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데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느지막한 새벽에 잠이 든 것 치고는 말이다.
빵을 사러 가야겠다.... 갓 구워낸 빵을...
부스럭 부스럭 주섬 주섬 나갈 채비를 서두르다
엄마의 부스럭 대며 왔다 갔다 하는 소리에
그만 잠이 깨어 부스스 일어나 쳐다보는
막내에게 "쉿~! 엄마 지금 빵 사러 갔다 올게
누나 피곤하니까 깨우지 말고.. "당부를 하고는
빠르게 집을 나섰다.
오늘 새벽 하얗게 내려앉은 눈을 밟으며 집으로
들어왔는데...
불과 몇 시간 뒤인 아침엔 이렇듯 사르륵 녹아 있다.
마치 애초부터 눈이 내리지 않았던 것처럼...
그래서 그런가?
아니면 집을 나서기 전
혹여 문을 열면 깰까? 살며시 들여다본
문틈 사이로
침대 위에서 이불 둘둘 말고
곤히 자고 있는 딸내미를 조용히 확인하고는
현관 앞에 반년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놓여 있는
아이의 신발을 보고 나서 일까?
괜스레 기분이 묘해진다.
지난주와 별반 다르지 않은 주말 아침...
언제나와 똑같은 동네 길들....
이나무 저나무를 오가며 낮게 지저귀는
작은 새들의 속삭임 까지도...
오늘은 왠지 특별하게 다가온다.
주말 아침 이면 늘 마주 하는 풍경 들 속
갓 구운 빵을 내어 놓으며 손님에게 원하는
빵들을 담아내는 빵집의 고소한 냄새를
배경 삼아 늘어선 줄 뒤로 끼여 섰다.
줄어드는 줄을 쳐다보며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는 딸내미가 오기 전 먹고 싶다던
먹고파 리스트를 떠올리며
집에 재료가 있던 것들과 새로 챙겨 가야 하는
것들을 차례로 줄 지우고 우리 집 냉장고 안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오늘의 메뉴를 정해 본다.
양손 가득 들린 장바구니 안에는 딸내미가
그리워하던 독일식 샌드위치인 벨렉 테스 뷔레첸에
들어갈
갗구워낸 빵, 레몬크림,
상추, 오이, 토마토, 계란, 소시지와
우리의 감자 옹심이 같은 크뇌델을 만들 감자
음... 그리고
독일식 돈가스인 슈바이네슈니쩰 을 만들 돼지고기..
또 뭐가 있더라... 그래,
우리의 단호박죽처럼 달달한 그리스 브라이 에
넣을 그리스 가루와 우유.....
먹거리들이 차곡차곡 담긴 장바구니는 무겁지만 어쩐지 발걸음은 가볍다.
어제 공항에서 휠체어를 타고 승무원의 안내를 받으며 나오던 딸아이의 뒷모습 도....
처음 본 딸아이의 목발과 힘없이
들려 있던 다친 다리도.....
내 눈동자를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던 그 잔상 들은
하얗게 뿜어 내는 입김과 함께
날려 버리고
수술.. 재활... 앞으로 넘어야 할 걱정의 상념 들을
빨간 지붕 위 파란 하늘 아래 동그랗게 떠오르며
잔잔히 퍼지고 있는 햇살 속에 그 또한 묻어두고....
부리 가득 먹이를 물고 날갯짓하며 나뭇가지 위로 귀엽게 내려앉는
작은 새처럼
"엄마 진짜 맛있다 "를 연발할
아이의 미소 만을 떠올리며
애써 가벼워진 마음만큼 발걸음도 가볍다
어느새
내디선 길 보다 돌아오는 길은 훨씬 빠르다.
특별한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