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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17. 2022

 짝퉁 농부의 텃밭과 자식농사

왜 자식 농사라 하는지 알 것 같다.


어느 때는 시소를 타는 것 같은 독일의 여름 날씨는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 엄마에게 등 떠밀려 온탕 냉탕을 오갔을 때를 떠오르게 한다.

32도로 덥다가 다음날 20도로 온도가  떨어진다. 무더운 여름 간간이 도 내려주고 열을 시켜 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하루 사이에 여름과 가을  계절을 살아 내는 것은 때로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

갱년기의 몸뚱이는 자체적으로 열이 났다 식었다 하는데 바깥 기온까지 널을 뛰니 쉽게 지치고는 한다.


핑계 김에 며칠 만에 텃밭을 들여다보았다.

그새 조롱조롱 달려 있던 종류 다른 토마토 잎이 메말라 도르르 말려 있고 줄기가 자빠져 있었다.

비가 내렸고 선선한 온도여서 방심했다 한낮의 햇빛을 말이다.

노랗게 마른 겉잎 들은 떼어 주고 무거워진 토마토 열매를 지탱하기 힘들어 드러누운 줄기를 받쳐줄 대나무 대를 세우고 고정해 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짝퉁 농부이지만 텃밭을 가꾸는 것도 작은 농사라 쳐 준다면 이 농사짓는 것이 자식을 키우는 것 과 여러모로 닮았다고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흙에 심고 가꾸었건만 종류 다른 각각의 채소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적상추, 청상추, 아삭이 상추 세 종류의 상추는 따서 먹고 나면 또 나고 먹고 나니 또 나고 마른 겉잎과 새똥 뭍은 잎들만 따주면 무한 리필이 가능했다.

심어 놓고 물 주니 알아서 자랐다.

말없이 쑥쑥 자란 콜라비는 어떠한가 

구멍 숭숭 뚫리게 벌레 먹은  그리고 마른 떼어 주고 나니 이제 큰 것은 어른 주먹만 하게 자랐다.

마트에서 파는 콜라비와 겨루어도 밀리지 않는다 크기는 조금 작아도 완전 유기농이니 상태는 더 났다고 하겠다.

조금만 더 커지면 뽑아서 콜라비 섞박지, 깍두기, 무채, 무나물을 만들어 먹어도 맛나겠다.

그리고 텃밭 구석에 심어 놓았던 고추도 꽃피고 나더니 바로 초록의 고추가 달렸다.

비빔국수 말아 놓고 그 위에 송송 썰어 담아도 매콤하니 좋고 된장찌개 위에 얹어도 칼칼하니 좋다.

이렇게 크게 수고하지도 않고 잘 자라 주니 크게 속 썩이지 않고 알아서 잘 커준 자식을 닮았다.


큰아들은 어려서부터 뭐든 혼자서 척척 잘해 냈다.

어려서 자주 아프고 다쳤던 것이 평생 끼칠 걱정을 미리 가불이라도 한 것처럼...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독립한 어른이 되기까지 아이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저 낳아 놓으니 저절로 큰 것처럼 말이다.



또 씨 뿌려 놓고 이제나 저제나 들여다 보아도 나지 않던 바질이 이제야 둥글둥글한 잎을 내보이며 나오고 있다

학교 다닐 때 수업종 울리기 바로 직전에 헐래 벌떡 뛰어 들어가 간신히 지각을 면했을 때처럼 앗싸!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지각생은 또 있다. 분명 양파 모종을 심었는데 파 인지 양파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초록의 줄기만 뻗어 나오더니 '아니, 대체 저게 자라서 뭐가 되려나?' 하던 찰나에 '나 양파 맞음!'이라고 이야기하듯 알이 굵어지고 있다.

양파가 맞았던 거다.


그리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진짜 수박이 나올까? 궁금해 심은 수박 모종은 아직 진행형이다.

잎이 나오고 자라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모양의 얼마만 한 수박이 열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어떻게 생긴 수박이 열리려나 두근두근 기대하며 왜 얼른 안 자라나 애태우며 기다리는 것도 텃밭의 또 다른 재미다.

마치 많이 기대해 주고 믿고 기다려 주고 살펴 주어야 하는 자식처럼 말이다.


주말 내내 핸디와 한 몸이 되어 뒹굴거리는 막내에게 '이제 책이 좀 읽고 싶지 않니?'라고 물으니 못 들을 것을 들은 양 띠꺼운 표정으로 흰자가 더 많이 보이는 눈을 치켜뜨고는 '세상 재미없는 것이 책 읽는 것!'이라 답했다.

우리 집 사춘기 막내도 언젠가 이 지랄발광의 시기가 지나갈 것이고 형아처럼 멋지게 자라 있겠지라고..

더 많이 기대해 주고 더 믿어 주고 기다려 주어야겠다 다짐한다 마빡에 참을 인을 새기며...



방울토마토, 큰 토마토, 노란 토마토, 종류 다른 토마토 모종을 심고 가꾸고 있다.

토마토는 다른 채소들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 마른 잎을 수시로 떼어주어야 하고 물 부족할까 거름 부족할까 챙겨 가며 조금 자라면 줄기가 똑바로 못 자라고 휘어질까 그때마다 줄기를 펴주고 묶어주어야 한다.

어느새 구슬 같은 토마토가 달리면 혹시나 벌레 먹을까 수시로 들여다 봐 줘야 하고...

그 구슬이 굵어지면 그 무게에 줄기가 땅으로 누울 새라 대나무 막대기 꽂아 줄기를 기대게 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빨갛고 노란 달콤한 토마토들을 종류대로 맛보는 즐거움 또한 주지 않는가

손이 많이 가고 이런저런 잔 걱정이 많으나 소소한 기쁨을 끊임없이 안겨주는 자식처럼 말이다.


딸내미는 어려서부터 잔 걱정이 많았다

이거 하나 지나면 저거 나오고 저거 무사히 끝나면 보란 듯이 요런 게 등장한다고나 할까?

집안의 유일한 딸내미 여서 그렇기도 하고 생긴 것에 비해 엉뚱하고 지나치게 용감한 면이 있어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엄마를 기함하게 하고 걱정하게 했지만 생일날 몰래 와서 깜짝 생일상을 차려 준다거나 남편도 잊고 있던 결혼기념일에 서프라이즈 꽃배달을 시켜줘 감동하게 한다거나 하는 정스럽고 아기자기한 구석이 있다.


얼렁뚱땅 작은 채소 텃밭을 일구게 된 짝퉁 농부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채소들로 식탁만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도 풍요로워진다.

텃밭 농사는 스트레스 많은 일상에서 힐링을 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잊고 있던 소소한 것들을 일깨워 준다.  

무엇을 심고 가꾸던 심었을 때만큼 한결같은 마음이어야 하고 각각의 다른 면들을 애정을 가지고 알아내고 인정해 주어야 하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는 것은 날씨와 물 그리고 흙과 비료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왜 자식을 키우는 것을 농사에 비유해 자식농사라고 하는지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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