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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01. 2023

우리 병원 근처에서 폭탄이 터졌어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바쁜 아침이었다.

늘 그렇듯 먼저 일어난 남편은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막내 깨워 학교 갈 준비시키고 멍뭉이 나리 물그릇 밥그릇 확인하고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끝낸 내가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물고 있을 때였다.

읽던 신문에서 눈을 채 거두지 않은 채 남편은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 병원 근처에서 폭탄이 터졌어!"라고 했다


순간 어? 아닌 밤중에 웬 폭탄? 이라며 내가 잠이 덜 깨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은 폭탄이 맞다고 했다

그럼 혹시나 우리 병원 근처 어디서 2차 대전 때 남아 있던 폭탄이 터졌나?

독일은 아직도 전쟁 중에 어디선가 날아와 박혀 있던 폭탄이 종종 주택가 등에서 발견되고는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카셀 시내 한복판 공사장에서 몇 년 전 2차 대전 때 사용된 폭탄이 발견되었다.

공사는 당연히 바로 중단되었고 시내를 통과해야 하는 전차와 버스 등의 대중교통도 올스톱 되고  근처 상점과 백화점은 모두 셔터를 내리고 영업을 정지   사람들이 피신시켰다.

물론 그 근처 상가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피신을 해야 했다.

터질지 안 터질지는 확실치 않으나 안전하게 폭탄을 제거하기 전까지 폭탄제거반과 경찰을 제외하고는 그 근처에 아무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됐다.

한마디로 갑자기 시내 전체가 비워지는 대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때의 일이 떠오른 나는 뜨나 감으나 별차이 없는 눈을 최대한 키운 상태로 남편이 읽고 놔둔 노트북에 떠 있는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지역신문 HNA 기사를 읽어 보니 다행히? 2차 대전 때 폭탄이 터진 건 아니지만 폭탄이 터지긴 했다.

그것도 모두가 잠든 새벽 2시 30분 한 은행에서...

그런데 남편이 놀란 이유는 그 은행이 공교 롭게도 우리 병원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은행이기 때문이다.

출근 준비를 마친 우리는 서둘러 병원을 향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카셀 은 독일의 16개 주 중에 중부에 속한 헤센주 다.

인구 20만이 살짝 넘는 중소 도시지만 헤센주에서 프랑크푸르트와 비스바덴을 이어 세 번째 큰 도시 다.

그리고 북부 헤센에서는 가장 큰 도시 이기도 하다.

넬라 할머니의 과자 누스엑케 넛츠들이 들어 있는 과자인데 빵가게와 비교 불가

그러나 카셀은 평소 굉장히 조용한 도시다 그중에서도 우리 병원은 카셀 남부 끝에 위치하는 오버쯔베렌 이라는 동네에 있다.

이곳은 좁고 시골 스런 동네다.

환자들 중에는 오버쯔베렌 에서 태어나서 쭈욱 몇십 년을 그 동네에서 살고 있는 이들이 많다.

길 가다가 도 장 보다가도 서로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우리 병원에서도 예방주사 맞는 날 같은 디데이 에는 환자대기실이 시끌시끌 하니 장터가 따로 없다.

환자들 중에는 오래된 이웃, 친구들, 지인, 사돈의 팔촌.. 직접 서로 아는 이들도 많거니와 한 다리 건너면 서로 아는 이 들도 많기 때문이다


마치 누구네 숟가락이 몇 개 인지도 다 아는 우리네 전원일기와 비슷하달까?

정스러운 것도 우리네와 닮아서 환자들 중에는 병원 직원들 함께 나눠 먹으라고 과자를 구워 오거나 자기네 마당에서 딴 베리로 케이크를 구워 오는 분들도 있고 정원에 있는 꽃을 꺾어 오거나 직접 만든 쨈을 들고 오기도 한다.

이런 동네에서 은행이 털리 다니 말이다.

그것도 폭탄이 터졌다니 상상이 가질 않았다.


신문에 적힌 사건개요를 요약하자면 누군가 은행 현금인출기 창구 쪽에 폭탄을 설치하고 터뜨려 현금을 챙겨 도망했다고 한다. 폭탄까지 사용한 도난 사건이다. 은행의 피해가 파손된 재물 피해액만 3억 이상이라고 했다. 아직 구체적인 현금 등의 피해액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했다.

범인들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라는 것과 목격자를 찾는다는 것도 기사 끝에 실려 있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얼마나 난리가 난 상황인지는 병원까지 가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오버쯔베렌의 입구로 통하는 사거리를 지나자 멀리서 붉은색의 지버트 할아버지네 정육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이 모퉁이만 지나면 사건의 은행이 나올 테다

Volksbank는 우리로 하면 마을금고처럼 주로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동네 은행이다

대로변에 있지만 크지도 않은 은행이다

그 옆에는 우리 병원 환자들이 주로 처방전을 들고 가는 동네 약국이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주유소가 있다.

이 약국이 지난번 가짜 처방전도 잡아낸 준 곳이다.

작은 폭탄이었는지 다이너마이트였는지 종류는 알 수 없지만 은행의 현금인출기 칸 쪽으로 터지고 끝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정말이지 큰일 날 뻔했다.


사건의 현장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골목에 우리 병원이 있다.

출퇴근 길에 못해도 하루에 두 번 왕진이 있는 날은 서너 번 이상 우리는 V은행 앞길을 지나다닌다.

그런 은행을 지역 신문 1면에서 보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경찰은 사건이 월요일 새벽 2시 30분에 은행 현금인출기가 놓여 있는 곳에서 폭탄이 터졌고 짙은색의 BMW 차량이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범인은 네 명이었을 가능성을 놓고 있으나 정확히 범인들의 동선과 구체적인 도난액에 관해서는 아직 제대로 추정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경찰이 수사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인 듯했다.

그나마도 폭탄이 폭발하기 전 현금인출기 앞에 있는 CCTV로 알아낸 것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시간 뭔가를 목격 한 사람은 꼭 경찰에 연락을 달라고 쓰여 있었던 거다.


요즘처럼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발달해서 각각 멀리 떨어져 서도 서로 영상 통화가 가능하고 영상 회의도 가능한 세상에 이게 무슨 옛날옛적 드라마 수사반장 때나 나올 법한 일이란 말인가


독일 지역신문 HNA 사회면 머리기사 발췌

한국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뭔 사건만 나면 경찰이 일단 CCTV부터 확보하던데 독일은 개인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대로변 이건 골목 이건 상점 앞이건 집 앞이건 CCTV 가 따로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CCTV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어쩌다 한국 뉴스에 나오는 CC TV가 없거나 고장 난 사각지대가 여긴 널린 거다.

어찌 보면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도둑놈도 함께 보호되고 있는 셈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 안에서 본 은행은 유리창이 모두 깨쳐서 너덜 거리고 있던 신문 기사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심각한 모습은 아니었다.

깨진 창문들 앞을 코르크 판 같은 것으로 모두 가려 두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고 은행 앞 길 전체를 쇠문으로 막아 놓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공사 라도 하나? 했을 테지만 신문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오전 진료 시간에는 직원들도 오가는 환자들도 모두가 은행 사건을 이야기했다.

어떤 이는 그 은행금고 안에 가지고 있던 모든 보석과 패물을 맡겨 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결혼 선물로 받은 금을 넣어둔 이도 있다 했다.

아직 은행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으나 모두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들 뿐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이야기했다

이번 사건은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일임이 분명한 것 같다고 말이다.

우리는 오버쯔베렌 역사상 처음 있는 폭탄 발 은행 도난 사건을 두고 명탐정 홈즈라도 된 듯

서로의 추측들을 이야기하기 바빴다.

술렁이는 화요일 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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