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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06. 2022

중세 성에서 숲의 요정을 만났다

동화 같은 독일 정원 축제



그날은 5월의 어느 목요일이었다. 날씨가 비가 올 듯 말 듯 오락가락 하기는 했지만 독일의 공휴일이자 아버지의 날이라 불리는 날이었다.

독일은 어버이날이 따로 없다 매해 5월 둘째 주 일요일인 어머니 날만 있다.

그렇다 보니 딱히 아버지의 날이 없어 아빠들이 섭섭해서 만들어 냈다는 날이다.

사실, 그날은 예수 승천일로 종교적인 공휴일이다. 기왕에 쉬는 날이니 아버지 날이라 붙여주고 그릴도 하고 맥주도 마시며 보내는 날이라는 것이 더 맞겠다.

좌우지 당간 아버지 날에 우리 집은 오래간만에 아이들도 모두 집에 있고 남편은 애들에게 선물로 어디를 함께 가 달라고 했다.

얼떨결에 따라나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칼덴이라는 지역의 숲이었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칼 덴이라는 동네 끝쪽에 위치 한 숲 가운데 중세 시대 만들어진 성이었다.


우리는 네비가 알려 주는 데로 울창한 나무들이 줄지은 숲을 지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가 아니라 그림같이 빨간 지붕의 시골 집들이 소복이 모여 있는 동네에 차를 멈춰 섰다.

이미 풀밭 위 주차장에는 다른 동네 번호판들을 달고 있는 자동차 들로 가득 차 있었다.

중세의 성 풀밭 떼기 에서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 모여들었는고 하면 오래된 정원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그간 코로나로 해마다 유치되어 왔던 지역 축제들이 취소 또는 축소되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이 정원 축제가 몇 년 만에 다시 열리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요즘 한창 정원 가꾸는 것에 재미를 붙인 남편 에게는 이웃동네까지 명성이 자자한 정원 축제가 콘서트보다 가고 싶은 곳이었다

게다가 아이들과 함께 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지 않겠는가

물론 우리 집의 직장인, 대학생, 중학생인 아이들에게 그리 당기는 테마의 축제는 아니지만 아빠의 날 선물이라는데….

그래 함 가주자 하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양 떼들이 낮잠을 즐기고 있는 중세의 성이 보이는 넓디 넓은 숲의 나무 아래 그리고 호숫가에는 하얀 천막들이 드리워져 있었다.

빵가게 오븐과 그릴 연어를 구워 대는 숲 속 레스토랑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왔다.

초록의 풀밭 위에 하얀 천막 사이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연기..

멀리서 본 정원 축제는 마치 어느 인디언 마을 앞에 서 있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온 정원 축제는 숲의 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 동안 이런 축제가 없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이런 시간을 그리워했겠는가.

거기다 이제 안팎으로 마스크 쓰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이젠 정말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보인다

(물론 그중에도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이들도 간혹 만나게 된다.)

우리는 마스크를 턱에 또는 팔에 걸고 사람들을 피할 길 없는 좁은 숲 속 길을 걸을 때면 쓰고 조금 널찍한 곳에서는 벗으며 다녔다.


사진 허벌라게 많음 주의!


정원 축제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모종, 꽃, 나무, 씨, 구근, 등등 정원에 심을 식물들과 정원을 장식할 장식품들이 크고 작은 텐트 안과 밖에 빼곡히 전시되고 있었다.

쌔들 쌔들 해진 식물들도 파릇파릇하게 살려 내는 그린핑거를 가진 우리 친정 엄니 같은 식 집사 들은 오마이 갓뜨를 외칠 만큼 볼거리도 많고 살 것도 많았다.

정말 보기 드문 특별하고 특이한 것들도 많았지만 이런 건 우리 동네 꽃 상가 가면 더 쌀 텐데... 싶은 것도 더러 있었고 축제 들어올 때 입장료 낸 거 까지 합치면 가격 대비 너무 하다 싶은 것들도 있었다.(17세 까지는 무료, 대학생들은 9유로 일반은 11유로 )

우쨌거나 중세의 성곽을 중심으로 동그란 원을 그리듯 호수를 포함한 숲길 전체에 크고 작은 텐트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집 정원에 아기자기 한 인형들 세워두고 걸어두고 하는 걸 좋아하는 독일 사람들을 겨냥? 한 소품들이 차고 넘쳤다.

"어머 저거 너무 귀엽다!", "아우 요거 정말 기발한데!" 하며 귀엽고 앙증맞은 또는 기발한 정원 소품들 구경을 하며 고개 내밀다 보면 어느새 옆에도 앞에도 뒤에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샴페인병,와인병 들을 걸어 놓게 만든 소품인데 나무로 깎아 만든 오리가 드러누워 병나발 부는  같은 모습의 재미난 소품이 있었다.

나는 옆에 있던 남편에게 “우와 이거 되게 재밌다” 말하며 손뼉을 치며 깔깔거렸다. 그런데…. 남편과 비슷한 초록색 잠바를 입은 남의 집 아저씨가 뭐래니? 하는 얼굴로 멀뚱히 서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쉬뜨…

여긴 어디? 너님은 뉘규?


구경할게 많아 신이 난 남편은 그 사람 많은 사이를 헤치고 물 찬 제비?처럼 누비느라 보이 지도 않았고 아빠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따라나선 아이들은 면접 보는 친구 따라온 사람처럼 하릴없이 서성였다.

축제는 사람이 많고 북적여야 하겠으나 흩어져 걷고 있는 가족을 모아 함께 다니기도 쉽지 않고 이러다 사람 구경만 하고 가게 생긴 거다.

골목마다 꽉 찬 사람들이 지나가고 조금 줄어들 때까지 어디 가서 앉았다 가는 게 났겠다 싶었다.


그런데 숲 속에 만들어진 카페들도 빵집도 레스토랑들도 이미 테이블이 꽉 차 보였다.

아니 이 부지런한 사람들은 대체 몇 시에 여기 왔나 싶게 남아 있는 자리는 없었다.

우리는 레몬 소다를 파는 마차에서 종류별로 레몬소다를 사서 하나씩 들고 나무 아래 섰다.

어디선가 예쁜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를 깎아 만든 팸플릇 모양의 장식품이 나무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며 찰랑이는 소리였다.

단소 소리 보다는 묵직하고 풍경 소리 보다는 조금더 가벼운 소리였다.

그 묘한 소리를 들으며 새콤달콤 레몬소다를 한입 삼키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여러 개의 꽃 모양이 화려하게 달린 등불을 들고 파란색 머리의 초록색 보라색의 반짝이는 옷을 입은 요정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여기저기 있던 쪼그만 아이들이 앞쪽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연신 “와 요정이다!”라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장대 위에 서 있는지 큰 키를 자랑하며 나무 사이를 오가는 요정들을 보여 주기 위해 목마를 태워준 아빠 어깨에서 손을 흔드는 작은 아이의 순진하고 맑은 눈망울은 보는 이들을 동화의 나라로 안내했다.


정원축제가 벌어진 숲에는 요정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정원용 화분, 촛대, 물조리개, 장식품들, 전등, 정원용 소품들... 도 많았고 정원 청소 도구 파리의 침투를 막아 주는 과일 담는 바구니, 장바구니, 후추 등의 조미료, 등의 생활 용품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게 정원 하고 뭔 상관 이래 싶은 제품들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어 일부를 나무로 만든 자전거, 일반 정원에서 볼 수 없는 열대 과일, 채소, 마사지 오일, 화려한 색감의 순면 옷, 양탄자, 꽃 모양의 머리핀, 액세서리 담는 통 등등...


깜찍하게 생긴 금발머리 여자아이가 엄마에게 "엄마 이 꽃핀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거예요 그죠? 아주 특별한 문양이에요 "라고 말하며 하나 사달라고 조르는 대신 으른 시레 시도하는 모습에 빵 터졌다.

기존에 다른 정원 축제에 비해 볼거리도 구경거리도 한결 더 풍성했고 다양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정원 연못용 소품들도 재미난 것들이 꽤 많았다.

독일 사람들은 가정집 정원에는 작은 분수나 연못을 만들어 놓은 집들을 자주 보게 된다.

여름 이면 아이들 풀장을 만들어 놓는 집들도 꽤 있다.

아이들 있는 집들 중에 제자리 뛰기 하며 노는 작은 트램폴린 과 독일에서 헹어마테라 불리는 야외용 해먹 을 정원에 두는 집들도 많다.

야외용 헹어 마테에 누워서 신나 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보고 지나며 나무에 설치된 샤워기를 보고 있자니 오렌지 빛 해가 하늘 가득한 아프리카 가 떠오른다.


정원축제에는 이것저것 구경할 것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덕분에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숲을 아이들 태워 다니는 나무 수례를 양심? 도 없이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볼 때쯤 우리의 정원 축제 나들이가 끝이 났다.

부러움을 담뿍 담은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남편에게 아가들이 타고 있는 수레를 가리키며 "자기야 나 저거 타고 싶어!"라며 가증 스런 콧소리를 냈더니 남편이 아름드리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들아 나무 뽑자, 엄마가 저 수레 타고 싶데 사이즈 맞게 만들어야지!"

에이씨 안타 안타 그냥 걸어 다닐겨!

우리 손에는 꽃과 나무 대신에 마시지 오일, 과일 등이 담겨 있었지만 재미난 하루였다.


To 독자님

안녕하세요 숲 속에서 요정을 만나서 아이들처럼 좋아했던 아직 덜 자란 으른 김여사 인사드려요.

사진들을 펼쳐 놓으니 그날의 재미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사진이 좀 많지요? 줄이고 줄였습지요 ㅎㅎ

그럼에도 이대로 발행하는 이유는 울 님들이 사진으로 나마 이곳 분위기를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라 서에요.

이 글을 쓰고 있는 6월 6일 월요일 독일도 오늘 공휴일 이랍니다.

종교적인 공휴일이라 현충일인 한국과는 내용이 다르나 역시나 쉬는 날이지요.

해서 아침 시간 내내 사진 고르고 글 쓰는데 보내고 있습니다

글도 그때 바로 써서 올렸어야 신선하게 팡팡 터지는 느낌을 끌어낼 수 있었을 테지만

다시 그 순간을 추억하며 글을 적은 것도 제게 휴식을 주네요.

제 글을 읽어 주시는 여러분도 커피 한잔 손에 들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 쉬시는 것처럼 힐링이 되시기를 바라요~~!

독일에서 김중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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