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Aug 07. 2022

벽난로를 쓰려는 자 폭염을 견뎌라

삼복더위에 땔감나무 날라 봤니?


토요일 아침 우리는 정원을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뭔 일인지 모르는 강아지 나리는 좋아 쒼나를 온몸으로 뿜어 대며 정원을 뛰어 댕겼지만 우리 부부의 손길은 분주하기만 했다.


정원 입구의 나무가 지난해보다 훨씬 커지고 뻗어 나온 가지들도 풍성해져서 식물 묶는 끈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입구를 훤하게 했다.

조롱조롱 심어둔 화분에서 무럭무럭 잘도 커 주고 있는 토마토 화분들도 한옆으로 치워 두었다.

또 손가락에 고무판이 달려 있는 색색의 목장갑 들과 크기와 모양이 다른 바구니들도 찾아 두었다.

이제 곧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지구를 지키는 파워레인저는 아니지만 우리 집 겨울을 지킬 파란색, 노란색, 핑크색의 장갑들은 오늘 톡톡히 그 능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독일 물가도 여기저기서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고 기름값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처럼 갑자기 기함할 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다.

앞으로 전기세도 가스값도 천정부지 올라갈 예정이고 올겨울 가스 공급이 아예 안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이미 뉴스와 기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전해진 지 오래다.


해서 발 빠른 이웃집 들은 이미 월동준비들을 끝냈다.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기름을 사다가 미리 지하에 쟁여 둔 집들이 많고 우리처럼 가스보일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비책으로 벽난로 등의 대체 난방 기구들을 준비하느라 벽난로 값도 뛰었다.


우리는 다행히 몇 년 전에 드려 놓은 벽난로가 있어 만약 가스를 극도로 아껴야 하는 상황 또는 최악의 상황으로 가스 공급이 되지 않으면 벽난로가 있는 거실에서 모든 생활을 해야 하나 고민이다.


이 삼복더위에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는 집은 비단 우리 집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한낮기온 바깥 기온 온도계가 36도를 넘어 38도 가까이 가고 체감 온도가 40도이던 날이 있었다.

야외 배변을 하는 강아지와 그야말로 볼일만 빨리 보고 들어와야 할 만큼 그날의 폭염은 대단했다.



현관문을 열기가 무시무시하게 건조하고 후끈한 공기는 코로 들어오며 숨 쉴 때마다 사막을 연상케 했고

살갗을 태울 뜻 따가운 햇빛은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지경이었다.

강아지 나리와 후딱 하니 산책을 마무리하는데 우리 집에서 셋집 건너의 이웃집 아주머니와 식구들이 걷기도 힘든 더운 날 밖에 모두 나와 나무를 쌓고 있었다.


벽난로용 땔감 나무였다. 보통 가을에 땔감 나무를 받아 쌓는다 빨라야 9월 10월인데 7월에 겨울 땔감 나무를 쌓고 있는 이웃들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다 땔감 나무 동나면 어쩌나 해서 말이다.

작년에 미리 나무를 올가을에 받기로 예약을 해 두었지만 삼복더위에 땔감 나무 쌓느라 난리인 이웃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예약은 예약이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지면 어찌 달라질지 알 수 없는일 아닌가.


안 되겠다 싶어 우리 집 땔감 나무를 받는 쌍둥이네로 연락을 했다.

다행히 휴가 가기 전에 한번 가져다줄 수 있다 해서 급하게 약속을 잡았다.

더운 날 땔감 나무 쌓느라 땀띠가 난다 해도 추운 겨울을 생각하면 한번이라도 더 쌓아 두어야 안심이 되지 싶었다.

이더운날에 가을 처럼 땔감 나무 쌓아 두고 감자탕 보글보글 끓일수 없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무를 미리 받을 수가 있다는데.


(다른 해 땔감 나무 받던 날 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벽난로 땔감 나무 배달 오는 날)


쌍둥이 들까지 태우고 오느라 아저씨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러나 정원 입구를 정리해 두었더니 자동차에 달려 있는 짐칸 수레를 지난번보다 빠르게 정원 안으로 들여올 수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내년부터는 나무를 판매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너무 아쉬워했다. 여기보다 가격 대비 좋은 나무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유인즉슨 환경보호법이 더 강화되고 나무 자르는 것에 관한 규정도 까다로워지면서 자기네 숲이지만 판매할 나무를 베기 위해서는 비싸고 큰 기계를 가지고 24시간 7일 동안만 자를 수 있도록 허락이 났다고 한다.

그 기계값이 비쌀 뿐만 아니라 문제는 기계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로 일꾼들을 꾸리려 해도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한다. 거기다 한 번에 나무를 잘라다 보관할 창고도 마땅치 않고 말이다.


쌍둥이 아저씨네 아주머니가 삼촌에게 물려받은 작은 숲에서 자기네 벽난로용 나무 베어다 쓰다가 이웃들 조금 나눠 주고 그러다 여러 사람들이 부탁을 해와서 취미처럼 시작했던 나무 판매 여서 이런 여러 가지 상황에서는 그만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어쩌겠는가 우린 너무나 아쉽지만 사정이 그렇다는데….

우리는 내년을 위해 또 다른 나무 판매상을 찾아야 한다.

아저씨와 나무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는 요즘의 핫이슈인 에너지에 관한 테마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일에서는 2024년부터 가스보일러와 기름보일러 설치가 전면 금지되었다

우리 집처럼 기존에 있던 가스보일러는 계속 사용할 수 있으나 우리 집 가스보일러가 워낙 오래된 것이라 언제 멈출지 모른다는 거다.

앞으로 새로 설치할 수 있는 것은 태양열을 이용한 보일런데 이게 시설비가 만만치 않다.


이미 15년 전에 태양열을 이용한 보일러로 바꾸었다는 아저씨네 보일러 이야기부터

가스 대란이 일어나면 그 여파로 전기 공급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고 겨울에 전기가 끊기면 며칠 이어도 카오스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어쩌면 겨울에 닥칠지도 모르는 에너지 공급의 문제가 점점 심각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스도 가스 지만 만약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지? 가뜩이나 어두침침한 독일 겨울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상상만으로도 아득해졌다.

당장 주방 부터 올스톱이 될 터였다.인덕션, 냉장고, 오븐, 전자렌즈, 전기밥솥,... 그 어느 것도 전기가 없이 되는 것이 없었다


한참을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며 예상 시나리오들을 나누다 보니 마음으로는 설마 그런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겠어? 하면서도 머릿속은 이미 전쟁터가 되었다.


9월에 나무를 한번 더 가져다 주기로 하고 아저씨가 떠난 후에도 우리는 한동안 나무 쌓는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

정원 가득 들어와 있는 나무에 마음이 푸근해 지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생각들로 심란해진 데다가 온도가 쭉쭉 올라가고 있어 땡볕에 나무를 나르려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무를 마냥 정원에 팽개쳐 둘 수도 없고 점심 먹고 하자 조금만 쉬었다 하자

이리 미루고 저리 미루다…

우리는 막내와 함께 전투적으로 나무를 쌓기 시작했다.

손목이 시원치 않은 나는 주로 나무를 안에다 쌓는 일을 하고 남편과 막내가 나무를 가져다주는 일을 반복했다.


무한 반복 나무를 켜켜이 쌓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온 가족이 겨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문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와도 함께 덮은 담요에서 만나 지는 서로의 온기에 따듯했고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어쩌다 정전이 되어 촛불 켜고 앉아 옛날이야기 들어도 마냥 재미나고 좋았는데 요즘은 너무 뭐가 많아서 걱정도 덩달아 많아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삼복더위에 얼음물 마셔가며 더위를 시키고 헉헉 대며 나무 가득 쌓아두고는 든든했고 행복했으니 되었다.

아직 만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너무 미리 보기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을 하느라 힘뺄 필요 없다

가끔은 단순 해질 필요도 있다

나무를 차곡 차곡 쌓아 올리는 것 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도둑은 휴가철을 좋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