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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16. 2022

딸기 한알과 독일 마트 오지라퍼


휴가 첫날이었다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딸내미와 우리와 여름휴가를 맞춰서 집에 온 큰아들까지 가족 완전체가 집에 모여 있으니 날이 더워도 좋았고 냉장고가 빨리 비워져도 좋았다.

다른 때 같으면 눈썹이 휘날리게 오전 진료를 보아야 할 시간에 여유 있게 시장바구니를 챙겨 들었다.

이번 주 들어 독일의 무더위도 살짝 꺾이고 있다.

한낮 기온은 아직 30도 28도를 웃돌고 있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하다.

한국은 입추 하더니 세상이 환경오염으로 여기저기 이상기온이 나타나도 약속된 자연의 절기는 어김없이 돌아오나 보다.


이른 아침 멍뭉이 나리와 산책할 때 약간 서늘했는데 소매 있는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동네 한 바퀴 조깅을 하고 들어오던 큰아들이 덥다 더워를 읊조린다.

햇살이 퍼지며 온도가 다시 올라가고 있나 보다.

 그래도 갱년기라 열이 치솟을 때가 많은데 싶어 들었던 카디건을 다시 걸어 두고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안에 장바구니 넣으며 지갑 확인하고는 길을 나섰다.



흥얼흥얼 콧노래 하며 걸어서 도착한 마트 안은 오느라 더웠던 열기를 시켜줄 만큼 시원했다.

냉장칸 냉동칸이 활발히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왠지 마트 안이 어수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저기 박스를 뜯고 물건들을 정리하며 오가는 직원들이 다른 날 보다 많아 보였다.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이라 새로 들어온 물건을 정리한다고 보기에도 뭔가 부산스러웠고 냉장칸에 빈칸이 많았다.

장 보려고 계획한 유제품들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언젠가처럼 밤새 정전이 되어 못쓰게 된 것이 많아져서 인가?' 아놔 또 이 사람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미이니 지나가는 직원 1에게 물었다.

"혹시 지난번처럼 정전이 된 건가요? 유제품을 찾지 못해서요"

그랬더니 친절한 직원 1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저희 지금 코너별 칸을 옮기고 있어서 그래요 손님 이 찾으시는 유제품은 이따 오후에 들어올 예정이에요"


나는 그제야 냉장칸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어쩐지 평소와는 진열된 코너 칸들이 달리 배열되어 있었다.

원래는 마트 안으로 들어와 제일 처음 만나지는 과일과 채소 코너를 지나 첫 번째 냉장칸에는 요구르트, 연유, 우유, 등의 유제품들이 종류 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채식자들을 위한 제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내가 웃으며 "채식자들을 위한 제품들이 많아졌네요!" 했다.

그랬더니 직원 1은 손뼉을 치며 "맞아요 요즘 채식주의자를 위한 제품을 찾는 손님들이 점점 더 늘어서 칸을 바꾸기로 했어요!"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음 요즘 다시 채식 열풍이 불고 있군!' 하며 감 잡았어! 하는 얼굴이 되었다.


사실 가정집에서 가구를 옮기듯 청소 도 할 겸 마트 안의 코너별 칸들을 그렇게 옮기나 보다 하면 그만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때마다의 식생활 트렌드를 읽을 수가 있다.

마트 안 진열대의 배치는 판매를 위한 전략적 마케팅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 이기 때문이다.  

어느 마트던 제일 먼저 만나 지게 되는 진열 칸은 언제나 소비층이 두터운 제품들 위주이며 그중에 제철 채소와 과일도 언제나 그 칸에서 제일 눈에 띄는 곳에서 먼저 만나 지게 마련이다

또 충동구매를 부추기는 세일 품목들이나 아이들의 시선을 붙잡는 과자, 사탕류 들은 계산대와 가까운 곳에 있기 마련이고 말이다.

한국요리 강습을 자주 할 때는 여러 군데의 마트에서 살다시피 하던 때가 많아서 늘 민감하게 염두에 두던 것들이다.

더디게 변하는 독일 사회지만 시장과 장바구니의 변화는 식문화 트렌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따 아주마이 아직 감이 쏴라 있네!" 를 되네이며 과일 채소 칸으로 이동했다


시장 오기 전 현관 앞에서 만난 큰아들에게 "엄마 지금 시장 가는데 뭐 사다 줄까?" 했더니 딸기를 주문했다.

이 동네에서 지금 딸기는 제철이 아니다 이제 끝물도 지나 들어가기 직전이다.

지금 제철 과일은 복숭아 살구, 자두 다.특히나 복숭아는 천도복숭아부터 납작 복숭아 종류 별로 다 있고 한참 달고 제맛이다.

아들이 혼자 떨어져 직장 생활하며 과일인들 제때 챙겨 먹었을까 싶어 원하는 딸기를 사다 주기로 한다.

끝물인 과일은 언제나 상태에 비해 비싸고 단맛도 떨어지고 양도 많지 않아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간신히 구석 밑에 한 칸 차지하고 있는 딸기는 고만고만했다.

어느 통을 들어도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 한통을 들어 올리려는데 딸기 한알이 퐁 데구루루 굴러 떨어져 다른 통에 들어갔다.


에이 딸기 한알 그까이거 하고 그냥 가려다  자리에 쪼그려 앉아 떨어진 딸기가 굴러 들어간 다른 딸기 통을 들여다 았다.

고개를 갸웃 거리며 이건가? 저건가? 이 도끼가 네 거니? 가 아니라 이 딸기가 좀 전에 떨어진 거니? 였다.

비슷하게 생겨서 이건지 저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거나 하나 집어 올려놓고 있을 때였다.

웬 파란색 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안경을 낀 짧은 금발머리의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그러시면 안돼요!"라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무슨 편의점에서 랍스터 찾는 소리라는 말인가?

도통 영문을 모르겠는 갑작스러운 이러시면 아니 되오 소리에 나는 "네? 뭘요?" 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교양 있는 내가 너에게 친히 알려 줄게 하는 분위기로"그렇게 다른 통에서 꺼내 가시면 다른 사람이 적게 먹게 되겠지요!"라는 게 아닌가

아놔 나 이러면 삐뚤어지는데...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베어 물고 "저기요 제가 들고 있는 통에서 딸기 한알이 굴러 떨어져서 다른 통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하나 집어넣은 거예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오지랖으로 중무장 한 아주머니가 아주 작정을 한 듯

"저울에 안 달아보고 어떻게 알아요?"라고 했다

아니 딸기 한알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거라고 세상에나 오지랖도 풍년이지 않은가?

딸기 한알 때문에 뭐 이런 조카 슬리퍼 같은 아줌마를 다 만나나 싶어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나는 정색을 하고 아주머니에게 물었다."제가 흘린 딸기 한알을 비슷한 크기로 주워 담았어요 뭐 잘못됐나요? 주워 담기 전에 저울에 달기라도 했어야 했나요?"

한마디 했다가 찔끔할 줄 알았던 내가 세게 나오자 오지라퍼 아주머니는 버벅 거리며 당황스러워했다.

이 모습을 보았다면 남편은 틀림없이 애들도 아니고 뭐 딸기 한알 을 가지고 그러냐며 내게 그만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친김에 쐐기를 박아 버렸다. 간혹 나의 처진 눈 덕분에 마냥 너그러운 사람인 줄 알고 들이대다 식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내가 주춤한다거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다른 날 나처럼 눈 고리가 처진 인상의 검은 머리의 아줌마가 다음 오지랖의 타깃이 될게 틀림없다.

떴는지 안 떴는지 알 수 없는 눈이 월매나 무기인지 너는 모를 것이다 라는 마음을 담아 있는 힘껏 눈을 치켜뜨고는 제법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보세요 만약 제가 아까 떨어뜨린 딸기 한알 보다 무게가 더 나가는 것을 담았다면 계산대에서 그만큼 더 내면 되는데 왜 그쪽이 제게 그러면 되네 안되네 하죠? 그리고 남에게 이야기할 때는 제대로 알고 이야기하세요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내뱉지 마시고!"

더 이상 딸기 한알에 대한 할 말이 없어진 아주머니는 융단폭격이라도 맞은 몰골로 문워크를 하듯 카트를 뒤로 뺐다.

그때 옆쪽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다가오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직 감정이 채 가라앉기 전인 나는 나름 부릅뜬 눈으로 "뭐죠?"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아니요 무슨 말을 시키려는 게 아니라... 그런데 뭔 일 있어요?" 했다.

오홍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렸을 테고 뭔 일인지 궁금했구먼 싶었다.


이때가 기회다 싶던 나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 이야기했다.

"아니 제가요 조금 전에 저 밑에 딸기 통을 하나 들어 올리다 딸기 한알을 다른 통에 흘렸어요

표시를 해놓은 것도 아녀서 어떤 게 떨어진 한알이지는 알 수 없지만 비슷한 걸로 담았어요"

아주머니는 오래간만에 재밌다 싶었는지 "그래서요?"라는 추임새를 넣었다.

원래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난 것이 아니던가

나는 추임새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그랬는데 어느 아주머니가 제가 더 큰 것 을 다른 통에서 담기 라도 했다는 듯이 "그러는 거 아니에요!"라는 거예요. 글쎄!"

내게 감정이입이라도 되어 대신 싸워 주기라도 하겠다는 겐지 듣고 있던 아주머니는 "

"어머 어머 진짜 웃긴다 그 아주머니 어딨어요?"라는 게 아닌가

나는 마치 어린 시절 별 찌지구리 한 것을 두고 다른 아이와 싸우고 있는데 지나가던 동네 언니가 자초지종을 물어보며 역성이라도 들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게 말도 안 되는 것으로 트집 잡다 융단 폭격이라도 맞은 듯이 넉다운이 되어버린 아주머니를 나는 유치뽕짝 한 손끝으로 아이처럼 가리키며 "저기 파란 옷 이요!"라고 했다.

그 순간 파란 옷의 아주머니는 사색이 되어 뛸 듯이 카트를 밀고 우리 시야에서 사라 졌다.

생면부지의 우리는 동지라도 되는 양 미소 띤 얼굴과 눈빛으로 하이파이브를 공중으로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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