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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11. 2022

수상한 처방전

독일 약국은 특별 수사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목요일 아침 진료 시간이었다.

약국에서 전화가 왔다며 직원 CB 가 내게 통화 연결을 해 주었다. 전화를 받아 보니 S약국이었다.

병원 일을 하다 보면 관련되어 함께 일하는 곳들이 꽤 많은데 그중에 하나가 약국이다.

S 약국은 병원에서 가깝고 큰길에 위치해 우리 병원 환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약국 중에 한 곳이다.

평소에 서로 자주 통화도 하고 팩스도 보내고 한다.


주로 우리 쪽 에서는 병원에 필요한 새로운 약들과 주사약, 상처 관련 의료품 등에 관한 문의 전화다

약국에는 늘 새로운 의약품들의 주요 정보가 업데이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국에서는 우리 병원 환자들이 들고 온 처방전에 적힌 약들 중에 요즘 그 약은 구하기 어려운데 성분은 같으나 약명 또는 제약 회사명이 다른 것으로 바꿔도 되는지? 또는 어떤 약이 40mg 용량이 나오지 않으니 20mg짜리 두 개로 주어도 되는지? 등등 처방전 수정에 관한 요청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또 어느 환자가 가져간 처방전의 약이 요즘 유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대체할 다른 회사 약을 이야기하려나 보다 했다.

그런데...

나는 약사님 이야기에 눈이 커지며 “네?” 라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보다 조금 낮은 듯한 목소리의 약사님은 "조금 전에 000이라는 환자가 처방전을 들고 왔는데 아무래도 싸인이 이상해서요."

라고 말했다.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네? 우리 병원 처방전 맞아요? "

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약사님은 "네 근데 아무리 봐도 평소 원장님 싸인과 다른 거 같아서요"라고 했다.

머리와 어깨 사이로 전화기를 끼워 둔 나는 컴퓨터 자판에 손을 가져다 올리며 약사님 에게 처방전에 적힌 환자의 생년월일과 풀네임 그리고 처방전 날짜를 물었다.


빠른 속도로 자판을 치고 연이어 엔터를 치자 모니터에 펼쳐진 환자 진료 기록.. 내가 익히 알고 있는 환자다.

다른 병원에서 약물중독 우려가 있어 약을 더 이상 주지 않자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우리 병원으로 오게 된 환자다.

당연히 여기서도 수시로 약을 원한다고 했다가 한 가지 약은 아예 원장 선생님이 복용을 금지시켰고 나머지 약들도 증상에 따른 소량만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 요주의 인물이다.

그런데 처방전에 적혀 있다는 날짜에 그 환자의 진료 기록은 없었다.

순간 나는 싸한 느낌과 뭔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린 시절 코난 도일의 명탐정 셜록 홈즈 시리즈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탐독했고 TV에서 방영되던 제시카의 추리극장과 형사 콜롬보를 손에 땀을 쥐고 턱이 빠져라 입을 헤 벌리며 즐겨 보았다.

가끔 나는 엉키고 설킨 미스터리 한 이야기들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스토리들의 결말을 추론해 미리 머릿속으로 예측해 보기를 좋아한다.

문득 내게 있는 짝퉁 탐정 기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찰라에 머리는 마치 부웅 하는 헤어 드라이기에서 나는 소리를 낼듯 바쁘게 돌아갔다.

약사님은 그 처방전이 우리 병원 것이 맞다고 했다.

단지 원장 선생님의 싸인이 달라 보인다고만 했다.

그리고 환자의 진료기록에는 그날 우리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았다는 기록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사건은 답두 가지 중에 하나 일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첫째, 누군가 실수로 처방전을 잘못 주고 나서 그 실수를 들킬까 봐 진료 기록을 삭제했거나!

둘째, 환자가 가지고 온 처방전이 우리 병원 것이 아니거나!


만약 답이 첫 번째 라면.. 을 가정하고 처방전에 찍혀 있다는 날짜에 근무한 직원들을 하나둘 떠올려 보았다.

평소에도 자잘한 실수가 많던 B? 아니다 그녀는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진료 기록에 손을 댈 만큼 용이 주도하거나 비양심 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현장 경험도 짧으면서 가끔 무모한 GL? 그녀라면... 어쩌면... 혹시?라는 의구심이 소리 없이 뭉개 구름을 만들었다.

빗질 잘해서 하나로 깔끔하게 묶은 머리에서 실없이 빠져나오는 몇 가닥의 머리카락처럼 빠져나오려는 쓸데없는 상상들을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애써 털어 냈다.

그럴 일 없다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그럼 다른 것 같다는 원장 선생님의 싸인은 그 수상한 처방전은 대체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우선 나는 약사님께

"그 처방전 이상한 게 맞는 거 같아요 그 환자에게 약 주지 마시고 처방전 원본부터 저희한테 팩스 해 주세요 혹시나 환자가 약을 받아 가겠다고 고집 피우면 저희 병원으로 보내시고요!"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멈춘듯한 시간 속에 삑삑 소리를 내며 팩스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독일 의료보험 공단에서 지급되는 공보험용 처방전 샘플

떨리는 손으로 받아본 팩스에 찍힌 처방전을 보며 입에서 "하!" 하는 실소가 터졌다.

이건 말로만 듣던 위조 여권도, 위조 화폐도 아닌 위조 처방전인 것 같았다.

독일의 처방전은 우선 여러 가지 색깔로 다른 기능을 나타낸다.

해서 핑크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등의 각각의 처방전에 허용되는 약품들이 따로 정해져 있다

그 종이들은 독일의 의료보험 공단에서 만들어 각 병원으로 지급한다.

때문에 개인병원별 고유 번호가 따로 찍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처방전에는 고유번호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또,원래 처방전은 위의 샘플 사진에서 처럼 맨 위에 환자의 의료보험 회사명이 찍히고 그 밑으로 환자의 이름과 주소 그 옆으로 생년월일 그 아래로 약 이름과 용량 그리고 크기가 적힌다. 필요시 에는 하단에 진단명과 복용 횟수가 함께 따라 들어간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병원의 직인이 찍히고 병원 원장 쌤의 풀네임과 병원 주소 그리고 싸인이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번 사건? 의 가장 주요한 단서가 된 병원 직인과 남편의 싸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직인은 우리 병원 것과 진짜 매우 흡사한 것이 떡하니 찍혀 있었다.

그위로 남편의 싸인과 비슷한 것이 보란 듯이 그려져 있다.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직인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남편의 이름중에 가운데 이름 철자 하나가 틀렸고 우리 병원 주소중 에 우편 번호 중간에 번호 두 개가 틀려 있었다.

그리고 결정타인 남편의 싸인은 허벌라게 연습을 한 티가 나기는 한다만 방향이 바뀌어 있었다.

남편의 싸인은 굉장히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때로 단순한 것이 무한 어려운 법이다.

단순하다 보니 글씨를 트는 방향이 조금만 틀려도 표가 나기 때문이다.

이런 디테일 떨어지는 새뀌 같으니라고...


정리하자면...

괜히 머릿속으로 엄한 직원 용이 선상에 올리게 만든 요 조카 십팔 색 크레파스 같은 환자가 어디서 우리 병원 도장과 비슷하게 생긴 도장을 팠다 그리고 그것을 처방전과 비슷하게 만들어낸 종이 위에 찍고 남편의 싸인을 욜라리 연습해서 우리 병원 처방전과 흡사하게 위조해 만든 가짜 처방전을 약국에 들고 온 것이다.

이런 씹 장생 같으니라고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나! 중독 우려가 있어 약을 주지 않으니 처방전을 위조해서 만들어 냈다는 소리다.

워낙 정성 들여 만들어서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인다.

어떻게 이걸 바로 알아냈지? 싶게..

매의 눈으로 잡아 낸 S약국 약사님 에게 무한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만약 약사님이 어? 이거 그 병원 원장 쌤 싸인이 좀 이상한데?라고 의문을 느끼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어찌 보면 사건 전말을 모두 해결해 준 약사님은 그날 마치 특별 수사반 같았다.

덕분에 가짜 처방전으로 마음대로 약을 사 가려던 범인은 경찰서에 신고되었다. 이제 다시는 위조 처방전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설마 아직도 싸인 연습을 겁나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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