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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31. 2022

빨래가 안되는 새세탁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다. 세탁기를 새로 샀다. 그런데 빨래를 할 수가 없다.
새로 산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건의 발단은 삼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장이 잦던 세탁기가 급기야 멈춰 서고야 말았다.

그동안 간간이 고쳐 쓰기도 하고 달래 쓰기도 했던 세탁기는 이제는 내 선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빨래를 하는데 탈수할 때 탱크 굴러가는 소리를 냈다. 뭔가 석연치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세탁이 끝나고 빨래를 꺼내고 나서 세탁기 안을 살펴보니 못같이 생긴 쇠붙이가 빠져나와 있는 게 보였다.

이게 뭔가 싶어 살짝 잡아당겨 보니 무기?로 써도 될 만큼 길고 커다란 쇠 꼬챙이 같은 것이 세탁기 내부에서 끝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너무 놀라 사진을 찍고 예전에 세탁기를 구매했던 전자 상가로 달려갔다.

전자상가 서비스 센터에서 직원에게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여 주며 이게 무슨 일인지에 대해 물었다.

사진을 가만히 드려다 보던 서비스 센터 직원은 자기도 이런 건 처음 본다며 뭔 일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느냐 물었더니 기술자를 출장 보내서 세탁기를 들여다 보고 확인해 보아야 알 수 있겠으나 수리비가 300유로 이상은 들어갈 것 같아 보인 다고 했다.

애프터서비스 해당 기간이 한 달이 지나 버려서 모든 비용을 셀프로 처리하셔야 된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말이다.



그 말인즉슨 500유로 주고 산 세탁기는 이제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없으니 앞으로 고장 날 때마다 돈 들여 고쳐야 하고 우선 이 번 것만  최소 300유로 이상 들여 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리비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고 이번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우리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참에 세탁기를 새로 장만하는 것이 났겠다는 결론을 냈다.

우리는 동네에 있는 전자상가라는 상가는 모두 다녀 보며 쓸만한 세탁기를 물색했다.

잦은 고장이 많았던 세탁기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우리는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것을 골라 사야 겠다 결심했다.


그러나 성능 좋은 세탁기를 착한 가격에 장만하는 일은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하고 세일 또는 이벤트가 나올 때까지 기다림이 필요하다.

두 달 남짓 주말마다 빨래방 순례가 이어졌다.

어쩌다 한번 빨래방이야 갈 만 하지만 매주 온 가족의 빨랫감을 주리 주리 들고 빨래방을 드나드는 일은 꽤나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드디어 우리에게 맞는 세탁기를 만났다.

우리가 자주 다니며 알아보던 전자 상가에서 그날 하루만 반짝 세일을 하는 이벤트 가 있었다. 그 덕분에 평소 가격보다 200유로 싸게 구입할 수 있었고 덤으로 고장 난 세탁기도 가져다 버리는 일도 옵션에 끼울 수 있었다.(그렇지 않다면 비용을 들여 버리던 큰 차 빌려서 시 종합 청소장 까지 우리가 직접 가져다 버려야 한다.) 2년 이 보통인 애프터서비스도 5년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풀옵션이다.

게다가 보통 가구, 전자제품 등의 배달 기간이 열흘에서 2주 정도는 기본으로 걸리는 독일에서 바로 그다음 주 화요일에 집으로 배달을 해 주겠다고 했다. 여러모로 흡족했다.


사흘 뒤 화요일,

욕실에 고장 난 세탁기를 한옆으로 치워 두고 반짝반짝한 새 세탁기를 연결했다. 감격스러웠다. 왜 아니겠는가?

드디어 빨래를 들고 다니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집에서 할 수가 있게 된 거다.

그 주말 원래 라면 빨래방을 갔어야 했지만 며칠만 참으면 세탁기 온다고 급한 것은 그 옛날 우리 엄마가 하듯 빨래에 비누 묻혀 손으로 조몰락조몰락 빨아 널고 세탁기를 기다렸다.

욕실 한구석에 산처럼 쌓인 세탁물도 세탁기에 들어갈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달 아저씨 들은 새 세탁기를 고정해 주고는 사용하기 전에 20분은 빨래 없이 세탁기를 돌리고 난 다음 세탁기를 사용하라고 했다. 그래야 공장에서 바로 나온 새 세탁기의 기름등의 이물질들을 없애고 쓸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아저씨 들은 빠른 세탁 익스프레스 20분을 돌려놓고 다 끝나면 사용하면 된 다는 말을 남기고 고장 난 세탁기를 들고 돌아갔다.

두 사람이 층계를 들고 내려가는데 고장 난 세탁기 안에서 뭔가 훅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높이 쌓아둔 냄비들이 한꺼번에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라고나 할까?

운반하던 아저씨들도 이게 뭔 소리냐 고 할 만큼 큰 굉음을 내며 사라지는 고장 난 세탁기를 보며 돈 들여 시간 들여 고치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 싶었다.

배달 아저씨들 손에 고장 난 세탁기를 실어 보내고 욕실로 갔다


욕실 안에서  물만 돌고 있는 새 세탁기를 보니 연신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이제 주말까지 빨래로 벽 쌓을 만큼 세탁물 모아 두었다가 이사 가는 사람들처럼 가방 줄줄이 들고 빨래방까지 갔다 왔다 안 해도 되고 중간중간 급한 빨래 손목이 휘도록 빨아 너는 일 안 해도 된다 싶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맛보기 세탁 20분이 끝나고도 남았을 시간에 빨래를 하려고 세탁기 문을 여는데 세탁기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삡삡 하는 경고음과 F 그리고 134라는 숫자가 연이어 떴다.


순간 뭔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세탁기 전원을 꺼 놓고 세탁기 설명서 책자를 꺼내어 펼쳤다.

한참을 뒤져 보니 세탁기에 F 134라는 에러 메시지가 뜬다면 세탁기 내부에 수도관과 연결된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니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하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 쓋뜨! 새로 산 세탁기를 연결 한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고 빨래 한번 돌려 보지 못한 체 우리는 또 빨래방으로 향해야 되게 생긴 거다.

그다음 날 세탁기를 샀던 전자상가로 갔다 서비스 센터에서 문의를 했더니 아직 사용하지 않은 새로 산 세탁기이니 전자상가의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것이 아니라 세탁기를 만든 전자 회사로 직접 연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전자 회사 고객센터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새로 산 세탁기가 빨래 한번 하기도 전에 에러 메시지가 떴다 라는 이야기에 담당자는 최대한 일찍 기술자를 출장 보내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잡힌 예약일은 그다음 주 화요일 그 주도 역시나 빨래방을 가야 할 상황이었다.

고장 난 세탁기 때문에 빨래방에 출석체크하듯 다닌 것도 모자라 새 세탁기를 사고도 빨래방에 가야 하다니 기가 막혔다.

그러나 화난 다고 당장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상에서 다른 것도 스트레스인 것들이 쌨지 않은가.

속 끓여 봐야 나만 손해다.

어쨌거나 기술자를 보내 주고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해 보겠다고 했으니 기다려 보는 수밖에...


그렇게 욕실에 새로 산 세탁기를 데코처럼 새워 두고 한쪽에 빨랫감을 차곡차곡 쌓던 목요일 오후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가 부재중으로 찍혀 있었다.

알 수 없는 번호여서 혹시나 보이스피싱 또는 스팸 일지 모른다 싶어 전화해 보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두 번째 같은 번호로 또 부재중 전화가 찍혔다. 뭐지? 싶어 이번엔 내가 전화를 해 보았다.

"좀 전에 이쪽으로 전화하셨죠?"라고 물으니 본인을 전자회사의 고객 서비스 센터 누구누구라고 밝힌 아저씨는 엉뚱하게도 "다음 주 세척기 애프터서비스 예약하셨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아니요 다음 주 화요일에 세탁기요 "라고 답 하며 이거 혹시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 싶었다.


그러자 아저씨가 "아 그래요? 지금 전화하신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한다.

자기가 전화해놓고 이름을 물어? 어허.. 점점…

의심 많은 나는 이 서비스센터 직원 아저씨가 매일 여러 명의 고객 서비스를 나가야 해서 헛갈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이름을 듣고 난 아저씨는 "아 세탁기..!"  하며 지금 시간이 돼서 그러는데 화요일 이 아니라 바로 가면 어떻겠느냐 했다.

나는 오케이 했지만 속으로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

대부분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독일 사람 들이다.

어느 때는 융통성 이라고는 약에 쓸려도 찾기 어려울 때가 많은 독일에서 정해진 날짜보다 빨리? 그건 어쩐지 수상 했다.

만약 진짜 서비스센터 직원이라면 5일이나 당겨서 세탁기를 해결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만…

혹시 이상한?사람일지도 모르니 우리 주소는 알려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진짜 서비스 센터 직원이라면 우리 주소는 알고 있을 테니 당연히 알아서 찾아올 테니 말이다.


그런데 삼십 분 남짓 지나 진짜 누군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전자회사 마크가 크게 쓰여 있는 빨간 봉고에서 커다란 연장통을 들고 내리는 체격이 큰 아저씨 한 명이 보였다. 파란색 유니폼에 노란색 글씨로 커다랗게 회사 로고가 쓰여 있었다.

나는 속으로 어? 진짜였네? 하며 머쓱했다.

때로는 얄팍한 경험치가 다 인양 스스로 어떻다고 규정해 놓은 것들이 모두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알게 된 날이다


세탁기를 보여 주기 위해 욕실로 향하면서 아저씨가 힘겹게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커다란 체격의 숨 가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아저씨의 모습은 흡사 만화영화 속의 꿀단지를 이고 지고 있는 곰돌이 같았다.

한참 걸려 계단을 오르던 아저씨는 세탁기를 마주 하고부터는 빠른 움직임으로 세탁기를 해체? 하고 무엇이 문제 인지 확인에 들어갔다.

세탁기 윗뚜껑을 떼고 뒷문짝을 떼고.... 이렇게나 세탁기 안을 속속들이 모두 들여다 보기도 처음이었다.

태초의 모습을 하게 된 세탁기 안으로 물이 한가득 고인 것이 보였다.

아저씨는 연장 통 안에서 꺼낸 커다란 주사기 모양의 물총 같은 것으로 물을 빼 내고는 어디서 물이 샜는지 기계를 연결해 놓고 살펴보았다.

세탁기를 살짝 돌리면 뚜껑 떼어진 곳에서 마치 고래가 바닷물을 뿜어 내듯 위로 물줄기가 치솟았다.

샅샅이 살펴보던 아저씨는 드디어 어디서 물이 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수로관이 연결된 세탁기 안에는 요렇게 물이 들락날락하는 통이 하나 달려 있다.

세탁기 안으로 물이 오가는 통로인 것이다 그런데 요 통의 입구가 깨져 있었다.

공장에서 출고될 때 이런 상태로 시장에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라 했다.

아저씨 말인즉슨 아마도 운반 도중 세탁기가 커브길에서 벽에 쿵쿵 받으면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부속들을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므로 본사에 연락을 해서 받아다가 바꿔 줘야 한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부속품 주문해서 받아다 교체하려면 또 한 두 주 걸리겠네...

풀옵션으로 세탁기 샀다고 좋아한 게 무색하게 새로 사놓고도 이삼주는 빨래방을 다녀야 하게 생겼네 했다.

내 썩소를 품은 인상에서 풍겨져 나오는 못맞땅함이 느껴졌던지 아저씨는 "살다 보면 이렇게 생각도 안 했는데 해결 안 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그러죠?" 했다.

나는 "그러게 말입니다. 세탁기 새로 사놓고 빨래로 벽 쌓게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했다.

아저씨는 내 말에 크게 웃더니" 저도 알죠 우리 집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몇 년째 갑갑합니다"

어떻게든 빠르게 세탁기를 해결해 주려는 아저씨는 본사 고객센터 사무실과 여기저기 연락을 취하더니 나도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 폰을 크게 켜 두고 부속품을 내일 바로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여직원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확답을 받았지만 아저씨는 사람일은 100프로 확신한다고 이야기한 일들이 꼭 잘못될 확률도 동시에 가지고 있더라면서 만약 내일 아침 일찍 부속품을 손에 넣으면 연락하고 집으로 와서 교체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어찌 될지 모르지만 잘 되기를 바라며 일단 금요일 아침 월차를 내고 집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아저씨는 부속품을 받았다며 10분 이면 우리 집에 도착한다며 연락을 해 왔다.

아저씨는 빠른 속도로 통을 교체해 주고 확인까지 마친 후에 이제는 진짜로 세탁기를 사용해도 된다며 잘 되었다고 했다.

나는 "세탁기 돌린 기념으로 저녁에 파티라도 해야겠어요 감사해요" 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저씨는 내 말에 " 아 우리도 어젯밤에 파티했어요 그 오랫동안 해결 안 되던 일이 어제 드디어 됐어요!"라고 했다.


아저씨네는 대대로 내려오는 1700년대 집이 하나 있는데 이게 유물처럼 나라에 등록이 되어 있는 것이라 작은 보수 공사 하나를 하려도 시에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4년이나 걸려서 어제 드디어 허락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얼마나 신경이 쓰이고 힘들었겠는가.

보기에 남들은 아무 일 없어 보이고 맨날 우리 집만 뭔 일이 이렇게 자주 있나 싶지만 속속들이 몰라 그렇지 알고 보면 어느 집이던 크고 작은 해결해야 할 일들을 늘 안고 사는 거다 싶었다


세탁기를 새로 샀는데 사용도 하기 전에 고장이 났다 싶어 왜 우린 이렇게 매번 재수가 없나 했다.

그러나 생각을 살짝 뒤집어 보면 예약 일 보다 일찍 와서 여러모로 애써준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5일이나 일찍 세탁기를 사용할 수가 있었으니 운이 좋았던 것이다.  

독일에서 자주 있는 일이 아녀서 멀쩡한 아저씨를 혹시 보이스 피싱? 하면서 엉뚱한 직장에 취직을 시킬 뻔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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