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만 성공한 다이어트
왜 니만 빠지니?
출근 준비 하느라 바쁜 아침 시간 거울 앞에선 남편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와, 이거 봐 바지가 헐렁 거려!"
어른 손이 두 개는 족히 들어 갈듯 빈 공간을 자랑하는 남편의 바지를 보며 나는 "조금 전에 화장실 다녀왔고 그렇게 배에 힘 빡 주고 서서 숨도 안 쉬고 있으면 나도 바지 훌렁 거려"라고 했다.
살 빠진걸 마누라에게 몹시도 자랑하고 싶었던 남편은 시큰둥한 마누라의 반응에 약이 오른 듯 체중계 위에 가뿐히 오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딱 봐봐, 봤지 나 6킬로도 넘게 빠졌다"
진짜였다 옷무게는 빼야 한다며 체중계 숫자에서 1.7킬로나 빼는 구라 체중은 제쳐 두고라도 분명 남편의 체중은 몇 개월 전 하고 앞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너도 한번 체중 재봐" 하는 남편에게 나는 눈을 흘기며
"그래 홀쭉해져서 겁나 좋겠다 좀 있음 바지 내려가겠네"했다.
사실 남편이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은 기쁜 일이고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다이어트는 같이 했는데 왜 저 혼자만 빠지냔 말이다.
남편이 잘 보이지 않게 체중계를 돌려놓고 올라간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직도 그대로다
그들의 다이어트
몇 개월 전이었다 남편은 간헐적 단식을 시작해 보겠다고 선언했다.
"간헐적 단식? 짬짬이 어쩌다 한 번씩 굶는 거?"라고 물었더니
자기가 하려는 간헐적 단식은 꾸준히 최소 16시간에서 18시간의 공복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 했다.
바꿔 말해 아침을 굶든 저녁을 굶든 선택적으로 할 수 있지만 좌우지당간 하루 한 끼는 굶겠다는 소리였다.
옛날 사람?이다 보니 삼시 세 끼는 골고루 챙겨 먹어야 힘이 나서 공부던, 일이던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차라리 세끼 조금씩 줄여 먹는 게 났지 않나? 했는데 남편의 생각은 확고했다.
처음엔 저녁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우린 보통 저녁을 한국식으로 해서 먹다 보니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두부 들어간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던가 얼큰한 김치찌개의 냄새가 침샘을 자극하니 저녁을 먹지 않겠다던 남편은 어느새 숟가락 들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오늘만 치팅데이 란다 치팅데이 가 어제도 오늘도 계속되는 것 이던가? ㅋㅋ
게다가 밤은 너무 길지 않은가 배가 고파 새벽에 눈이 떠지는 일이 잦아 지자 남편은 드디어 저녁은 먹고 아침을 먹지 않기로 했다.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유지를 잘하고 살짝 살이 빠진 듯 보이는 남편을 보고 자극받은 나도 그놈의 간헐적 단식에 합류했다.
원래 한 끼라도 굶으면 손 떨리고 성질이 나고 큰일 날 것 같던 사람인 나는 처음엔 스트레스 지수도 올라가고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하다 보니 아침 한 끼 건너뛰는 건 할 만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이 빠지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남편보다 늦게 시작한 탓도 있고 중간에 치팅 데이를 자주 둔 덕도 있겠으나 몇 개월에 700그램은 너무 하지 않은가
그것도 변비가 해결되고 나온 체중이니 그것이 체지방이 아닌 다른 것의 무게가 빠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 젠장!
그녀의 문제 그의 팩폭
살이 빠지지 않는 걸 괜한 다이어트 방식에 트집을 잡으며 간헐적 단식되지도 않는구먼 했는데
실제로 남편이 반년도 안 돼 살이 6킬로나 빠졌으니 되기는 되는 거였다.
남편은 본인은 운동도 겸해서 했다며 아침에 샤워하기 전에 방바닥에서 플랭크 인지 달팽이 운동인지 꾸물꾸물 움직이는 것을 하기는 했다만 그걸 운동이라 보기는 영 거시기 하다.
그러니, 그야말로 운동도 안 하고 한 끼 거른 것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같이 굶었는데 나는 왜 안되는가?
남편은 심플하고 시크하게 말했다
“당연하지 먹으니까”
그동안 아침에 바삭하고 고소한 크로아상도 방금 구워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초의 앙상블인 독일의 작은 곡식빵 들도 모두 포기하고 찬물에 비타민으로 때웠건만 먹긴 뭘 먹었다는 건가
나는 세상 커진 눈으로 "먹긴 뭘 먹어 커피 밖에 안 마셨구먼"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너 병원에서 아침에 가끔 라테나 카푸치노 마시지?"
나는 그런데 ? 하는 눈빛으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남편은 "이 사람아 우유 속에는 지방 칼로리 안 들어 가나?"
그렇군, 나는 그거 우유 얼마나 된다고 라며 구시렁 거렸다.
갱년기라 가끔은? 호랭이가 되는 마눌이 말투는 앙칼지나 점점 목소리에 힘이 없어지는 것을 보며 남편은 옳다구나 싶어 팩트를 마구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 아침에 종종 한국 믹스 커피도 마시잖아 거긴 설탕까지 들어 가 있지"
아 반박을 못하겠네 그러니 나는 한마디로 아침에 밥만 안 먹었다 뿐이지 칼로리 되는걸 충실히 챙겨 먹고 있었던 거다.
눈만 끔뻑 거리며 반격을 못하고 있는 마누라를 보며 남편은 신이 나서 계속 떠들어 댔다.
"간헐적 단식은 공복 상태의 시간이 중요하다니까 16시간 에서 18시간은 유지해야 돼
그래야 인슐린 분비가 어쩌고 체내 뭣이 저쩌고..."
그렇게 한참을 떠들어 대던 남편은 가만히 보니 마눌이 자기 말을 귀담아듣고 있지 않았다
그런 마누라에게 남편은 팩폭에 쐐기를 박았다.
"너는 단식하는 시간도 안 지키지, 저녁에 달달이 맥주에 간식도 먹지 살이 빠지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따져 대고 싶다만 할 말이 없다 몽땅 맞는 말만 해서...
요새 애들 말이 떠올랐다 나는 소심하게 속으로 외쳤다 '어쩔 티비이!'
그런데 사람이 때로는 너무 맞는 말만 또박또박 뱉어 내면 무지 얄미워 보일 때가 있다.
나는 은근슬쩍 손에 힘을 주고는 "어머 뭘 이렇게 묻히고 다녀!" 하며 남편의 입 다물고 있어도 나온 입을 털어 주는 척 쌔려 버렸다.
철썩하는 찰진 소리에 남편은 순간 당황 했지만 뭐 묻은 거 털어준 거라니 뭐랄 수도 없고 심증은 있다만 증거가 없다 하는 표정으로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부터 시간 지켜 가며 먹어 간식 줄이고 그래야 나처럼 살 도 쭉쭉 빠지지
네가 봐도 내가 살 빠진 티가 팍팍 나냐?" 했다.
헐~그래 겁나 빠졌다 아까 손에 힘 더 줄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