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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19. 2022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었다.

조폭 나오는 영화에서 등장하던 곳 아녀?


차 안 가득 파쇄할 서류들을 잔뜩 싣었던 날 우리는 늘 가던 파쇄 업체로 향했다

시간은 이미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뱃속은 허하고 기운은 달렸다.

남편은 종이들을 얼른 업체에 맡기고 그 바로 옆에 있는 중국집 뷔페에서 여유 있게 늦은 점심을 먹자고 했다.


듣고 보니 솔깃했다. 뷔페에 가면 뭐 먹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고 음식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도 절약되고 접시 들고 가서 퍼다 먹기만 하면 되니 주린 배를 빠르고 간단하게? 채우기 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다 싶었다

얼른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신나게 달려간 파쇄 업체는 문이 닫혀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려니 직원 한 명이 나와서는 이제 이곳에서는 더 이상 파쇄 작업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에서 보조금을 받아 가며 실용적인 가격으로 운영하던 곳이라 아무래도 경영난 때문에 파쇄를 그만두고 수지타산이 더 맞는 다른 리싸이클링을 하는 듯싶었다.

난감해하는 우리에게 직원은 다른 업체에서 아직 파쇄해 줄 시간이니 그곳으로 바로 가 보라며 주소를 하나 적어 주었다.

병원을 시작하고 지금 까지 편하게 찾아가던 익숙한 업체에 더 이상 못 오게 되어 섭섭한 건지 뷔페를 먹을 수 없게 되어 아쉬웠던 건지 뒤돌아선 마음에 서운함이 깃들었다.


우리는 받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고 새로운 파쇄 업체로 향했다.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살던 도시인데 거의 온 적이 없는 것 같은 어딘가를 가게 되었을 때….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다 있었나? 싶지 않은가?

그날 우리가 찾아간 곳이 그랬다. 주소부터 낯설더니 우리는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소를 따라 들어온 골목은 입구부터가 특별했다.

이쪽도 저쪽도 큰 공사차들과 부서진 자동차, 자전거 그리고 크고 작은 물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오가는 공사차만큼 커다란 컨테이너 차량들이 좁은 골목을 오가며 길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을 오가는 사람들 또한 위풍당당 우락부락했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인데.. 싶었다.

순간 아 맞다 이거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조폭들 등장하는데 아녀? 했다.

그렇다 양쪽 골목에 늘어선 곳은 모두 자동차 폐차장과 물품 폐기소였다.



양쪽으로 늘어선 곳에서 고철 부서지는 소리와 수많은 굉음들 바쁘게 움직이는 커다란 공사차들

그리고 골목길을 막고 있는 트럭은 긴 컨테이너를 달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풍경이 자아낸 분위기는 왠지 쌀 벌 했다.

남편도 이 낯선 듯 익숙한 듯 알 수 없는 풍경에 압도된 건지 존 건지 천천히 움직이는 컨테이너 차량이 길을 막고 있어도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였다면 길도 좁은데 운전도 못하면서 길 막고 있다며 한소리 했을 법한 남편은 느릿느릿 쿵쾅 거리며 컨테이너를 끌듯이 잡아채 가는 운전사 아저씨가 좁은 길을 터 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갑자기 웃음이 터진 나는 "쫄았어?"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아냐 저 차는 원래 빼줄래면 시간이 걸려!"라고 했다.

그 순간 컨테이너를 끌고 있던 트럭이 컨테이너를 바닥에 쿵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 뜨렷다.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놀라 몸을 숙였다.

다행히 별일 아니었고 컨테이너를 제대로 싣지 못해서 낸 소리였을 뿐이었는데 우리는 지대로 쫄았다.



주소에 맞게 도착한 곳은 그 골목 끝에 있었고 입구도 녹슨 컨테이너 통들이 줄지어 있었다.

영화에서 보면 조폭들이 사람을 납치해서 가둬 두거나 하는 곳 비슷하게 생겨 보였다.  

입구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우르르 쏟아져 나온 건장한 청년들은 짧은 머리에 모두 한 덩치 하는 이들뿐이었다

괜스레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렇다고 독일에서 깍두기 머리 또는 문신이 조폭은 아니다.

그냥 개인 취향일 뿐이다.


우리는 가지고 온 종이들을 파란색 커다란 두통에 꽉꽉 채우고 35유로를 냈다.

한화로 약 49000 원돈이다.

그동안 다니던 업체 보다는 비쌌지만 그곳은 시에서 보조를 받던 곳이라 개인회사들 하고는 다를수 밖에 없다.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았고 사람들이 서글 서글 일처리도 빠르게 잘해 주었다.

이제부터는 종이 버리러 올 때는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보지 않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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