 기차를 타려고 잠은 제대로 자기나 했을까?

한 시간 같은 몇 분이 그렇게 흘러갔다. 전광판이 다시 움직였다. 기차가 들어왔나 보다. 이제나 저제나 자라목이 되어 쳐다보고 있으려니 멀리서 익숙한 인영이 보인다.

아 드디어 아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아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꼼꼼히 살핀다.

받아 든 가방은 가벼웠고 아이의 얼굴에는 피곤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자다가 새벽에 일어 나기 힘들어서 아예 밤을 꼴딱 새우고 왔다고 했다.

주차장으로 나온 우리는....

가방을 차 트렁크에 넣으며 딸내미가 집에 왔다는 것에 신이나 연신 웃고 있던 남편도 피곤하고 힘들기는 해도 집에 왔다는 사실이 푸근했던지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딸내미도 아침은 간단히 샌드위치로 때우고 저녁은 어제 사다둔 갈비로 갈비탕 준비하면 되고 점심은 딸내미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할까? 호박 스푸를 끓일까? 뭐가 맛날까? 하며 메뉴를 고민하던 나도 그 어느 누구도 바로 몇 분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동차를 주차한 곳에서 차를 돌려 나오고 있었다.

약 7시 20분가량 되었을 게다. 이제 길에 슬슬 출근을 하는 사람들도 학교 가는 아이들도 드문드문 보이고 있었다.

이 길에서 코너를 돌아 나가면 큰길이 나온다. 옆에서 전차가 지나갈 것이고 차들도 많아진다.

그전에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셔야겠다 싶어서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가방을 멘 우리 막내보다 작아 보이는 남자아이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어왔다.

천천히 차를 움직이던 남편은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아슬아슬하게 지나간 아이는 무사히 길을 건너갔다.

어찌나 놀랬는지.. "아니 저놈의 시끼가 진짜!" 하는 거친 말들이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왔다.

건널목이 아닌 차도로 갑자기 아이가 뛰어들어올 것이라고는 짐작 하지 못했다.

아마도 맞은편 쪽에 지가 타야 할 전차가 도착한 것이 보여 아이가 저도 모르게 뛰쳐나왔던 것 같았다.

다행히 달리는 차가 아니었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였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몸이 앞으로 쏠림과 동시에 쓰고 있던 안경과 머리카락 에서 갈색의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안에서 커피 비가 내리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밖에서 택시 운전수 아저씨들이 놀라서 입이 벌어진 체 우리 차를 보고 있던 모습이 자동차 유리를 통해 뉴스의 현장을 보는 것처럼 선명했다.

가끔 코미디 영화 에서 차타고 가다 마시던거 들러 쓰고 하는 장면들이 오바 스럽다고 생각 했었는데.

겪고 보니 충분히 있을수 있는 일이 였다.

나는 영화에서 처럼 들고 있던 커피를 그대로 내게 들러 엎었다.

그나마 미리 사둔 커피라 온도도 알맞게 미지근 했다.

그 순간에 제일먼저 떠오른건 쉐뜨 아까 커피 라쥐로 사는 게 아니었는데....였다.

내 살다 살다 커피로 목욕해 보기는 처음이다.



그렇다 우린 지금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난 것이다. 뒤에 바짝 따라오고 있던 차가 우리 차를 들이받았다.

남편과 딸내미가 먼저 차에서 내리고 나는 갈색 국물을 뚝뚝 흘리고 있어 여기저기 닦아 낸 후에 따라 내렸다.

젖은 채로 서 있는 밖은 추웠다. 춥다며 차 안에 들어가 있으라는 남편에게 괜찮다고 서있었다. 추운 것보다 자초지종을 알아야 하는 게 먼저였기 때문이다.

자동차 밖에서는 독일 아저씨 한분이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연신 미안합니다를 남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선 그 차선에서 벗어나 차를 한쪽 갓길로 세우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다른 차 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갓길에 세운 두 자동차의 모습은 눈으로 보기에는 그리 심란한 모양새를 띠고 있지 않았다.

우리 차 뒷면이 여기저기 긁히고 들어가 있었고 아저씨의 차는 앞에 마크도 떨어져 나가고 자잘하게 자국이 나 있었다.

카센터에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예전에 이탈리아에서 사고 났을 때처럼 통째로 갈아야 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누가 보아도 뒤에 오던 그 차가 우리 차를 들이박은 것이 빼박이니 경찰을 부를 이유도 없었다.

이미 자동차 쿵하는 소리에 여기저기서 구경꾼? 들이 멀찍이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을 의식해서 인지 다행히 그 아저씨는 변명의 여지없이 본인의 잘못임을 인정하고 거듭 사과를 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거리 유지를 하지 않고 바짝 따라오셨냐?" 굳이 따지지 않았다. 이미 사고는 일어났고 아저씨의 변명에 의하면 우리 차를 따라 운전을 하던 도중에 에취 하고 재채기를 크게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아이가 차도로 뛰어드는 바람에 우리가 급정지를 했고 타이밍 맞춰 재채기하시던 아저씨는 차를 멈출 수 없어서 그대로 우리 차를 받으셨다.

이모 든 것이 몇 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그 아저씨네 보험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뒤에서 오는 차는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건만 얼마나 바짝 따라붙어 있었으면 재채기 한방에 남의 차를 들이받나 싶었다.

그러나 딸내미가 아까 우리 차를 뺄 때 그 차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어느 방향에서 들어온 차인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 우리 차를 기다려 주지 않고 그 차가 먼저 앞으로 나갔다면 어쩌면 갑자기 차도로 뛰어든 아이가 만난 차는 우리 차가 아니라 그 아저씨 차였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 순간 그 아저씨의 재채기로 튕겨 나간 차가 만난 것이 우리 차 뒤꽁무니가 아닌 아이였다면?

생각 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왔다. 이름도 모르고 지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지나간 아이였지만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그 아이도 우리도 운수 좋은 날이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내게서 특별한 향이 났다. 작은 국자 안에서 익어 가던 설탕이 타는 냄새 달콤 씁쓸한 달고나 냄새와 비슷하다.

허벌라게 운수 좋은 9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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