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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03. 2023

독일식 포장마차와 커리 부어스트

수요일에 단골손님


독일 개인 병원의 진료 시간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은 아침 8시 30분부터 12시까지
화요일 목요일은 오전 8시 30분부터 12시까지 그리고 오후 15시부터 18시까지

요거이 우리 병원 진료 스케줄표 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보기에는 일을 하다 마는 것 같기도 하고 노는 것 같아 보일 수도 있다.

개인병원 진료 스케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던 1인 그게 바로 나다. 남편이 대학병원 과장으로 일할 당시 워낙 일이 많다 보니 개업만 하면 널널 하겠네 하고 좋아했었다.

그러나 세상사 거저 되는 일이 있겠는가?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듯 현실은 상상하던 것 과는 달랐다.


늦어도 아침 8시면 우리는 병원문을 열고 들어 간다. 그런데 벌써 그 시간에 병원 앞 주차장에는 환자분들의 차량들과 병원 문 앞에 줄 서 계신 환자들이 보일 때가 많다.

특히나 주말 또는 공휴일 지난 다음날이면 방학 때 놀이공원에서 바이킹 타려고 줄 선 것처럼 긴 줄이 늘어서 있고는 한다.

그럴 때면 8시에 출근하는 게 미안해질 지경이다.


또 병원 진료 스케줄 표에는 오전 진료가 12시 까지라 적혀 있지만 어디 병원 일이 백화점 문 닫듯 시간 됐으니 셔터 내리고 영업 끝났슈 ~! 할 수 있는 일이던가

때에 따라서는 응급차가 병원 문밖에 대기하고 있는 날도 있고 어느 날은 13시가 넘어가야 오전진료가 간신히 마무리되는 날들도 많다

그런 날은 정리하고 집에 가면 이미 오후 시간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독일 개인병원의 왕진 시스템


월, 수, 금은 오전 진료 끝내고 빠르게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5시부터 왕진을 시작한다.

독일 개인병원은 의료진들이 의료 가방을 챙겨 들고 환자가 계신 곳으로 왕진을 가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왕진 은 거동이 불편하고 지병이 있으신 고령의 환자들에게 해당되지만 상황에 따라 응급한 경우 또는 젊다 해도 다양한 이유로 병원으로 올 수 없는 상태의 환자들에게는 직접 진료를 나간다.

처음엔 생면부지의 남의 집에 진료 가방 바리바리 싸 들고 방문하는 것이 꽤나 부담스럽고 이상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내게 왕진이라 하면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장면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신데렐라 스토리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고전 드라마 중 한 장면을 떠올려 보면 좀 있어 보이는 집 거실에 나 정말 있어 보여야 되는데 하는 샬랄라 한 드레스 같은 옷을 입은 싸모님이 맘에 안 드는 처자와 자식을 앞에 세워 두고 되네 안되네 악다구니를 쓰다가 화나서 거품 물고 뒷목 잡고 쓰러진다. 그럴 때 "박사님 얼른 불러~!" 해 가며 의사를 부르지 않는가

그리고 나면 안경 끼고 검정 의료가방을 든 의사쌤이 그다지 아파 보이지 않는 싸모님 에게 링거 하나 달아 주고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 당부하고는 총총히 사라진다. 대강 이런 것이 내가 생각하던 왕진이었다.



독일식 포장마차와
커리부어스트

그런데 독일의 왕진은 Hausbesuch 말 그대로 환자가 누가 되었던 의료진이 환자가 있는 집으로 직접 진료를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환자에 따라 양로원일 때도 있고 우리의 빌라나 아파트 같은 보눙이 될 때도 있으며 또는 주택이 되기도 한다.

환자들이 살고 있는 동네도 지역에 퍼져 있어 왕진을 가는 날은 오가는 순서를 정해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아하~ 하는 노래처럼 이 집 저 집 요 집 찍고 이양로원 저 양로원 간다.  


그렇게 왔다 갔다 많이 해야 하고 때로는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꼭대기 층까지 헉헉 거리며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왕진이 있는 날은 그야말로 체력전이다.

왕진은 환자의 혈압을 재고 청진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니 초음파와 심전도를 해야 하는 날도 있고 채혈을 하는 때도 있고 주사를 놓아야 하는 날도 있고 실밥을 뽑아야 하는 날도 있고 상처 드레싱을 해야 하는 날도 있다.

한마디로 병원 에서 해야 할 웬만한 일들을 환자의 집에 가서 하는 셈이다.

그러니 의료가방도 가벼울 리 없다.


때문에 오가기에 시간이 많지 않아도 점심을 건너뛸 수는 없다.

집에 전날 먹다 남은 국이나 찌개가 있으면 땡큐 하게 후루룩 뚝딱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왕진 가는 자동차 안에서 빵으로 때우기도 하고 중국음식이나 피자를 사다 먹기도 한다. 뭐가 되었든 잘 챙겨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당 떨어져서 휘영청 밝은 달이 된다. 때로 오전 진료가 빡센 날에 오후 왕진까지 해야 하면 체력 소모가 몇 배는 더 되고는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스트레스가 가득이고 바쁜 날이면 바삭하고 달콤 매콤한 것이 당긴다.

떡볶이에 튀김 이면 그만일 텐데... 만들어 먹을 시간은 없고 그런 날 우리는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길 중간쯤에 있는 grill imbiss 그릴 임비스에 들리고는 한다.

바로 달콤하고 매콤한 커리 부어스트와 감자튀김을 사 먹기 위해서다.

그릴 임비스는 우리의 작은 포장마차 같이 생긴 곳인데 떡볶이, 순대, 김밥 대신 각종 소스를 곁들인 감자튀김과 구운 소시지를 파는 곳이다.


그릴 임비스는 고향 동네 작은 포장마차를 떠올리게 한다.

독일 아주머니 두 분이 그릴 판에 요렇게 조렇게 뒤집어가며 소시지를 굽는 모습은 김밥을 순식간에 뚝딱 말아내던 고향 아주머니 모습을 닮았고 보글보글 소리와 하얀 연기를 공중에 모락모락 뿜어내며 감자튀김이 튀겨지는 모습은 꼬치 어묵국물이 끓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고는 한다.


또 아주머니가 다 익은 소시지를 써는 기계에 넣고 뚜루룩 썰어 담고는 그 위에 빨간 커리부어스트 소스를 한 주걱 퍼서 넣을 때면 떡볶이 국물 넉넉히 담아 주던 그 옛날 고향 동네의 아주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에게 참새 방앗간 같은 그릴 임비스는 왠지 정겨운 고향 동네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떡볶이, 순대, 김밥 대신 감자튀김과 소시지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다를 뿐....


독일의 Currywurst 커리 부어스트 는 1949년 베를린에서 처음 시작된 매콤 달콤 소스를 곁들인 소시지를 말한다. 빨간 소스는 얼핏 보면 토마토 케첩을 연상케 하지만 토마토 배이스라는 것만 같고 우리의 남편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하는 원조 즉석 떡볶이 소스처럼 소스의 배합이 집집마다 다르다.

(*물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식당용 소스를 사용하는 집들도 많다)

**독일 사람들과 한국요리 강습에서 국민 길거리 간식 포장마차 떡볶이를 이야기할 때면 독일의 커리부어스트 임비스를 예로 들고는 한다.)

커리부어스트는 구운 소시지에 달콤하고 매콤한 맛의 빨간 소스를 얹고 그 위에 깨처럼 카레 가루를 솔솔 뿌려 풍미를 더한다 소스는 소시지뿐만 아니라 감자튀김을 찍어 먹기에도 그만이다.


게다가 우리가 수요일의 단골로 가는 그곳은 소스도 맛나고 무엇보다 보너스 카드가 있다.

카드에 8개의 도장이 빼곡히 찍히면 Bratwurst 부랏부어스트 그릴로 구운 3유로 50 센트 짜리

소시지 하나가 공짜다.한화로 약 오천원 가량이다.

부랏부어스트는 작은 빵에 그릴 소시지를 넣고 겨자 또는 케첩을 뿌려 먹는다.


커리부어스트는 플라스틱 도시락 통에 방금 튀겨낸 노랗고 바삭한 감자튀김과 그릴로 구워낸 소시지를 기계로 도르륵 잘라서 그 위에 소스를 끼얹으면 5유로 50 센트 1인분 포장 완료!

포장된 소시지 통을 차 안에서 잠깐 열어 두면 집에 가서도 감자튀김이 바삭하고 맛나다


당연히 고소하고 바삭한 감자튀김의 냄새와 매콤 달콤한 소스 냄새의 유혹에 못 이겨 임비스 아주머니가 담아준 작은 나무 포크로 콕콕 집어 하나둘? 맛을 보며 운전하는 남편 입에도 내입에도 넣어 가며 가지만 말이다.

요즘 우리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 이 아니라 수요일엔 커리부어스트를~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날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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