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 침대의 올바른 사용법
햇수로 9년 전 우리는 작은 빌라 같은 독일의 Wohnung 보눙에서 정원이 딸린 주택 Haus 하우스로 이사를 왔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독일의 레스토랑을 주택으로 개조해서 이사를 했다.
집안 구석구석을 수리하고 가정집으로 바꿔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중에서도 비어가르텐으로 사용되던 아무것도 없던 시멘트 바닥을 정원으로 만드는 일은 작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우리는 띄엄띄엄 파라솔 고정용 쇠막대기만 있던 삭막한 회색의 시멘트 바닥에 초록의 풀을 심고 조약돌로 아기자기한 꽃밭을 만들고 벽돌을 높게 쌓아 텃밭을 일구었다.
그 여름 유치원 다니던 꼬맹이가 올여름 이면 9학년이 된다. 우리로 하면 중3이 되는 거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이나 우리 정원의 텃밭은 그동안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 글을 쓰며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사진들을 다시 꺼내 들었다.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사진 속의 막내는 야리야리 어리고 남편은 젊디 젊었으며 멍뭉이 나리는 아기 아기 하다.
그렇게 텃밭의 변천사는 흐르는 시간과 함께 우리 집 정원의 살아 있는 역사가 되었고 우리 삶의 성장기가 되어 주었다.
어느 해 에는 텃밭에 심은 토마토, 오이 가 잘 돼서 밥상에 자주 샐러드가 올라왔고 또 어느 해는 캐도 캐도 계속 나오는 감자가 풍년이었다.
이웃집들 나눠 주고도 남을 만큼 많은 감자로 수프도 끓이고 전도 부치고 감자 요리가 유난히 많았던 해였다.
그리고 다른 해에는 부추, 깻잎이 풍년이 여서 한국 요리 강습 때마다 잔뜩 뜯어다 한국에서 처럼 사용하고는 했다.
블루베리, 요하네스 베리, 체리, 사과 등등 과일들이 풍성하던 해에는 베리들로 과일잼을 만들거나 식초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그리고 예쁜 병에 담아 핸드메이드 스티커를 붙여 어여쁘게 포장해서 친구들과 이웃에 선물을 하기도 했다.
농사지은 것들로 제철 밥상을 만들기도 하고 농부 흉내를 내던 세월을 거쳐 어느 해에는 꽃밭만 풍성하던 해도 있었다.
그해 봄 독일에서 일명 야채 침대라 불리는 채소들을 심는 용도로 나온 높고 탄탄한 화분 통을 사다가 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들이 자라나..,
밖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정원을 통해 우리 집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게 조금 덜 했으면 해서 였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가니 나무들이 자라나며 그 안이 좁아져 버렸다. 높이 자라 자연스런 바리케이드가 되어 주기도 전에 나무들은 뿌리를 제대로 펴지 못해 쌔들 쌔들 시들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급기야 햇살 가득하던 지난 3월 어느 날 꽃밭에 꽃을 심으며 이 야채 침대 안에 있던 나무들도 캐내어 자리가 조금 더 넓은 맨 땅에 옮겨 심어 주었다.
이제는 훌쩍 자라 아빠 보다도 키도 크고 힘도 센 막내의 야무진 삽질 덕분에 우리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야채 침대를 비워 냈다. 우리는 이제야 제용도로 사용될 야채 침대 안에서 기존에 있던 흙들 중에 살려 낼 것들은 그대로 두고 너무 마른 흙은 덜어 내며 바닥을 고르고 평평하게 손질했다.
그리고는 채소용 흙으로 널찍하고 우물처럼 깊은 야채 침대 안을 꽉꽉 채웠다.
비로소 야채 침대에 채소를 심을 준비가 모두 끝난 거다.
우리는 그 위에 정원 용품 상가에서 데려온 채소 모종들을 줄 세워 놓았다. 두 가지 종류의 상추와 양파, 파슬리 그리고 콜라비 모종이 그림을 그리듯 각자의 계획된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햇살 품은 3월의 정원에서 우리는 그렇게 채소 모종을 야채 침대 안에 심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뭐가 뭔지 헛갈릴까 봐 작은 이름표들을 함께 꽂고 구역도 나누어 심었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채소들은 각자 본연의 모습 그대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무럭무럭 잘 자라 나 주고 있다.
중간에 펑펑 함박눈이 내려 깜짝 놀란 날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풍성한 잎들을 내 보이며 자라는 적상추와 야들야들 파란 상추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진다.
꽃보다 상추다!
가늘 가늘 하던 양파의 줄기는 굵은 난이 뻗어 나가듯 자라고 있고 땅속에서 무 맛의 콜라비가 동그랗게 자라고 있을 콜라비 잎도 쭉쭉 커올라오고 있다.
한 잎 베어 물면 달콤하고 물이 착하게 흘러나올 콜라비로는 빨간 고춧가루에 파, 마늘 액젓 넣고 버무려 무생채를 무치면 여름내 맛난 반찬으로 먹을 수 있을 테다.
비빔국수에도 바비큐에도 잘 어울린다.
잘못 고른 이 동네의 심 박힌 무 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을 낼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파릇한 파슬리는 지금도 몇 개씩 따다 샐러드에 넣기도 하고 파스타에 넣기도 한다.
아참, 우리 텃밭의 비장의 무기 하나 더 미니 딸기 밭이다.
예전에도 몇 번 딸기를 심었는데 햇빛 양이 딸기를 심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이었던지 매번 잘 되지 않았다.
어느 때는 어렵사리 열린 딸기 한두 개를 동네 새들이 서리해 가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잘된 농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느낌이 온다. 가장 볕 잘 드는 곳을 선택해 잡초 무성하던 돌 화분을 정리해서 미니 밭을 만들고 채소 모종들 심던날 딸기 모종도 심었다.
처음에 심었을 때는 작디작은 잎들이 이제 제법 굵직굵직하게 자랐다.
그리고 하얗고 예쁜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얀 꽃 지고 나면 조롱조롱 딸기가 달리게 될 것이다 이번엔 딸기로 쨈도 만들 수 있을까?
아직 열리지도 않은 딸기밭에서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이렇게 우리의 작은 텃밭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들여다 보고 종종 물도 주노라면 힐링이 따로 없다.
우리는 텃밭의 채소들이 그때그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에게 받는 공감과 위로 와는 다른 색의 다독임을 받는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잠시 작은 쉼이 머물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