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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03. 2023

C컵이 부러워


내 살다 살다 C컵이 이다지도 부러워 보기는 처음이다.

물론 예전에 회자되던 말 중에 아스팔트에 껌 붙었다 는 둥의 말들에 괜히? 찔끔하기는 했다.

뭐 그러나 저러나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으며 아이들 셋 낳고 수유하면서 체형도 체격도 많이 바뀌어 이젠 아스팔트 보며 웃을 정도는 된다.

살면서 피지컬 적으로다 한 번도 C컵을 부러워한 적이 없건만 그날 나는 속으로 수없이 부러워 부러워 를 외쳐야 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검사 날짜와 시간 그리고 병사선과 병원 주소가 적혀 있는 예약편지

그날은 병원에 월차를 내고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 날이었다

다름 아닌 유방촬영술 Mammography검사 가 예약 되어 있어서다.

독일 의료보험에서는 여성이 만 50세가 되면 유방암 예방과 조기발견을 위한 검사 중에 하나인 유방촬영술을 적극 권장 한다.

그래서 가정의 나 산부인과전문의 소견서 없이도 의료보험에서 2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지원해 준다


거기다 친절하게도 본인이 직접 병원에 예약을 하지 않아도 방사선과 병원에서 건강검진 날짜와 시간 그리고 병원 주소가 적혀 있는 편지를 집으로 날려 준다.

물론 예약 날짜와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변경하면 된다.


나는 50이 넘은 지 한참?이지만 아직 검사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예약된 날짜에 월차 내고 갔더니 갑자기 쏟아진 폭설로 방사선과 직원들이 출근을 못해 취소된 적도 있고 검사받으러 가기 바로 며칠 전 코로나에 걸려 취소할 수밖에 없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차일피일 미루던 검사를 받으러 가려니 왠지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예방 차원에서 받아 보는 건강검진 이고 매일 출근하는 일터가 병원인데도 새삼스레 적잖이 긴장이 되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데 혈액 검사나 초음파 검사 등을 하면 전혀 다른 결과를 얻는 이들도 자주 보게 된다.

또 나와 비슷한 또래의 환자들 중에도 아무리 봐도 나보다 건강해 보였는데 어느 날 다른 전문의 병원에서 검사받은 결과 가 충격적 이였던 경우도 종종 있는 일이다.

이래 저래 주워들은 게 많다 보니 걱정거리도 늘어난 탓일 게다.


왜 아는 게 병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환자들 중에는 의사가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진료실에서 긴장해서 혈압이 올라가는 분들도 더러 있다

그날 내가 그랬다

예약 시간도 아침 10시 35분이라 여유 있게 걸어가기로 했다.

검사를 받기로 되어 있는 병원은 집에서 전차로 약 다섯 정류장 정도의 거리에 있지만 비싼 교통비 내고 빨리 가서 한참 기다리느니 천천히 걸어서 시간 맞춰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왠지 치과 가기 싫어 뻐튕기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일부러 천천히 걸었는데도 단숨에 방사선과 병원에 도착해 버렸다.

여유 있게 집을 나선 탓에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어디 가서 커피나 한잔 마시고 다시 올까? 하다 그러다 시간이 넘어가서 에라 모르겠다 검사 고 뭐고 시간 지났는데 하고 다시 집으로 가지 싶어서 일단 들어가기로 했다.

멀쩡한 엘리베이터 놔두고 한국으로 하면 3층 여기서 2층 인 곳을 (독일은 1층 전에 땅층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걸어서 올라갔다.

마스크 쓰고 계단을 올랐더니 숨이 차서 헉헉 거리며 접수처에서 이름과 예약 시간을 이야기하니 예약 확인 되었다며 서류판에 꽂은 종이 몇 장과 볼펜을 건네주며 작성해 달라고 했다.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고 예전에 유사 병력이 있는지? 복용하고 있는 약물이 있는지? 수술을 한 적 있는지?

집안에 유방암을 앓은 이가 있는지? 등에 관한 질문에 답을 적고 의사에게 검사에 관한 설명을 들을 것인지 아닌지 체크하고 내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 병원에서도 환자들 이쪽으로 자주 보내기 때문에 왜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어떤 검사인지 이미 알고 있는데 굳이 오래 기다렸다 아는 설명을 또 들을 필요 없겠다 싶어 패스했다.  


질문서를 적어 내고 환자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 가니 독일 여자 세 명이 마치 순서대로 앉은 것처럼 일렬로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문 앞 쪽에는 똑단발에 키가 크고 마른 편인 왠지 쌀쌀맞은 분위기를 풍기는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고 창가 바로 옆에는 보기에도 기골이 장대하고 씩씩하게 생긴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중간에는 독일 사람치고 체구는 작지만 단정하게 머리를 하나로 묶고 차분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세명의 맞은편 쪽에 앉았다


멀뚱이 낯선 사람들과 마주 보고 앉아 가만있지니 입이 근질 거려 나는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키 작은 여자분 에게 몇 시 예약 인지 물었다.

그녀는 상냥하게 "10시 30분 이요"라고 했다.

나는 "어머 제가 10시 35분인데 그럼 검사가 5분 만에 끝나요?" 하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마스크 쓴 얼굴임에도 환하게 웃는 느낌이 확연한 그녀는

“그럼요 금방 끝나요"


아마도 그녀는 그전에 몇 번은 검사를 받아 본 듯했다.

나는 심심하고 떨리는 김에 잘되었다 싶어 더 말을 걸었다.

"저는 처음 검사받는 거라 조금 떨려요. 어떻게 한다고 대강 듣기는 했는데 혹시 아프거나 힘들거나 한가요?"

했더니 그녀는 "아 그래요 걱정하지 말아요 기계가 누르는 느낌이 좀 그렇긴 하지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똑단발이 검사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똑단발이 들어간지 5분도 안된 거 같은데 바로 나와서 영혼 없는 인사를 흘리고 총총히 사라졌다.

이번엔 기골이 장대한 여자가 검사실로 들어갔다.

또한 빛의 속도로 나오더니 아까 내가 쫄아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들어서였던지 

생긴 것만큼이나 우렁찬 목소리로 지나가며 내게 아무렇지도 않으니 검사 잘 받고 가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녀의 말을 우리의 사투리 버전으로 옮기자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암시롱도 안혀요!"


다음은 차분한 그녀가 검사실로 들어갈 차례여서 서로 검사 잘 받으라고 미리 인사를 나눴다.

환자 대기실 안에 검사실로 들어가는 문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검사받으러 들어가는 사람이 사용하는 문이고 다른 하나는 검사받고 나오는 이가 사용할 문이다.

그러니 검사 예약 시간이 앞뒤인 우리는 서로 못 만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환자 대기실과 연결 되어 있는 검사실 로 들어 가고 나오는 문 들

드디어  이름이 호명되고 검사실 문을 여니 바로 탈의실이 연결되어 있었고  너머에는 유니폼을 입고 있는 여자 의료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앙에는 커다란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뒤로 보이는 유리문 너머에는 촬영을 할 것으로 보이는 갈색의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쓴 의료인이 있었고 짧은 금발의 씩씩하게 생긴 다른 한 명은 기계 옆에 서서 내게 탈의실 문을 잠그고 위쪽만 태초의 모습을 하고 나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조금 긴장해서 쭈빗쭈빗한 모습으로 나간 내게 짧은 금발 머리의 의료인은 기계의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설명을 해 주었다.

커다란 기계 중간에 앞쪽으로 나와 있던 넓적한 판 같이 생긴 것을 가리키며 그 위에 몸을 올려 두면 양쪽에 두 번씩 4번의 촬영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기계 앞에 서서 어떤 자세를 어떻게 취해야 한다고도 알려 주었다.

그런데 이놈의 커다란 기계는 독일 사람들 기준이라 그런지 이렇게 저렇게 낮추고 해도 내게 잘 맞춰지지가 않았다.

기계를 나의 짧은 몸뚱이에 맞게 내렸음에도 의료인이 알려준 자세로 어깨를 어느 각도로 꺾고 한쪽 다리를 세우고 허리를 어느 방향으로 돌려도 촬영해야 할 판에 몸이 제대로 닿지가 않는 거다.

한참을 이렇게 저렇게 불편한 자세를 해야 하다 보니 헐벗었는데도 땀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어떻게 해도 몸을 얹어야 하는 판에 몸이 제대로 고정이 되지 않는 거다.

보다 못한 의료인이 "제가 조금 도와 드려도 될까요?"라고 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네 그러세요" 했다.

그녀는 장갑 낀 손으로 내 몸을 촬영할 기계에 맞춰 주느라 애를 썼다.

옛날 옛적 인기 있던 코미디 프로에서 유행 하던 멘트 중에 모아 모아 모아서 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정말이지 C컵이 너무도 부러웠다.

앞에 검사받았던 그녀들은 모두 딱 보기에도 C컵은 돼 보였고 검사 들어갔다 바로 나왔기 때문이다.


C컵이었다면 이놈의 기계 판에 그냥 걸쳐 두거나 살포시 올려 놓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럼 촬영은 일사천리로 끝났을 텐데 말이다.

그날 진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남의 도움까지 받아 잡아 뽑고 찍어 누르는 듯한 촬영이 시작 됐다.

당연히 남들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아프기도 했다 누가 안 아프데.. 흑흑..

마치 살집이 좀 있는 사람은 얼음판에 넘어져도 덜 아픈데 뼈만 있는 사람은 넘어질 때 뼈가 닿아 아픈 것처럼

남들 5분도 안 돼 끝나던 검사를 나는 속으로 아 C컵,진짜 C컵, 우악 C8,으윽C8을 한참이나 번갈아 외치고 나서야 끝이 났다.

C컵이 겁나 부러운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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