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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23. 2022

하마터면 남편이 용감한 시민상을 받을 뻔했다


지난 금요일 오후의 일이다 오전 내내 비가 오다가 말다가 날이 꾸물 꾸물했다.

잿빛 하늘과 오다 말다 하는 비 내리는 독일의 날씨는 이미 익숙하다.

잠깐 나갔다 올 일이면 비가 와도 모자 달린 잠바 하나 걸쳐 입고 다닌다.

그러나 늦가을 내리는 비는 긴 시간 맞고 다니기에는 차갑다.

작은 접는 우산 하나 들고 배낭 메고 남편과 우리 집 똥꼬 발랄한 멍뭉이 나리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그날은 다른 날과는 조금 다르게 긴 산책길을 선택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대학 건물들을 지나 자주 가는 마트에서 간단히 시장을 보고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전 주 주말 딸내미가 다녀간 덕분에 미리 넉넉히 보아둔 것으로 한주를 때웠다.

한마디로 냉장고 파먹고 살았다. 그러니 주말에 집에 있는 두 남자를 위해 뭔가 특별식을 해 주어야겠다 싶었다.

마트는 나리를 데리고 갈 수가 없어 남편이 밖에서 나리와 하던 산책 마저 하고 있고 혼자 후딱 하니 시장 봐서 합류하기로 했다.


놀이터가 있는 동네 길을 지나 대학 도서관을 지나가려니 어느새 잿빛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파란 하늘이 고개를 내밀었다.

들고 있던 우산을 배낭에 넣고 마트로 갈까? 하다 그러면 장 본 것 담아 오기에 자리가 부족할 수도 있고 부피 차지는 많이 하지 않지만 들고 다니며 장을 보기에는 귀찮았다.

어차피 나리와 산책을 하고 있을 남편에게 우산을 맡기고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라고 당부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너무 오래 걸리지 말고!"라고 응답했다.

언젠가 마트에서 장 보고 나왔더니 그 앞쪽에 있어야 할 남편과 나리의 모습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집 쪽으로 한참을 걸어가니 둘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오래 걸려서 걷다 보니 집 앞에 다 왔다라나? 어쨌거나 그럴 바에는 혼자 시장 가고 말지 함께 산책하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배낭을 고쳐 메고 "알았어 눈썹이 휘날리게 다녀온다!" 하고는 마트 쪽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마트 주차장 안쪽에서 청바지에 회색 점퍼를 입은 단발머리의 한 젊은 여성이 방검조끼를 입고 총을 찬 경찰관과 뛰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 가까이 와서는 숨찬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녹색 가방을 멘 사람들 보지 못했나요?"


"네? 녹색 가방요?"

순간 좀 전에 지나오면서 보았던 두 남자가 떠올랐다.

"저기 대학 건물 앞 계단에 두 남자가 커다란 녹색 가방을 두고 앉아 있었어요"라며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고맙다며 다시 뛰어갔다. 방금 우리가 지나쳐온 그쪽으로 말이다.


지나오다가 우연히 두 남자를 보았던 그곳은 대학 건물과 건물 사이에 계단과 자투리 땅이다.

그 건물 안에는 강의실 들과 실습장이 있다.

대학 도서관과 학생식당이 있는 다른 건물과 연결되어 있는 건물이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학생 식당을 가기 위해 그 건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밖에서도 들여다 보이는 실습장 에는 늘 사람들이 있고 그 앞에는 실습실에 필요한 물건을 실어 나르는 차량들을 주차 놓고는 한


그러나 오가는 사람들이 적어지는 주말이면 어느 순간부터 노숙자들이 그곳에 자리를 펴고 안방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을 종종 목격하고는 한다.

큰 나무들이 가리고 있어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눈여겨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기 쉽고 계단 아래 땅이 평평하고 오목한 데다가 건물 처마가 있어 비바람을 피할 수도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까 보았던 두 남자 중에 한 명은 눈이 풀린 체 큰 나무 뒤에서 노상방뇨를 하고 있었고 한 명은 커다란 가방을 옆에 두고 계단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누가 보아도 알코올 중독자에 노숙자로 보였다.


그런데 녹색 가방은 뭘까? 혹시 시장을 보다 가방이라도 잃어버렸나?

다급한 목소리로 보아 뭔가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때였다.

자동차가 세워져 있던 곳이 그들이 숨어? 있던 곳이다

뭔 일 인가 싶어 쳐다보았던 쪽에서 "경찰이다 꼼짝 마!" 하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장 갔던 아주머니가 뭔가를 잃어버려서 다급하게 경찰과 찾아다니는 줄 알았는데 그녀는 사복을 입은 경찰이었던 거다.

거기다 우리가 서 있는 쪽으로 누군가 겁나 빠르게 뛰어 오는 게 보였다

다름 아닌 아까 계단에 죽치고 앉아 있던 남정네였다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쏜살같이 달려 우리를 지나쳐 갔다.

그 뒤를 아까의 경찰과 경찰로 판명된 여성과 그리고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줄지어 그 남정네를 뒤쫓아 가고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왜 경찰들이 범인을 뒤 쫓을 때 다른 방향도 있건만 굳이 줄지어 쫓아 가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실제 상황을 보니 그러기가 쉽구나 싶었다.

맨 앞에 무언가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내는 빛의 속도로 뛰어가고 있었고 그 뒤를 "경찰이다 멈춰!"를 외치는 사람들이 줄줄이 뒤따르고 있었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이어 달리기라도 하고 있는 줄 알지도 모른다.

예전에 앞에 가면 도둑놈 뒤에 가면 경찰 이라며 놀던 아이들의 우스개 소리가 떠오르던 순간이었다.

경찰들과 범인이 일렬로 뛰던길

그 순간이었다. 나리의 리드 줄을 잡고 엉거주춤 서 있던 남편이 들고 있던 우산을 있는 힘껏 범인 쪽으로 던 졌다.

당연히 빗나갔다 집에서 파리채로 파리도 조준해서 잡다 놓치는 일이 허다한 남편이다.

한참을 시야에서 벗어난 범인을 맞출 제간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열라 뛰던 남자는 뭔가 자기 쪽을 스쳐 지나가는 것에 식겁해 본능 적으로 뒤쪽을 보다 스탭이 꼬여 꼬꾸라 졌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경찰들은 그를 붙잡았다.

무슨 죄를 지은 범인인 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거나 다행히 잡혔다.

남편이 엉성하게 던진 우산이 도움이 되었던 거다.

며칠 집에 못 들어가고 잠복근무 라도 했는지 피곤해 보이는 경찰들이 줄줄이 와서 남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마트 가려다 말고 이게 뭔 일인지 아직 까지 얼떨떨하던 나는 경찰들이 증거품인지 커다란 녹색 가방을 조심스레 경찰차에 싣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뭐여 이게 대체 뭔 일이야? 경찰들에게 물어볼걸...싶었다.

하긴 물어 본들 수사에 관한 이야기니 일반 시민에게 함부로 말해 줄리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 며칠 후 경찰이 그동안 공들여 쫓고 있던 마약을 유통하던 딜러 들을 체포했다는 기사가 동네 지역 신문에 났다.

만약 신문에 난 그들이 우리가 본 그들이라면?..


그러고 보니 갑자기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 라도 그들이 조직이 있다면?

조직의 일원들 중에 아직 잡히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자기네 식구? 또는 형님? 이 숨어 있던 것을 경찰에게 알려준 사람을 찾는다면? 그리고 경찰을 피해 욜라 뛰다가 누가 던진 우산에 놀라 자빠지는 바람에 경찰에 붙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누군가를 찾으려 한다면?.... 옴마야 어쩌나?

나는 며칠 동안 그날 과는 다른 헤어스타일과 다른 옷을 고수했다 남편 에게도 다른 옷을 입고 다니라고 닥달했다 말하자면 증인 보호 또는 현장에 있던 시민 보호를 위한 변장 이라고나 할까?

하마터면 남편이 독일에서 용감한 시민 상을 받을 뻔 한 날이다.

요 나무 옆에서 남편히 욜라 용감하게 우산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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