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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an 12. 2017

이렇게 슬픈 전화는 처음 이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이 비에

어제 까지 길가 군데군데 남아 있던 눈은 흔적 조차 없이 사라지고

잊고 차 안에 두었던 물병이 밤새 얼음이 되도록 매섭게 춥던

영하의 날씨 도

조금은 누그러 진 듯도 하다.

바람은 여전히 차갑지만 따갑지 않은...

간간히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을 벗 삼아

문화센터를 향해 가고 있다.

만두 한통이고 지고....


해가 바뀌면 kfb 문화센터 직원들은 작은 파티를 준비한다.

이름 하여 강사 들을 위한 새해맞이 파티..

강사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것과 파티룸을 꾸미는 것부터

파티에 쓰일 음식까지 모두 사무실 직원들이 준비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국음식 도 소개할 겸 직원들의 일손도 덜어 줄 겸

한국요리 하나씩을 데뷔? 시키고 환호받고는 했었다.

예를 들어 컵 비빔밥, 해물전 등등...

그런데 이번엔 딸내미 데리러 공항에 가야

해서 파티에는 참석할 수 없지만 언제나 맛난 한국

음식을 기대하는 동료들과 사무실 식구 들을 실망

시킬 수 없어 아침 일찍 만두 빚어 구워서 한판

들고 간장 양념 담아 들고 나르는 길이다.

공항에 가야 해서 파티에 참석할 수 없노라

미리 이야기는 해 놓았지만

기대하지 않은 깜짝 배달? 에 모두들 기뻐하겠지..

흐뭇한 마음으로 만두통을 들고 사무실로 막

들어가는데...


언제나 밝고 명랑한 엘리자가 울먹이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파티 준비를 하느라 위층에 있고

혼자 사무실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던

엘리자가 전화를 손에 든 체 나와 살짝 눈이 마주치자

잠깐 기다리라는 사인을 보낸다.

그 큰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체...

어쩌지.. 어쩌면 가족 들과의 통화 이거나 또는

친구 와의 개인적인 전화가 아닐까? 싶던 나는

잠시 자리를 피해 주어야 할까를 망설이고 있는데

전화기를 놓고 엘리자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빨갛게 된 눈가에 그녀의 그렁그렁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물방울을 애써 모른 체 하며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엘리자 무슨 일이야?"

그녀는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는다는 듯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우리 문화센터 수강생인데 올해 미리 예약해 둔 강습들

참석 못한다고 전화 온 건데...

글쎄.. 이렇게 슬픈 전화통화는 처음이야.."

떨리는 목소리로 엘리자는 말을 이어갔다.

"벌써 몇 년째 우리 문화센터 강습을

자주 들으러 와서 모두 아는 아주머니인데,

아마 얼굴 보면 너도 알지 싶어... 그녀가 암 이래,

그런데 이미 온몸에 전이가

된 모양이야..."

혹시나 얼굴은 알지도 모르는 사람의 일이지만

슬픈 소식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엘리자에게 들은 다음의 말들은 나를 송두리째 흔들기에 충분했다.

언제나 건강하고 활기차던 그녀는 어느 날 가슴이 이상해서

병원을 갔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암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태라는

너무나 무섭고 기막힌 진단을 받았다는 거다.

15살 17살의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우리 아이들은 이제 꽤 커서 어떻게 빨래를 해서 널어야

잘 마를지.. 큰아이가 좋아하는 고기 요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작은아이가 좋아하는 엄마표 팬케익은 어떻게 구워야 하는지

하나하나 가르쳐 주고 있는데 곧잘 따라 해"

그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 또래의 아이들을 둔

내 마음도 소리 없이 무너 진다.

엘리자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아이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짠해서.....

하루하루 이별을 준비하는 그 마음이 절절해서...


훌쩍이는 우리 등 뒤로 앞치마를 둘러 맨 에드가가

들어왔다.

위층에서 음식 준비를 하다 내려온 듯 한 그녀는

예의 그 통통 튀는 듯한 말투로  

"어이 김쌤 반가워 근데 그 옆에 통은 더 반가워 "

라며 번죽 좋은 인사를 했다.

우리는

어느새 울다 웃었다.

나는 아직

눈가에 대롱 매달려 있던 눈물을 살짝 닦아 내고

"이거 봐봐 짜짠 ~"이라며 만두 통을 활짝 열었다.

요안에 뭐뭐 들었냐면...

종알 종알 입으로 만두를 만들어 내고 있던 나도

맛나 보인다며 하나씩 먹어 봐도 되냐고 묻던 엘리자 도

정말 맛나 다고 이러다 우리끼리 파티 전에

몰래 다 먹어 치울지도 모른다며 환하게 웃던 에드가도

아마 우리는 오래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애달픈 한마디를....

전화를 끊기 전 그녀는 엘리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했다.

"내가 2017년 연말을 보낼 수 있을지

다시 새해를 맞이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다시 새해 인사를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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