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금요일 오전 진료를 끝내고 학교 갔다 온 막내와 집 잘 지키고 있던 나리까지 차에 싣고 베를린으로 출발했다.
주말여행 베를린 가는 길
짧은 주말여행이라고 해도 그사이 냉장고 안에서 썩고 있는 것이 없으려면 미리 정리도 해야 하고 설거지나 빨래도 쌓아 두면 다녀와서 심란하니 정돈을 해 두고 가야 해서 언제나 떠나는 날은 늘 정신이 없다.
2층에 다리미 판, 청소기 가 연결되어 있는 전선 뽑아 뒀고, 아들방 게임기랑 전등도 꺼 뒀고, 주방에 불 켜둔 것도 없고, 빈집인 거 표 안 나게 거실에 위장용?으로 불하나 켜 두고....
현관문을 잠그고 나오는 순간까지 중얼 대며 체크한다.
요즘은 하도 깜박 깜박을 잘해서 종이에 써두고 체크를 하던가 입으로 랩 하듯 구시렁 대며 체크를 하던가 해야 "아이고 이거 빼먹었다!"가 없다.
점심은 가면서 먹는 것으로 하고 간단한 요깃거리인 샌드위치와 귤, 잴리, 초콜릿 등의 간식 그리고 마실 거리 들을 차 앞 내 자리에 쟁여 두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넣었다.
우리 집에서 베를린 가는 길에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 휴게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물가가 올라서 안 그래도 비싸고 맛도 그리 훌륭하지 않은 휴게소에서 굳이 살 필요가 없고 시간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아우토반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가 타고 갈 아우토반 쪽에는 휴게소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길이 편하지 않게 되어 있는 곳들이 많다.
그거이 무슨 소리인고 하면 휴게소가 아우토반에서 바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한참 돌아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곳들도 있다.
그런 곳들은 안 그래도 아우토반 중간중간에 공사한다고 까뒤집어 놓아 차선이 좁아져 있는 곳들이 많은데 돌아 돌아 구석진 곳까지 한번 들어갔다 나오려면 시간이 배는 더 든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베를린행은 아우토반에서 바로 빠지는 공중 화장실만 찾아들어가기로 했다.
물론 때에 따라 강한 비위를 담보로 해야 하지만 말이다.
(독일 아우토반 휴게소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베를린 가는 길)
비 오는 날 아우토반과
독일 기숙사
독일 중부인 우리 집에서 베를린까지는 375 km 다 한국으로 하면 광주에서 강릉 가는 정도 되려나?
네비에 찍힌 소요 시간은 13시 27분 출발 16시 48분 도착 세 시간 조금 넘어 보이지만 이 시간으로는 택도 없을 것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이미 안다.
보통 집에서 베를린까지 차막 힘없고 한두 번 짧게 쉬었다 가도 네 시간 다섯 시간 사이다.
분명 중간에 화장실 가기 위해 쉬어야 할 것이고 때때로 차가 막힐 수 도 있으니 시간은 고무줄이다.
요즘 들어 부쩍 해가 빨리 지는데 18시 전에는 딸내미 기숙사에 도착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 다.
그마저도 출발할 때부터 비가 내리니 그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간간이 내리던 빗방울이 세찬 빗줄기로 바뀌게 되면 아우토반에서는 더욱 긴장하게 될 수밖에 없다.
차 앞 유리로 흘러내리는 빗줄기만큼이나 앞 서가는 자동차들 바퀴에서 뿌려 대는 물보라가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가 차선을 바꾸느라 빠르게 움직이거나 커브길에 들어설 때면 어김없이 트렁크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이번에 이사를 한 딸내미에게 줄 전자레인지가 박스채 들어가 있는데 그것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는 소리였다.
딸내미가 예전에 살던 곳은 WG(Wohngemeinschaft)라고 네 명이 함께 아파트 하나의 공간을 셰어 하며 사용하던 곳이라 주방도 넓고 식기 세척기, 오븐 기타 주방 용품이 아주 잘 갖추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세명이 공부가 끝나고 직장 때문에 각각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막내였던 울 딸내미만 남게 되어 그아파트 계약을 종료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9월부터 살게 된 곳은 기숙사인데 다른 나라로 일 년간 교환학생으로 가게 된 친구의 친구가 세를 주어 들어가게 되었다.
독일에서 이런 방들을 Zwieschenmiete 쯔비션미테 또는 Untermiete 운터 미테라고 하는데 방 주인이 없는 동안만 빌려 주는 형식이다.
해서 길어야 내년 가을까지 있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때까지 필요한 것들이 꽤 있어 보였다.
사진으로 본 기숙사 방은 혼자 사는 방 치고 커 보였지만 주방이 작고 그 방의 원래 주인은 학생 식당에서만 삼시 세 끼를 해결하고 살았는지 주방 용품이 거의 없어 보였다.
요리와 베이킹을 좋아하는 딸내미에게는 많이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토스트 기 하나 없는 그곳에 전기레인지를 들여 주기로 했다.
그래서 전자레인지 들고
베를린은 우리가 사는 곳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큰 대도시다. 당연히 마트도 전자 상가도 넘치게 많다.
그러나 너 필요한 거 쇼핑 가자고 하면 그러자고 할 딸내미가 아니다.
나중에 지가 사겠다며 미룰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나이 들어가는 것보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이 더 실감 날 때가 있다
어려서부터 독립심이 강했던 큰아들은 대학 다닐 때도 여기저기서 장학금을 받으며 학비, 생활비, 용돈을 일절 받지 않았다.
그걸 익히 알고 있는 딸내미도 장학금을 받기 위해 노력 하지만 아직까지는 큰 성과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딸내미는 매달 들어가는 방값과 기본 생활비를 아직 엄빠에게 받아 쓰는 게 미안해 용돈이라도 벌어 보겠다고 짬짬이 알바를 한다.
지난번에는 콘서트에서 일한다더니 이번에는 옷가게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 용돈 엄마가 줄 테니 그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 해도 자기는 용돈까지 엄빠에게 받고 싶지 않다며 일하러 간다.
워낙 공부해야 할 양이 방대해서 어느 때는 밤을 새기도 한다는데 말이다.
어릴 때 딸내미는 마트나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예쁜 인형을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아이였다.
그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하게 담아서 쪼그만 입을 오물 거리며 자기는 그게 왜 필요한지 일장 연설을 하고 도 엄마 아빠가 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응급차 사이렌 소리만큼 큰 소리로 울어 댔고 그래도 사줄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내년 생일 선물에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합쳐서 미리 당겨 달라고 애교를 떨고는 했다.
그래서 거기에 넘어간 아빠가 종종 선물을 가불 해 주기도 했었다.
그러던 딸내미가 집에서 뚝 떨어진 다른 도시에서 살며 이사도 차 빌려서 혼자 뚝딱 하하고 필요한 게 있어도 지가 벌어하려고 하는 걸 보면 언제 이렇게 다 컸나 싶다.
자동차로 베를린에 가기로 결정한 후 동네 전자상가에서 세일하는 전기레인지를 바로 사서 차에 실어 두었다.
딸내미에게 반찬을 종류대로 해서 들고 가면 그 일주일이 행복하겠으나 주방 용품을 해결해 주면 저 혼자 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 그 후로도 쭈욱 해피할 거다.
이제 웬만한 건 다 할 줄 아는 딸내미에게 간혹 필요한 레시피를 보내주면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들 어릴 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목표한 시간 비슷하게 땅거미 지기 전 베를린에 도착 할수 있었다.
기숙사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고 딸내미를 위해서 집에서부터 들고 간 전자레인지도 무사히 안착했다.
멍뭉이 나리까지 포함한 여섯 가족의 베를린 여행의 시작이었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