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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19. 2022

종이를 버리는 것도 일이다.

병원 서류를 분쇄하고 버리는 일


아날로그적인 면모들이 아직 곳곳에 남아 있는 독일에서는 시, 은행, 보험회사 등 공공기관에서 문자나 메일이 아닌 편지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정집 우편함도 수시로 꽉 차고는 한다.


그러므로 최소 몇 백 명 에서 많게는 수천 명의 환자들이 다니고 있는 독일 가정의 병원 우편함은 언제나 자리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병원에서 환자 진료 편지들을 받기 때문이다

주말 지나서 또는 휴가를 다녀오면 우편물의 양은 실로 어마 무시하다.

뻥좀 보태자면 그 수가 아이돌 팬레터를 방불케 한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주치의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 독일에서는 예를 들어 안과, 피부과, 정형외과, 흉부 내과 또는 심장 내과 등등 전문의 병원에서 검진이 필요할 때 각자의 가정의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아 간다.

그리고 환자가 다녀간 그 병원들에서는 어김없이 진료후에 검사결과,진단,치료방법,추천하는 약물,테라피 등이 자세히 적힌 편지를 그 환자의 가정의 병원으로 보내 주도록 되어 있다.

매일 쌓이는 다발의 편지들을 곱게 펴서 원장 선생님이 일일이 읽어 보고 노티를 주면 직원들은 그종이들을 정리하고 스캔을 해서 각각의 환자 데이터에 파일로 저장하고 백업을 해둔다.

필요한 약 처방 플랜이 바뀌었거나 수술후 치료 방법 또는 목적이 바뀌어도 환자 데이터 방에 파일로 따로 정리해서 넣어 둔다.

가정의 병원은 이렇게 환자의 자체 진료 기록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 받은 진료 기록 들도 보관해 두고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법적으로 가정의 병원에서는 환자의 모든 진료 기록들을 10년 사망한 경우 5년간 보관해야 한다.


우리 병원은 그 자리에서 60년 넘게 가정의 병원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남편까지 세명의 의사가 다른 시간 같은 자리에서 가정의 병원을 이어 오고 있기 때문에 대를 이어 다니는 환자들도 많고 그만큼 기록도 많다

물론 이미 시간이 지난 기록들은 폐기 처분되었지만 아직 우리가 병원을 맡은 지 십 년이 되지 않았기에 그전 원장 선생님 때부터 가지고 있던 진료 기록들이 상당하다.

종이로 보관하고 있는 예전 진료 기록들은 아예 서류방 을 따로 만들어 그대로 보관하고 있으며 우리 때부터의 진료 기록들은 스캔하고 파일을 만들고 백업해 두고 있다.


매번 쌓이는 진료 편지들 각종 검사서들, 처방전, 소견서 등등 의 서류들을 스캔하고 파일로 저장하고 백업이 끝나면 종이는 따로 모아서 분쇄 하고 폐기 처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모든 종이를 그대로 모아 둔다면 매일 종이로 환자 대기실의자를 새로 만들고 진료실 인테리어를 종이들로 한다 해도 자리가 부족해 서있을 곳도 없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 종이들은 개인정보 보호법에 의거 아무 곳에나 버릴 수 없다

세가지 정도의 선택 사항을 가질수 있는데 정말 이지 종이 버리는데도 일이다.

우선 첫 번째 직접 한 장 한 장 잘게 분쇄해서 버린다.매일 새로 받는 서류량이 워낙 많다 보니 시간이 너무 너어무 많이 든다.

앉아서 한 올 한 올 종이를 기계로 자르다 벽 보면 벽이 줄무늬로 볼일때 까지 잘라도 다 못끝낼때가 많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효용성 대비 더 났다.시간도 돈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개인정보 보호법에 해당되는 서류들을 분쇄 하고 폐기하는 전문 파쇄 업체와 계약해서 때 되면 가져가는 것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업체와 계약하고 종이를 가져가기로 한 날짜까지 일이 많아 아직 파일 작업이 덜 끝나 버릴 수 있는 종이가 많지 않을 때는 비용 대비 손해다. 또 병원 일 이라는것이 중간에 변수들이 많아 업체와 날짜 시간까지 서로 맞추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

세 번째는 허가받은 서류 파쇄 업체에 직접 가져다 버리고 종이 용량만큼 지불하면 된다.

직접 운반해야 한다는 귀찮음이 있지만 언제든 우리 상황에 맞춰 필요한 때 가져가서 처리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가격 대비 시간 대비 가장 나은 방법이다.

해서 우리는 일정량이 모이면 주로 차에 가득 싣고 가서 버리고 오고는 한다.



월요일 오전 진료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차에 차곡차곡 그동안 모아 두었던 종이들을 차에 싣었다.

혹시라도 길에 작은 종이 쪼가리라도 흘리면 안되기 때문에 작은 플라스틱 통 두 개에 종이들을 나눠 담아 들고 날랐다.

자동차 트렁크에 택배 받고 버리지 않고 놔두었던 커다란 종이 박스 두 개와 차 뒷좌석에 놓아둔 커다란 통 두 개가 다 찰 때까지 작은 통으로 물동이 이고 오가는 아낙네처럼 조심조심 종이들을 옮기려니 헛웃음이 터졌다.

다른 월요일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어느 월요일 오전 진료 시간 30분이 지나서 였다 누군가 병원 초인종을 누르고 병원 문을 두드려 댔다.

보통 같으면 30분이나 지난 시간 이면 안 열어 주는데 그날은 다급한 듯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혹시나 응급한 상황인가?싶어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다음날 받아가도 되는 처방전이 필요 했던 환자가 마트 갔다가 집에 가는길에

혹시나 하고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내가 생각 했던 혹시나가 아녀서 다행이긴 했지만 속으로는 욕메들리를 부르짖고 있었다

'아줌마 지금 다녀온 마트도 영업시간 30분 지나서는 못들어가요!'


필요한 처방전을 받고 나가며 베시시 웃으며 환자가 했던 말에 우리 모두가 웃었다.

"어머 이제 오늘 일 끝나신 거네요 좋겠어요 모두 멋진 오후 되세요"

영업시간 지났다고 식당의 일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듯 병원 간판에 적혀 있는 진료 시간만 일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보통 월요일 오전 진료가 끝나면 주로 오후는 왕진 환자들 왕진을 간다

만약 왕진 일정이 없으면 그날처럼 셔터 내려간 병원에서 서류 처리를 한다.

다른병원에서 진료 편지를 받는 그 이상으로 기관 이나 다른 병원 으로 편지 쓸 일도 많고 서류를 보내야 할 일도 많다.

식당에서 영업시간 외에도 식재료 사러 시장도 가야 하고 재료 밑손질도 해 둬야 하고 또 밑반찬 과 김치 등도 미리 만들어 두어야 하듯이 말이다


직원들과 줄지어 파쇄할 종이를 나르는데 이젠 친구가 된 이웃집 냥이가 낭창낭창 다가오더니 한옆에 철퍼덕 주저앉아 우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네 뭐하냥 기차놀이 하냥? 나도 끼워 주면 안되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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