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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18. 2022

파란 하늘 사이로 여우비가 내려와


얼음 잔뜩 넣은 아이스커피가 반갑던 여름이 지나갔다.

이제는 어느새 머그잔 잡은 손바닥에 따끈함이 전해지는 느낌이 좋은 선선한 가을이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이번 주말은 계속 비가 온다고 했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요즘 일기예보는 시간대 별로도 나와 있어서 독일의 변화무쌍한 날씨 변화도 상당히 가깝게 맞추고는 한다.


때마침 주말 오전에 올해 마지막 벽난로용 땔감 나무를 받기로 되어 있어 조금 심란했다.

다른 때 같으면 날짜를 미루어 서라도 비 오는 날 나무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독일에서는 나무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가스값 기름값이 3배 에서 4배까지 올랐고 앞으로도 계속 오를 예정이라 주택에 급하게 벽난로 설치한 집들이 대폭 늘었다.

그러니 당연히 나무가 그만큼 더 필요한데 갑자기 그 많은 양의 나무를 구하려니 될 턱이 없다

그래서 벽난로는 있는데 나무를 확보하지 못한 집들이 많다.

한마디로 아궁이는 있는데 땔감 나무가 없어 불을 피우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나무는 준다고 할 때 무조건 받아야 한다. 그나마도 우리는 작년에 예약한 것이라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날씨는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다

비가 오면 애써 말린 땔감 나무들이 쌓기도 전에 젖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당장 쓸 땔감 나무는 아니지만 나무를 쌓을 때부터 젖게 되면 보관할 때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바닥에 커다란 비닐을 미리 깔아 두고 나무를 받을까?

2층 베란다에 있는 파라솔이라도 미리 펼쳐 둘까? 별생각을 다하고 있었다.

(벽난로 용 땔감 나무 받는 것이 뭐시여? 싶은 분들을 위해...

     벽난로를 쓰려는 자 폭염을 견뎌라)


그런데...

이른 아침 파란 하늘에 햇빛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옆집의 장승 같이 커다란 키다리 해바라기 꽃과 노랗게 익어 가는 모과나무도 환하게 비춰주는 청명한 가을 날씨였다.

오호라 그래 일기예보가 어떻게 매일 딱딱 맞아 떨어지겠나?

이렇게 가끔 틀려 주기도 해야지 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정원 한 귀퉁이에 땔감나무들을 쌓아둔 휴텍의 옆을 조금 더 치워두고 안으로 차가 들어와야 하니 나뭇가지들도 묶고 나무 받을 준비를 했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 가고 골목 끝에 나무 담은 통을 달고 있는 쌍둥이네 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 집에 나무 가져다주는 것이 익숙해진 쌍둥이네 아저씨는 간단하게 정원 안으로 차를 들이고 나무를 시원스레 쏟아 주었다.

나무들이 정원 한가운데 묵직한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렸다.


나무는 연탄처럼 개수로 받은 것이 아니라 평방미터당으로 받는다 즉 면적에 맞춘 통으로 배달이 오기 때문에 몇 개의 나무 조각이 그 통 안에 실린다는 것은 명확히 정해져 있을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어쩐지 지난번보다 나무가 조금 줄어든 느낌이었지만 그마저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고 일단 땔감 나무들을 정원 안에 들여놓았다는 것 자체로 마음이 놓였다.

물론 진짜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지만 말이다.


일단 땔감 나무들은 정원 안에 무사히 들여놓았고 파란 하늘이니 당분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이라 빨리 문을 닫는 우체국부터 먼저 다녀오고 본격으로 나무 쌓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전날 우편물 하나가 집에 아무도 없을 아침나절에 다녀갔다. 우체통 안에 어디서 언제까지 찾아가라는 우체국 쪽지만 남겨진 체 들어가 있었지만 그 우편물이 무엇인지 짐작이 되었다.

요즘 열심히 운동을 하며 근육을 키워 보려는 막내가 주문한 프로테인  것이 틀림없었다.

독일에서는 만 15세가 되면 부모가 동의하면 피트니스센터를 다닐 수 있다.

우리로 3 막내는 요즘 친구들과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며 운동하느라 식단도 관리하고 프로테인 도 주문해서 먹고 있다.

시간이 늦으면 이번 주에 못 찾게 되니 빨리 우편물을 찾고 간단히 장을 본 후에 본격적으로 나무 쌓는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차 유리창 위로 빗방울이 한두 방울 똑똑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후드득 굵은 빗방울로 바뀌고 있었다.

하늘은 파란데 그파란 하늘 사이로 여우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 믿고 정원 안에 땔감 나무들 위에는 덮게도 씌워 두지 않았는데 말이다.

마음이 급해졌다.

집 앞에 차를 주차해 두고 뛸 듯이 집으로 들어온 우리는 모자 달린 잠바 하나씩을 걸치고 후다닥 정원으로 나가 정신없이 나무들을 주워 날랐다.

평소 두세 시간이 걸려 쌓던 나무 들이다. 조금이라도 비 덜 맞게 빠르게 쌓으려니 움직이는 손이 마음만큼 분주했다.


그럼에도 정원 가득 쌓인 나무들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크기가 똑같지 않은 나무들은 집어 나르는데도 쌓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힘 좋은 막내는 커다란 통에 나무들을 한가득 들어다 주었고 남편은 그보다 작은 통에 그리고 나는 나무들을 미리 자리를 마련해 둔 한옆에 쌓아 올렸다.

맑은 날씨에 계속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으니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나무들이 이미 비를 조금씩 맞아 젖어 가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평소보다 더 빨리 많은 나무들을 들어 나르느라 세 식구가 비와 땀에 흠뻑 젖었다.


허리가 휘도록 나무를 다 쌓고 나니 그제야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에 내리던 여우비가 얄미워 눈을 흘기다 보니 이웃집 토마토 위에 씌워진 우산이 눈에 들어왔다.

아.. 우리도 진작 우산이라도 씌워 두고 나무를 날랐으면 조금쯤은 덜 허둥대도 됐을걸.. 왜 그 생각을 못했나 싶었다.

어쨌거나 쌓아 놓은 장작을 보니 마음은 푸근해졌지만 팔다리와 어깨는 묵직했고 허리는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운동 무리하게 하고 난 다음날 같을 것이다. 파스라도 붙여야겠다.

 

P.S: To 애정 하는 독자님

주말에 비 맞으며 장작 나르다 허리에 파스 바른 김 자까 인사드립니다.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니 계절도 바뀌고 할 일도 산더미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란 카나리아섬의 여행기가 아직 몇 편 남아 있어요.

다음 편은 동네 장 구경 갔던 내용이 나올 예정이지만 시간이 조금

걸릴 듯싶어요.

중간에 일상 이야기들도 써 가며 이번에도 어떻게든 여행기를 마무리하렵니다.

여행기를 순차적으로 보시고 싶은 분들은 김씨네 유럽 최고의 섬 표류기를 구독하시면 됩니다.

모두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고 향긋한 모과향 같은 가을날 되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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