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이들이 다 모여 시끌벅적 했던 열흘이 하루처럼 지나갔다.
멍뭉이 나리까지 한 지붕 아래 여섯 식구...
가족이 완전체로 함께 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을 먹어도 맛나고 또 무엇을 해도 소중한 추억이 된다.
우리 집 세 아이가 모두 어리던 그때는 지지고 볶고 전쟁 같던 육아 속에서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몹시도 그리워했다.
짧은 시간이어도... 뭐라도 좋사오니... 내 것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작고 어리기만 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 하나 둘 집을 떠나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이제는 내가 그리도 원했던 나만의 시간을 원한다면 언제든 끌어다 쓸 수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난리 북새통을 떨며 가족이 모두 함께이던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인생에 있어 한번에 다 가질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말을 하는가 보다
무엇이든 좋은 면 그렇지 않으면 이도 저도 아닌 면 들이 나란히 고개 내밀고 있으니 말이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 인생에도 여러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렇게 또 마주 하게 된다.
아이들은 올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각자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내 일상도 그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다시 흘러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그러나 마음은 아이들이 올 때와 가고 나서가 다른 시간을 가진다.
아이들이 집으로 하나 둘 도착하고 빠르게 지나갔던 함께 한 시간에 비해 보내고 나서의 시간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춘 듯 더디게 흘러가니 말이다.
비행기 타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을 때 그곳의 다른 시간에 몸이 시차 적응을 필요로 하듯 아이들이 오가며 남기고 간 빈자리에도 마음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멋지고 스페셜하게 가져 보기로 했다. 이 또한 인생의 다른 면이니 말이다.
금요일 오전 핑계 김에 우아하게 병원에 반차를 냈다.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까? 고민하다 동네 장에서 브런치를 하기로 했다.
금요일 오전 이면 우리 동네에는 장이 선다. 우리네 오일장처럼 크지는 않지만 볼거리도 살 것도 많은 시장이다.
가스대 위에서 물 끓이듯 뽀글뽀글 하얀 물줄기가 오르내리는 빨간색 솥모양의 작은 분수와 금색 사과와 배가 반짝이며 얹어 있는 기둥 사이로 광장이 시작된다.
이 동네 광장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한번 장이 선다.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초록색 줄무늬 텐트를 쓴 오밀조밀한 가게들이 저마다 농가에서 직접 싣고 온 먹거리 들이다.
제철 채소와 과일이 뿜어내는 향긋함과 생선가게의 짭조름한 바다내음, 치즈 가게에서 나는 꼬리 한 냄새 그리고 갗구워낸 고소한 빵 냄새가 뒤섞여 동네 장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나는 보통 동네 장에 오면 채소 가게를 필두로 한 바퀴 도는 나만의 코스가 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르게..
일단 나 홀로 우아하게 브런치를 할 곳을 찾는다.
마을 광장에서 동네 장 이 한눈에 보이는 곳 은 채소 가게들과 꽃 가게 가운데 위치한 빵가게와 수프 가게다.
두 곳 중에 한 곳에서 브런치를 할 것이다.
빵가게는 네모난 나무 테이블에 라벤더 색의 야외용 의자다.
그리고 수프 가게는 마치 숲으로 캠핑 온 것 같은 원목의 야외용 의자와 테이블이다.
햇빛 가득 받을 수 있는 라벤더 색의 의자 세 개가 세 방향으로 놓여 있는 빈 테이블에 앉았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이면 언제나 빵집과 수프 집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노천에는 앉을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운이 좋았다.
물론 그 가운데 자리가 마치 영화관 제일 앞자리처럼 장 한가운데에 있는 채소 가게들과 가장 가까운 자리 여서 오가는 사람들의 부산스러움을 덤으로 받아야 했지만 그 시끌벅적함이 브런치의 색다른 조미료가 되어 주었다.
채소 가게에서 작은 흑판에 분필로 적어 놓은 오늘의 채소들을 훑으며 나중에 장바구니에 담아 갈 것들을 눈으로 찜한다.
의자 색 보다 한 톤 밝은 보라색 메모장을 꺼내 들고 풍경화 스케치를 하듯 장 바구니 들고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그려 본다.
동네 장 한 복판에서 혼자 우아하게 브런치를 한다. 하얀 거품 머금은 라테 마끼아또와 부드러운 에그 스크램블과 피망의 촉촉함을 목으로 넘기며 손글씨로 한 글자씩 써내리며...
인터넷이 되는 시내의 카페였다면 노트북을 꺼내 들고 자판을 두드리며 화이트 초콜릿 섞인 모카커피를 홀짝이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테지만...
동네 장 서는날 빵집에서는 집에서 엄마가 후딱 하니 만들어 접시에 대충 담아 준 것 같은 에그 스크램블을 먹으며 메모장에 손글씨를 쓰는 것이 마치 당연한 듯 어울린다.
사람 구경하며 메모장에 방금 적은 연결이 어색한 문장들을 보며 역시나 글도 루틴이 필요하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그간 글을 쓰지 못했더니 이리 표가 나지 않은가
몽글몽글한 라테의 거품을 삼키며 노란 계란과 색색의 피망을 입속에 넣는다.
달콤 쌉쌀하고 부드럽고 폭신하다.
그렇게 마시던 라테가 줄어들고 에그 스크램블 접시가 비어 가며 한참 나만의 축제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내 옆의 빈 의자를 드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빼어 들고 냅다 앉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여기 빈자리 죠? "라는 말을 동시에 내뱉으며 말이다.
나는 아직 입속에 남은 에그 스크램블을 마저 삼키기 위해 애쓰며 그 갑작스러운 침입자?를 쳐다보았다.
삐쭉한 코에 날카로운 눈매의 할머니는 검은색 망토만 입었다면 만화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마귀할멈의 실사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당당한 모습으로 내가 허락하기도 전에 강제 합석을 해버린
마귀할멈과 싱크로률 백퍼로 생기신 할머니는 망설이는 일행에게 쩌렁 쩌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자리 비었는데 왜 서 있어? 얼른 앉아!"
기가 막혀 콧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방역이 많이 헐거워진 요즘이고 야외 라 해도 아직 코로나가 끝이 난 것도 아니고 낯선 사람과 한 테이블에 앉아 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이런 예의를 국 끓여 먹은 경우는 이 동네에서 자주 만나 지는 케이스는 아니다.
보통 식당에서 빈 의자 하나 가져갈 때도 조심 스레 가져가도 괜찮겠느냐 묻고 그러시라고 할 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며 가져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할매는 내가 가타부타 의사를 밝히기도 전에 바로 앉으며 양해?를 구했다.
아니 구하는 척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거기다 입안에 먹던 음식을 마저 삼키고 얘기하려는 나를 제쳐 두고 자기들끼리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짧은 시간에 말이다.
내가 대답 없이 빤히 쳐다보고만 있자 할매는 일행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독일어를 못 알아듣나 봐"
그러더니 이번에도 내가 답할 시간을 주지 않고 "두유 스피크 잉글리시 어 리를?" 하는 게 아닌가.
이게 얼마 만에 들어 보는 말인가?
한 삼십 년 전쯤 처음 독일 에 왔을 때 독일말을 거의 못 알아듣던 그 시절에..
상점 또는 관공서에서 누군가 뭔가를 물어 올 때 내 답을 기다리기 힘들었던 독일 사람들은 친절한 미소를 바른 얼굴로 차라리 영어가 났지 않겠니 하는 뜻을 담아 물어 오고는 했다. 그때 자주 듣던 말이었다.
오랜만에 그 말을 들으니 격세지감에 헛웃음이 나와 빙그레 웃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할머니의 일행이 할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 귀가 잘 안들리는 분이 아닐까?"
오우 웨이레 모멘~! 나는 이제 입속에 음식도 남아 있지 않았고 더 이상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기로 한다.
축제는 끝났다.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 위에 아이보리색 바탕 갈색 줄무늬의 빵떡모자를 눌러쓴 마귀할멈을 닮은 할머니와 긴 금발 머리를 한묶음로 묶고 있는 일행에게 나는 독일어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 귀는 괜찮아요. 그런데 이분이 내가 앉아도 괜찮다는 답을 하기 전에 먼저 앉아 버리신 거는 괜찮지가 않네요!"
라고 했다.
순간 그들의 얼굴에는 내가 독일어로 말했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과 자기네 끼리 지껄인 소리도 모두 이해했겠구나.. 하는 것에 대한 당혹감과 내가 합석을 원치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민망함이 섞여 묘한 표정을 그려 내고 있었다.
그 찰나에도 정신을 먼저 차린? 할머니는 "내가 아시아 사람들에 대해 좀 아는데 어디서 왔소? 웬만하면 다들 친절하던데"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아.. 놔.. 이 할매...이런식이면 나.. 또 삐뚤어 지는데...
나는 굳이 남의 자리에 와서 제대로 묻지도 않고 맘대로 합석을 하고는 호구조사? 까지 하려는 이 낯선 할머니에게 고분고분 알려 주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웬만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나는 "그렇죠 우리 동네에서 웬만히 예의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덥석 남의 자리에 앉지 않지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할머니의 일행이 "아 그 동네에서는 합석을 하지 않나요?:"
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아니요 상황에 따라 합석하기도 하죠 그러나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 하지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할매는 얼굴이 울구락 불구락 하더니
"아니 그러면 이 늙은이가 자리 찾아 여기저기 헤매며 다녀야겠소? 빈자리 있으면 앉아야지"
나는 그 막무가내의 할매 때문에 난처한 표정으로 어쩔줄 모르던 일행을 보며 말했다.
"고생 많으시겠어요!" 그리고는 할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할머니 다음부터는 앉고 싶은 자리가 있으면 이렇게 덥석 앉지 마시고 앉아 도 되는지 꼭 상대에게 제대로 확인하고 앉으세요 상대방에게 제대로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나의 독일어 쨉에 멘붕이 된 할매를 나는 똑바로 쳐다봐 주며 마저 훅을 날려 주었다.
"먼저 남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일은 독일이던 아시아 어느 나라 던, 사람 사는 곳은 그곳이 어디던 통용되는 상식이에요. 아이들도 알고 있는 일이죠!"
나는 우아하고 사뿐하게 빈 접시와 빈 컵을 챙겨 들고 아직도 어버버 해서는 뒷말을 잇지 못하는 할매와 일행에게 원더풀 위크 앤드를 날리며 브런치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