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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23. 2022

베란다에 나타난 라쿤 뒷 이야기

쟤가 아까 걔 아냐?


이번 글은 아래에 있는 글의 뒷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먼저 읽고 오시면 이야기의 내용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됩니다.

앗! 우리 집 베란다에 야생 라쿤이…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50459&PAGE_CD=N0002&CMPT_CD=M0111

그날 아침 베란다에서 라쿤을 보고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에 놀란 남편이 뛰어 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는데 또 한 마리의 라쿤이 나타났다.

남편은 보고 있으면 서도 믿기지 않는 장면에 기가 막혀하며 내게 물었다

"혹시 쟤가 아까 걔 아니야?"

남편의 생뚱맞은 질문에 나는 그 상황에도 웃음이 터져 버렸다.

때마침 "가아가 가아가?"라는 경상도 사투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그 아이가 그 아이니?)


나는 웃음을 베어 물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냐 아까 걔는 얘보다 컸어, 그리고 걔는 스카이라운지에서 뷰를 감상하듯 베란다 위에서 먼발치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올라갔다고!"

그 순간 또 한 마리가 나타나 먼저의 두 마리가 올라가던 나무 기둥을 타고 날듯이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렇다 우리는 하루아침에 야생 라쿤을 세 마리나 만났다 그것도 우리 집 베란다에서...


보나 마나 또 지붕 어딘가를 작살 내어 놓았을 것이 뻔했다.

이게 벌써 몇 번째 던가...

정확히 그쪽으로 라쿤이 올라가 지붕을 망가 뜨려서 집으로 비가 샜다.

그 구멍을 메우고 길마다 라쿤 방지 템을 설치 한지 몇 해 만에 다시 나타난 라쿤들은...

라쿤들이 미끄러워 올라가지 못한다는 메탈 재질의 방지 템을 붙여둔 곳을 비웃듯 가뿐히 즈려밟고 올라갔다.

지붕 수리하며 돈 들여 한 방지 템이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을 인증한 날이다.


이미 지붕에서 난리를 쳐 놓았을 것이 빤한 상황에 하루 라도 빨리 지붕 기술자를 불러 수리를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수리해야 할 곳이 늘게 될것이고 수리비도 더 나오게 되니까 말이다.


다행히 지붕 수리 업체에서 우리 사정 이야기를 듣고 빨리 기술자들을 보내 주었다.

우리 집 지붕으로 올라간 기술자 아저씨들은 아직 라쿤이 집 안으로 들어올 만큼 지붕을 파내지는 못했지만 굴뚝 주변으로 지붕 전체를 다 헤집어 놓았다고 했다.

두 명의 기술자 아저씨들이 세 시간에 거쳐 1차 지붕 수리를 끝냈다.

아저씨들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니 지붕 맨 겉장을 들어내고 쇼이라고 부르는 밑장들을 다 빼놓아 비닐 같은 퍼런 것들이 빼곡히 쏟아져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조금만 늦었으면 지붕 어딘가에 구멍이 뚫리고 라쿤들이 들어와 살았을지 모른다.

그러니 그날 아침 라쿤들을 만난 건 불행 중 다행이요 행운이었나 보다.


 라쿤들이 다니는 길목마다 올라가지 못하도록 비닐 판과 철판들로 방지 템을 만들어 놓은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지붕은 빨리 고칠 수 있게 되어 막대한 수리비를 내야 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지만 고쳐놓은 지붕에 다시 올라간다 해도 막을 방도 가 없다는 것이다.  


고민하던 남편이 다음날 새벽같이 베란다에  나가서 무언가를 하고 들어 왔다.

뭐 했느냐는 나의 질문에 남편은 "기다려봐 내일이면 알게 될 거야!"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은 내게 베란다에 함께 나가 보자고 했다.


달라진 게 별로 없어 보이는 베란다를 남편은 탐정이라 된 듯 꼼꼼히 둘러보더니

" 된 것 같아!"라고 했다.

예전부터 있던 라쿤 방지 템에 똑같은 베란다에서  뭐가 됐다는 거지? 싶어 나는 물었다.

아니 뭐가 됐는데?

나는 남편의 설명에 빵 터지고 말았다.

남편은 수리해 놓은 지붕에 라쿤이 또 올라갈까 걱정이 되어 어떻게 하면 될까? 고민을 했단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미끄러워 올라가지 못하게 붙여 놓은 방지판들이 라쿤에게는 미끄럽지 않았다면 더 미끄럽게 하면 되겠다 했다는 거다

그래서 집에 있던 코코넛 기름을 방지 템 위에 처발 처발 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라쿤이 뷰를 감상한다고 올라가 있던 곳에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받은 또다른 라쿤 방지템 뾰족이 들을 설치해 둔 거다.


남편의 계획은 이러했다.

그 일땅이 이 땅이 삼땅이 라쿤들이 어느 날과 다름없이 우리 집으로 온다 그리고 방지판 붙은 나무판에 손을 딱 뻗친 순간 허옇게 덕지덕지 묻어 있던 코코넛 기름이 미끄러워 지랄 발광하다 뾰족이 들에 똥침을 당한 후 기겁하고 다시는 우리 집으로 오지 않는다.

남편의 계획이 맞아떨어진 것인지 코코넛 기름이 하얗게 굳어 있던 방지판 위에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자국이 여러 군데 나 있었고 그 후로 우리는 라쿤을 더 이상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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