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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09. 2022

오늘 왜 이러니? 운수 좋은 날이다.


평소와 한개도 다를바 없는 아침 이였다.  그러하듯 무겁게 덮여 있던 꺼풀 이 어느 순간 스스륵 올라갔다.

밖은 이미 동이 터 오고 있어 방 안이 환해지고 있었고 오가는 새들의 지저귐도 요란 스레 들려왔다.

핸디를 켜서 시간을 확인하니 5시 45분... 십 분쯤 침대에서 뒹굴거릴 호사를 누려도 될 시간이다.

욕실 창문에 드리워지는 햇살을 보며 "오늘 우리 막내 체육 수업 밖에서 하겠네 어제 반바지 체육복 빨아 말려 두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을 했다.

학교 가야 하는 막내를 깨우고 체육 가방 잘 챙기라는 잔소리를 해두고 출근 준비를 한다.

아래층 주방에서 향긋한 커피 냄새가 계단을 타고 솔솔 올라오고 있었다. 멍뭉이 나리와 아침 산책을 다녀온 남편이 커피콩 갈아 커피를 내리고 있나 보다. 아침 커피 내리는 게 어느새 남편의 취미가 되었다.


자칭 우리 집 바리스타인 남편의 커피는 매일 다른 맛을 낸다. 커피콩을 갈아낸 밀도와 갈린 커피에 따뜻한 물을 부어낸 양의 정도에 따라 미세한 농도의 차이를 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같은 커피콩으로 에브리데이 새로운 커피맛을 맛본다. 맛나다. 시계가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드라운 빵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7시 20분 성격 급한 남편이 먼저 현관문을 나선다.

그 뒤를 우리로 하면 중학교 2학년 인 막내가 체육 가방까지 들어가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가방을 가쁜 이 둘러메고 큰 키를 흐느적거리며 "아직 주말 되려면 한참 더 남았어!"라고 징징거렸다.

나는 "아들~! 어제까지 공휴일이라 푹 쉬셨거든요 덕분에 주말 되려면 이제 이틀 남았어!” 했다.

막내는 커다란 발에 신발을 마지못해 끼워 넣으며 휴우 한숨을 쉬며 현관문을 연다.

나는 덩치만 컸지 학교 가기 싫어 칭얼 대는 아기 같은 막내의 모습에 웃음이 나서 킥킥 거리며 눈으로 멍뭉이 나리 밥그릇 물그릇 훑어 보고 주방 가스대를 확인하고 거실에 불을 껐다.

그런 나를 보며 나리는 잘 다녀와 하듯 한번 빤히 보더니 지 침대로 간다.

현관문을 열쇠로 잠그고 잠긴 문을 확인하고 열쇠 꾸러미를 가방 안에 넣으며 신발을 고쳐 신는다.

무에 그리 바쁜지 아침마다 신발은 현관문을 나서고 나서야 제대로 신게 된다.

집 앞에 세워둔 자동차로 향하며 맡는 아침 공기는 맑고 하늘은 유난히 파랗다.


세워둔 차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앉기도 전에 남편이 한옥 타프 내려간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봐 굉장하다!"

나는 뭔데? 라며 남편이 가리키던 정면을 무심코 마주하다 기함했다.

세상에나 우리 집 자동차 앞 창문 유리 전체가 새똥 폭탄을 맞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가끔 차 문짝에 손잡이에 창문에 띄엄띄엄 새들이 흔적을 남긴 날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빼곡히 색감도 다양하게 처바른 경우는 처음이다.

이대로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운전하기도 쉽지 않게 생겼다.


아니, 온 동네 새들이 하필이면 우리 집 자동차 유리에 이렇게나 많이 볼일을 보았어야 했나?

단체인지 아니면 한두 마리가 이렇게 난리를 쳐 놨나? 알 길은 없다.

단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아니라 일찍 일어나는 새가 똥도 푸지게 싼다로 바뀌어야 할판이었다.

아침 시간은 몇 분 차이가 귀하다. 그 몇 분 상간에 도로 사정이 바뀔 수도 있고 지각을 할 수도 있고 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자동차 앞유리에 새똥 폭탄을 쳐 발 쳐 발 한 체 아이 학교 데려다주고 병원으로 출근할 수는 없었다

우선 주유소 이 가서 1유로짜리 셀프 유리창 세차 라도 하고 넘어 가야겠다며 남편은 차를 우리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주유소로 향했다.


독일에서는 집 앞에서 자동차 세차를 할수 없다 세차장에 가서 해야 한다.

집에서 물떠다 닦아낼수 없다는 이야기..

그러나 이 아침 문을 연 세차장도 없을 뿐더러 세차 하고 갈 시간은 더욱이 없다.

막내의 학교 수업은 7시 55분 에 시작 한다

게다가 첫째 시간은 깐깐하기로 소문난 수학 쌤의 시간이다.

아이가 지각을 했다고 벌을 받거나 하지는 않지만 눈치는 보인다.

늦지 않도록 가야 할 텐데... 자꾸만 시계에 눈이 갔다.


어쩌지 하고 있는데 남편이 손뼉을 치고는 잽싸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주유소 중에는 간단히 샐프로 세차를 부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이 있다.

가끔 남편은 이렇게 곤란한 상황 대처가 빠른 편이다.


주유소에 도착한 남편은 여유있는 포즈로 기계에 1유로를 넣고 물총처럼 생긴 고압 물청소기를 빼 들었다.

이제 물한번 쫙 뿌려 대면 이 화려한 새똥 들이 단번에 지워 지겠지 하며 자랑스런 눈빛으로 남편을 쳐다봐 주었다.물이 쏟아 지면 혹시나 새어 들어 올지 모를 옆 창문을 확인하고 있던 나는

아무일도 일어 나지 않는 것과 남편의 한마디에 우왁 소리가 절로 나왔다.

평소에 뿜 뿜 잘만 나오던 고압 물청소기가 1유로만 꿀꺽 삼킨 체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고장이란다.

영화 속 바주카포를 어깨에 맨 근육 가득한 히어로가 욜라 폼잡고 조준을 했는데 한 발도 나오지 않아 웁스 오마이 갓뜨를 외치는 순간 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급한 데로 주유소에 비치된 비눗물 풀어진 물통에 담긴 수세미 들고 전수동으로 미췬듯이 창문을 닦았다.

아침부터 오늘 왜 이러니? 그럼에도 어쨌거나 새똥도 털어 냈으니 운수 좋은 날이다.


대강이지만 창문을 닦아내고 아이 학교 수업 몇 분 전에 데려다주고 병원으로 출근했다.

몇 분이 몇 시간 같은 출근길을 보내서였던지 급 커피가 당겼다.

출근 하자마자 하는 코로나 샐프 테스트를 끝내고 라테 한잔씩을 내려 마시고 있을 때였다.

딸내미 유치원 아들내미 학교를 데려다주고 출근한 직원 B가 말했다.

"지금 G가 출근하다 자동차 사고가 났어"

나는 너무 놀라서 조금 올라간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서? 괜찮은 거야?"


우리 병원 주차장으로 들어오던 환자의 차와 출근하던 직원의 차가 접촉 사고가 났다.

다행히 아무도 다친 사람 없었지만 쌍방 과실인지 누구 과실인지 밝혀 내기가 애매해서 경찰이 오고 조사가 끝날 때까지 시간이 걸려야 했다.

오늘 왜 이래? 그럼에도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운수 좋은 날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작한 오전 진료는 평소 환자들이 갑자기 몰리는 시간도 조용하게 지나갔다.

그런데 그 조용함이 어쩐지 섬뜩했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탈 때 처음에는 천천히 낮게 가다 점점 빠르고 높게 올라가듯 조마조마 했다고나 할까?


2번 진료실에서 서류 처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곳은 초음파실이다. 주로 초음파 검사와 심전도 검사 가 이루어지는 곳이라 평소에는 조용하다.

앞쪽 사무실은 전화도 하루 종일 울려 대고 팩스도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며 환자 대기실과 인접해 있어 소란스러울 때가 많다.

신경을 많이 쓰고 처리해야 할 서류들이 있을 때면 컴퓨터 시스템이 제일 잘 되어 있고 조용한 이곳에서 한다.

그런데 오늘 처음 온 젊은 남자 환자가 심전도와 초음파를 해야 했고 응급이었다.


서류에 무쳐 있다 응급상황에 투입 되었다.

멀쩡히 걸어온 환자였지만 상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해서 보통 구조요원들만 타고 오는 응급차와 응급의가 따로 타고 오는 차가 함께 나란히 우리 병원 앞에 주차를 했다.

언제 환자의 혈관이 터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경험 많은 응급의와 구조요원 모두 여섯 명이 나와서 차분하고 안전하게 환자를 이송할 수 있었다.

오늘 왜 이래? 운수 좋은 날이다


하루 같이 느껴졌던 오전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라디오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베를린 시내 중심으로 자동차가 뛰어들어 10명 가까운 사상자가 생겼다는 속보였다.

그 동네는 베를린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내미도 평소 자주 다니는 곳이다. 딸내미에게 전화를 했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

몇 분이 멈춘 것 같던 순간을 지나 연락이 되었다. 딸내미도 그 뉴스를 방금 보았고 그 시간 다른 곳에 있었다고 했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무슨 맛인지 기억도 나지 않게 점심을 먹어 치우고 아무 생각하지 않고 쉬고 싶어 졌다.


나의 최애 취미인 브런치에 접속을 했다.

알람을 켜니 못 보던 님들의 구독과 좋아요가 차례로 뜨기 시작했다.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러다 무심히 구독자 수에 눈이 멈췄다 어제 보다 숫자가 달라진 것 같았다. 처음에는

뒷자리 숫자만 보고 몇 분이 새로 구독을 하셨구나 했다 그런데 알람에는 반가운 새로운 이름이 딱 한 개 만 보였다.

어? 뭐지? 이상하다 싶어 다시 천천히 보니 한 명이 새로 구독을 해 주셨고 아홉 명이 구독취소를 한 것이었다.

결국 구독자가 늘은 것이 아니라 줄은 것이다.

그것도 새로 글을 써서 올린 다음날 한꺼번에 아홉 분이나....

오늘 왜 이러니?

언젠가 멋진 글을 기획해서 올렸으면 했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걸 어찌 아시고 구독 취소를 해주셔서 시간을 벌었다. 다행이다. 운수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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