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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09. 2023

졸지에 중국 갈 뻔했다


유난히도 화창한 화요일 아침이었다.

지구상에 날씨가 좋아서 마구 출근이 하고 싶은 직장인이 있을까? 아마도 있다면 기네스북에 등재될는지 모른다.

출근 이란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하기 싫은 거다.

직장 이란 너와 한 모든 순간이 거시기한 것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을 벗 삼아 병원으로 출근하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우아~! 이런 날 피크닉 가기 딱인데"를 되뇌었던 것 같다.

안 그래도 날씨 좋은 날은 횡재한 기분이 드는 독일에서 이런 날 출근 이라니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매운 떡볶이 먹고 나면 시원하고 달달한 빙수가 당기듯 자연스러운 마음인지 모른다.


나의 피크닉 타령은 날씨 좋은 날이면 늘 부르는 노래 같은 것이라 남편은 "그래, 우리 병원문 닫고 어디로 놀러 갈까?"라며 농담을 던진다.

나는 실천 가능성 없는 농담이지만 생각 만이라도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어디 깔까? 김기사 아우토반으로 출발"을 날리며 오늘도 파이팅을 외친다.



진상 손님은 편의점이나 카페 에만 오는 게 아니다.

개인병원도 엄밀히 말하면 자영업에 서비스직이라 만만찮은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 5년 차 병원 매니저로 일하면서 매일 새로운 레코드를 갱신 중에 있다.

오늘은 또 월매나 지랄 맞은 사람들이 내 기운을 빼려나... 그 어떤 지랄 발광 에도 뚫리지 않는 강철 방패 같은 멘털을 주시옵소서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병원 앞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핸드폰 시계가 오전 8시 5분을 가리킨다.

우리 병원 진료시간은 8시 30분부터다 그럼에도 부지런한 환자들은 이미 주차장에 그리고 병원 문 앞에 줄을 서 있다.


독일은 개인병원의 간판은 주로 벽면에 작게 붙어 있거나 우편함과 함께 건물 앞쪽에 작게 나와 있다.

옛날 옛적 한국 주택에서 쓰던 문패 보다 조금 크려나?

무튼 작다. 우리같이 아예 주택가 안으로 들어와 있는 개인 병원들은 거기 병원이 있는 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이곳이 3번의 원장선생님이 바뀌며 60년 넘는 세월 한결 같이 지켜온 병원이라 해도 말이다

그래서 같은 동네 살았어도 한 번도 병원에 와 본 적 없었다는 환자들도 더러 있다.


그런데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요즘 들어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며 우리 병원 환자로 오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물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문제는 독일의 개인병원 들은 환자를 무제한으로 받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요 이야기는 조금 지루하고 딱딱한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언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만 따로 다룰 예정입니다.

환자숫자 제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당분간 새로운 환자 받지 않습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병원용 운동화로 갈아 신은 후 접수처 사무실과 환자 대기실 그리고 진료실을 날듯이 오가며 눈썹이 휘날리게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통짜 원피스를 입은 큰 키에 다소 튼실한 체격의 여인네가 접수처 사무실 앞에 서서 환자대기실과 채혈실 사이를 가로막듯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 진료 예약이 되어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대기실 또는 병원 앞에서 기다리다 순서가 되면 채혈실, 또는 진료실로 안내된다.

처방전 또는 병가 등의 서류가 필요한 경우도 마찬가지 그렇게 환자가 복도를 서성이는 일은 주로 무언가 질문이 있거나 진료 예약을 해야 할 때뿐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빨리 해결해 드리고 복도를 뚫어 놓아야 오가는 사람들의 동선이 꼬이지 않는다.

나는 그녀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무슨 일이신지를 물었다.

해맑은? 눈빛의 그녀는 내게 얼마 전 그녀의 딸이 우리 병원으로 진료 예약을 위해 전화를 했는데 진료 예약을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도대체 이유가 뭐냐며 따지듯 물어 왔다.


우선 나는 "따님이 우리 병원 환자 세요?"라고 물었다. 우리 병원 환자라면 진료 예약이 안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잠시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예상했던 바다.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상대가 당황한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더 있구나 싶었다.  

당황스럼움을 갈무리한 것 같아 보이던 그녀는 예전에 잠깐...이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나는 그녀가 딸의 의료보험 카드를 마치 출근전 찍고 들어 가야 하는 직원 카드처럼 들이미는 것을 받지 않고 그 딸의 생년월일과 이름을 먼저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컴퓨터에 써 넣자 마자 환자 번호와 함께 열린 환자 기록 에는 우리가 개원하기 전인 벤쩰 원장쌤 때의 직원들이 빼곡히 써 놓은 그 환자의 악행? 들이 주르륵 굴비 엮이듯 주렁주렁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딸은 한마디로 그 당시 블랙리스트? 진상환자 중에 탑오브 탑 이었던 거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당신의 딸내미가 병원에서 온갖 진상 다 떨다가 안되니 다른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지랄 난방을 떨며 지난번 원장쌤 계실 때 서류 들고 튄 지 오래다 라고 사실을 이야기 할 수도 없고

어떻게 이야기해야 오해 없이 대화가 될까? 잠시 생각했다.


나는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설명했다.

"잘 아시겠지만 저희 병원에 기존 환자분 들이 많으셔서 새로운 환자를 계속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주매가 눈을 희번덕 거리며 "그렇게 환자가 많다 지만 코로나로 죽고 병들어 죽고 이래 저래 죽은 환자들이 많을 거 아니에요!" 란다.

뚫린 입이라고 어찌 돌아가신 분들을 저따위로 이야기 하나 어이가 없었다.


속에서 끓어오르려 하는 것을 최대한 누르며 차분하게... 를 되뇌었다.

흥분하면 저 말도 안 되는 여편네의 페이스에 말리는 거다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사를 가신 분들도 있고 여러 이유로 자리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게 언제쯤이라고 말씀드릴수도 없고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눈 병난 사람처럼 눈을 깜빡이며 "우리 집이 저기 길 건너에요 이웃인데 예외로 어떻게 안될까요? 했다.


안봐도 비디오다. 그 딸내미는 필시 이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며 진상을 떨다 더 이상 갈 병원이 없어진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안 그래도 리미트인 상태에서 그런 폭탄을 떠안을 수는 없다.

나는 다시 한번 정중하게 "죄송하지만 저희 병원은 의사 선생님도 한분이고 직원들도 많지 않아서 무리해서 환자수를 늘릴 수가 없어요 다른 병원을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아까와는 달리 날카로운 목소리로 "환자들이 많아서 못 받겠다니 그럼 아픈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요 당신들 직업이 환자 치료 아니야!"라고 했다.

좀 있음 삿대질도 할 것 같은 포스다.

막무가내로 저 하고 싶은 말만 쏟아 내는 그녀와 더 이상의 실랑이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나는 “여기는 응급센터가 아닙니다 응급한 일이면 종합병원 응급센터로 가시면 되고요

이 동네 다른 병원도 많습니다” 라며 병원 출입구로 상냥하게 안내했다.


그랬더니 이 여편네가 배에 힘을 빡 주고 서서는 “독일어 좀 더 배우세요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했다

나는 이제 하다 하다 평소 의사소통에 문제없는 멀쩡한? 남의 독일어까지 트집 잡는 치졸한 아줌마의 행태에 기가 막혔다.

속으로 '이 아줌씨야! 네가 한국어를 내가 독일어 하듯 했으면 너는 우리나라에서 방송에 탔어 야!"라는 말을 되내이며 친절하게 이제 그만 가시라는 제스처를 얹어서 병원 출입문을 직접 열어 주었다.

그리고는 “제 말이 이해가 안되시는 게 아니라 이해하시는 게 싫으신 거겠지요!"라는 말도 덧붙여 주었다.


정곡을 찔린 여자는 파르르 하더니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한 마리 표효하는 표범처럼 사납게 소리쳤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가지가지 골고루 하고 있다 거기다 못나 빠진 인종 차별 주의까지 가지고 있다니 한심 하기 그지없었다.

오냐 이제야 너의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싶어 헛웃음이 터졌다. 웃음기 머금었지만 제법 뾰족함을 담은 목소리로 나는 "저기요!"라고 막 병원 주차장을 가로지르던 그녀를 붙잡아 세웠다.


하다 못해 쌍욕이든 어디서 인종차별 주의적 말을 씨부리냐는 말을 할 줄 알았는지 그래해봐 하는 얼굴로 턱을 치켜 들고는 "네?"하고 뒤돌아 선 그녀에게 ...

나는 "저에게 그렇게 말하시면 곤란할 텐데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어느새 마스크 벗어 버린 민낯을 한껏 구기며 뭐 래니? 하는 얼굴로 나를 빤히 봤다.


원래도 목소리 톤이 조금 높은 편인 나는 소프라노 같이 한껏 올라간 톤으로 마이크를 입에 단 것처럼 저 멀리 까지 들리 도록 명확하고 큰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해줬다.

"나는 중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다 이 모지리 인종차별주의자야!"

그 순간 병원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그녀의 포악한 행태를 보고는 쯧쯧쯧 혀를 차고 있던 다른 환자들은 박수를 치며 빵 터졌고 내 말과 다른 이들의 반응에 몹시도 당황하신 그녀는 꽁지에 불붙은 것처럼 미친 듯이 빨리 걸어 그 길에서 총총히 사라 졌다.

졸지에 중국 갈뻔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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