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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14. 2022

병원 끝방의 이상한 소리

60년 된 독일 병원의 한낮 괴담


폭풍 같던 오전 진료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환자들의 혈액검사서를 정리하던 B가 말했다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아?"


환자들이 필요하다고 부탁한 소견서와 처방전들을 쓰느라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고 있던 나는 손가락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혹시나 자판 소리에 B가 말했던 이상한 소리가 묻힐까 싶어 멈춰 있던 나는 "뭔 소리?"라고 되물었다.

기다려도 내게는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병원은 주택가와 대로변 중간에 위치해 있어 시간 되면 울려오는 교회 종소리도 옆집 잔디 깎는 소리도 바로 옆에서 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어느 때는 자전거 타고 병원 앞을 지나다니는 동네 꼬맹이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병원 사무실에서 마주 보이는 전차 (트람) 주차장에서 트람이 돌아 나가는 기계음 같은 소리가 가까이 들려올 때도 있다.


평소, 병원의 창문 열린 틈새로 이런저런 소리들이 들려오기도 하니…

어쩌면 B 가 밖에서 난 소리를 안에서 들은 것으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했다.

그런데….

하던 컴퓨터 작업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짧고 낯선 소리가 귓가를 날카롭게 스쳐 갔다.

순간, 직원 B와 나는 눈을 마주친 체 "어? 이소리야?",

"들었지? 방금?"이라는 말을 서로 동시에 쏟아냈다.


병원 안에는 1번 진료실에서 대학병원, 종합병원에서 날아온 환자들의 퇴원 편지를 읽고 있던 원장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서로의 움직임 도 감지될 만큼 조용한 곳에 묘한 소리가 팝콘 터지듯 갑작스레 들려왔다.

뭐지?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들렸다 싶었는데 빠르게 사라져 버린 의문의 소리는 어디서 온 것인지 조차 알 길이 없었다.


소리의 정체를 알려면 우선 어디서 온것 인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병원 복도에서는 타박타박 탁탁탁 B와 나의 발소리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려오고 있었다

가정집에서 개인 병원으로 개조된 지 60년이 넘는 오래된 병원은 밝지 않은 독일 조명 중에서도 꽤나 어두운 편에 속한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채혈실, 직원 휴게실, 진료실 1, 진료실 2, 진료실 3 복도 그 어디서도 의문의 소리의 출처를 찾을 수 없었다.

벽에 걸린 시곗바늘의 초침 움직이는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가운데 불현듯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소리로 괜스레 으스스해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정체불명의 소리가 바로 복도 끝방에서 들려 왔다.

끝방은 병원 서재 이기도 하며 환자들이 많아 대기실을 두 곳으로 나눠야 할 때면 대기실 이 되기도 하고 채혈을 누워서 해야 하는 환자가 있을 때면 채혈실이 되기도 하며 의료품을 보관하는 보관소로도 쓰인다.

다용도로 쓰이는 이 끝방에는 환자들의 오래된 진료카드를 보관하는 서랍장도 들어가 있다.


세월이 묻어나는 철제 서랍장 안에는 해묵은 진료카드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중에는 이미 돌아가신 분의 카드들도 있다.

독일에서는 컴퓨터 상의 진료 기록뿐만 아니라 서류로 남아 있는 진료 카드들도 돌아가신 후 5년까지 병원에서 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끝방 안은 창문 위로 블라인드를 내려가 있어 한낮이지만 어두침침한데 그 이상한 소리가 다시 났다.


새까만 모니터 뒤에서 난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골동품 같은 심전도 검사기에서 인 것 같기도 했다.

더운 주말 심야 괴담회라는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는 무서운 괴담 프로를 남편과 벌벌 떨며 보았던 탓이었는지...

이상한 상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익숙한 곳이 낯선 소리 하나로 급 괴기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B도 팔에 오소소 돋은 소름을 쓸어내며 아무래도 옛날 옛적 고리짝 같은 심전도 검사기에서 나는 소리 같다며 헐거워져 있던 전선을 뽑았다.

우리는 이제는 더 이상 그 소리가 나지 않겠지 하며 돌아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알 수 없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가 다시 났다.

선을 뽑아 놨는데도 심전도 검사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는 생각에 우리는 동시에 "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우렁찬 비명 소리에 놀라서 다른 방에서 헐레벌떡 뛰어온 원장쌤은 어딘가 에서 드문 드문 들려오는 뭔지 모를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 돌아가신 분들 카드도 모여 있는데 아무래도 뭔가 괴기스럽다며 호들갑을 떨어 대는 우리를 보고 너네 뭐하니? 하는 표정으로 어이없는 웃음을 날리던 원장쌤은 조용히 우리 머리 위를 가리켰다.


그 이어질 듯 끊어지던 소리가 짧고 강렬하게 방전체로 퍼졌고 무서운 상상에 몰입 하느라 쪼그리고 서 있던 우리는 그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다른 방에 있다 온 남편은 금세 알 수 있었던 거다.


우리의 머리 위 천장에는 화재경보기가 달려 있었다

독일에서는 주별로 시행된 시기와 사항이 조금 차이가 있으나 일정 공간에 일정 용량의 연기가 나면 바로 울려대는 화재경보기를 설치해야 하는 의무 조항이 있다.

그래서 달아 두었던 화재경보기....

하얀 회벽 천장에 하얗고 작게 달려 있던 화재경보기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천장에서 떼어낸 화재경보기에서는 거짓말처럼 지금 까지 들리던 그 이상한 소리가 보란 듯이 났다.


화들짝 놀라서 놓칠뻔한 경보기를 돌려서 열어 보니 한참 되었을 배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둘이 생쑈하며 괴상한 소리를 찾아 삼만리 했건만 범인은 화재경보기였다.

배터리의 수명이 다 되어 이상한 소리를 냈던 거다.

새로운 배터리로 바꾸어 넣고 다시 천장 위에 달아 놓은 화재경보기 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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