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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07. 2022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저 멀리 태양이 이글거리며 하늘을 오렌지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눈에 가득 담긴 선명한 일출이 아니더라도 스쳐 가는 바람의 온기가 '오늘 날씨 끝내 줄 거야~!'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살랑이며 불어오는 푸근한 바람에 색색으로 물들고 있는 나뭇잎 들과 어느새 갈색으로 익어버린 도토리들이 나무 밑에 소복이 가을을 남긴다.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파란 하늘은 가수 송창식 님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로 시작되는 노래 푸르른 날을 흥얼거리게 만든다.
빨갛게 익어 따 주기만 을 기다리는 농익은 사과처럼 가을은 표 나게 익어 간다.


어느 날 이른 아침 문득 다시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출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살다 보면 언젠가의 기억이.. 추억이.. 오롯이 선명하게 다가올 때가 있지 않은가?

생생하게 마치 어제일 처럼 말이다.


몇 년 전까지 화요일, 목요일 아침 이면 동네 조깅 동우회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공원 안을 달렸다.

우리가 조깅을 하던 쉔펠더 공원은 크게 한 바퀴 돌면 5km 다.

햇살이 좋은 날은 거기서 연이어 한 블록 옆으로 이어져 있는 식물원을 한 바퀴 더 돌거나 길 건너 아우에 공원으로 들어가 한 바퀴 더 뛰고는 했다.

그렇게 하루에 적게는 7Km 많게는 10km를 달리고는 했었다.

달리기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요 긴 시간 기술을 터득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운동화와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 언제 어디서 던 뛸 수 있다.

물론 뛰기 전과 뛰고 나서 스트레칭은 근육이 뭉치거나 다치지 않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꾸준히 뛰는 습관을 만드는 것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말이다

아 이게 몇 년 만 이던가?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달리다 만난 그때의 태양이 떠올라서였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운동화를 다시 꺼내 들었다.

우리가 만나 달리던 쉔펠더 파크 옆으로는 이제는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쇄된 역사가 하나 있다.

공원을 가로질러 폐역을 나란히 뛰어갈 때면 때마침 마중 나온 일출을 만나고는 했다.

그 햇살을 마주하며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다 보면 마치 바람을 가르고 햇살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고는 했다.

그 간질간질하고 상큼한 느낌이 좋아 다리가 저리고 숨이 차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근무 하기 시작하면서 '아침에 뛰고 일하러 가면 힘들어서 일에 집중이 안돼!'. '저녁에 퇴근 후에는 집에서 쉬고 싶어'등등 현실적이지만 뛰지 않아도 될 핑계들을 자주 집어 들었다.

우습게도 달리는 것이 일상의 습관이 되도록 만드는 것에 비해 습관을 잊는 것은 너무도 손쉬웠다.

거기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자 빠진 김에 쉬어 간다의 정수를 누리며 합당한 사유를 이리저리 들고뛰지 않았다.


한때 친구들과 미니 마라톤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때는 한번 달리면 5km, 7km 뛰는 것에 몸이 적응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걷는 것도 그렇게 긴 구간은 하지 않은지 오래다.

마음은 당장 미니 마라톤도 뛸 수 있을 듯 충만했지만 모처럼의 기분으로 오버를 떨다가 따라 주지 않는 몸으로 무리하고 퍼질 수는 없다. 병원 일은 해야 하니까 말이다.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조금씩 천천히 시작하다 보면 예전처럼 달릴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그때까지 꾸준히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뛰고 식겁해서 때려치우지 않으려면 너무 힘들지 않아야 한다 또 거기에 달콤한 상도 있어야 한다.


우선 가장 짧은 구간을 선택하기로 했다

집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한 블록 떨어진 동네 마트로 달려갔다가 올 때는 그 안에 빵집에서 커피를 시켜 들고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걸어서 돌아오리라 커피 들고 어떻게 뛰어 오겠는가 음하하하

그렇게 나를 위한 상까지 맞춰 두고 운동복에 운동화 신고 선글라스에 헤드폰 끼고 달릴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너무 오랜만에 뛰다 보니 몸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었다

가벼운 맨손 체조로 스트레칭을 끝낸 나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은 가볍게 쌩하니 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오랜 시간 쉬고 있었던 발목과 어깨는 기우뚱거리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수 놓인 가을 낙엽이 너무 이뻐서... 동글동글 바닥에 깔린 도토리에 걸려 넘어질까 봐

라는 핑계를 대며 중간중간 멈춰 섰다.

그렇게 뛰다가 걷다가 그리고 다시 뛰었다.

풀밭에서 노닐고 있던 우리 동네 절친 까마귀는 그런 내 모습에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따 시방 그게 뛰는겨? 걷는겨?"

나는 괜스레 제발이 저려 묻지도 않는 까마귀 곁을 지나치며 굳이 한마디 했다.

"뛰는겨!"


집에서 가장 짧은 구간 중에 한 곳인 그 길이 막상 뛰다 보니 짧지 않았다.

이마에 땀방울은 송글 송글 맺히고 헉헉 거리는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쯤 동네 마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리를 살살 풀어 주며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는 나는 내게 폭풍 칭찬을 했다.

'잘 했쓰, 어쨌거나 시작이 중요한 겨 포기하지 않고 뛰긴 뛰였잖여!'

그리고 달달한 라테 한 모금 마실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며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빵가게에 하얀 셧터가 내려가 있었다.

그리고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내부 수리 중...

왜 하필 오늘... 나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뛰어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나 동네 친구 까마귀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워매 여적 그러고 있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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