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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Feb 21. 2023

님아 외상은 아니 되오

값은 나중에 치르기로 하고 물건을 가져가는 일

사건의 발단

컴퓨터에 붙어 앉아 사보험 환자들 집으로 보낼 진료비 청구서를 욜라리 작성하고 있을 때였다.

GL이 쭈빗쭈빗하며 작은 종이 조각을 내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게 뭔데?"라고 묻는 내게 그녀는 민망한 듯 몸을 비비 꼬며 이야기했다.

그녀에게 들은 자초지종을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어느 사보험 환자가 의사편지 즉 건강 확인서가 필요해서 받아 갔는데 그날 확인서 요금을 미납 한 체 아직 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것이 벌써 이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그 확인서 요금 청구서를 만들어 사보험 진료비 청구서와 함께 동봉해 그 환자에게 보낼 수 있겠느냐?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독일의 의료보험

독일의 의료 보험은 크게 공보험과 사보험으로 나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입되어 있는 공보험의 경우 보험 회사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우선 나이와 병력 무엇보다 보험자의 통장에 꽂히는 수입 정도에 따라 매달 지불해야 하는 보험료 금액이 각자 다르게 책정된다.

예를 들어 같은 나이에 당뇨병 환자라 해도 다달이 내야 하는 보험료는 다를 수 있지만 병원 진료등에 따른 혜택은 동일하다.

또, 독일에서 공보험 환자들은 의료보험 카드 한 장이면 일반적인 병원의 진료와 대부분의 검사를 받을 수 있다.(대체의학과 유전자 검사 포함 자비로 해야 하는 특별 한 검사들 제외)

물론 주치의 시스템인 이곳에서는 전문의 병원 예약을 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맹점과 초음파, 엑스레이, CT, MRA, MRI 등의 검사를 받기 위해 서는 본인 주치의 소견서를 받아 가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말이다


그에 반해 사보험은 여러 가지 옵션을 기준으로 보험 금액이 달리 책정된다.

예를 들어 진료와 각종 검사의 몇 퍼센트까지 보험으로 해결되는지에 따라 그리고 종합병원에 입원할 경우 입원실 그리고 과장 특진 등의 세부 사항들을 옵션으로 첨가해서 보험료를 정할 수 있다.

사보험 환자들은 진료 후에 병원에서 진료 청구서를 받는다 그러면 우선 본인이 청구서에 나온 진료비를 병원으로 송금하고 그 비용을 보험 회사에서 재청구해 다시 돌려받도록 되어 있는 시스템이다.


진료비 먹튀와 외상?

그래서 병원에서는 공보험 환자들은 의료보험 카드를 위에 사진처럼 카드기를 통해 읽고 사보험 환자들은 진료 후 진료비 청구서를 따로 보내야 한다.

물론 공보험 카드가 신용카드도 아니요 진료비가 바로 지불되는 것은 아니다

병원에서 진료비는 삼 개월 동안의 진료 기록서와 기타 서류들을 제출하고 의료보험 공단에서 의료수가 따져서 그후에 받는다

그러니 의료보험 카드는 사실상 환자가 병원에 다녀 갔다는 기록의 확인일뿐이다.

사보험도 환자의 진료 내용을 담은 진료 청구서를 작성해서 환자의 집으로 보내고 입금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게 중에는 주소지가 바뀌어서 다시 되돌아오는 청구서 들도 있다.


돌아온 청구서 중에는 환자가 주소지 변경을 깜박한 경우도 있고 또 몇몇은 일부러 틀린 주소를 기입해 두고 진료비 먹튀?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런저런 경우와 다소 복잡한 내용을 차치하고 라도 독일 병원에서는 환자가 직접 진료비를 수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두 가지 예외 상황들이 있기는 하다.

그중에 하나가 개인적인 용도로 필요한 의사 편지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의 건강 상태 확인서 또는 진단서를 쓰게 되면 법적으로 환자에게 직접 비용을 받도록 되어 있다.

때로는 환자가 학교의 중요한 시험 또는 국가고시 나 자격증 시험 앞두고 아파 시험을 보러 갈 수 없다 던가 환자가 취업 하려는 직장에 건강상의 문제가 없다 는 내용의 의사 확인서 등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또는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 에는 지병으로 인해 호흡이 곤란해 마스크를 착용할 수 없다는 등의 확인서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개인적으로 필요한 의사 편지에 들어간다


어쨌거나 자주 돈 받을 일 없는 독일 병원에는 식당이나 마트에 있는 카드 단말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병원도 마찬가지.. 그래서 필요한 의사편지는 무조건 현금박치기? 다.

그로 인해 병원 서랍 깊숙이 숨겨? 져 있는 빨간색의 돈통에는 10유로 20유로짜리와

동전들이 가뭄에콩나듯 들어오고는 한다.

그런데 그날 직원 GL가 내 책상 위에 내려놓은 종이에 적힌 환자의 경우는 이러했다.

약 2주 전에 GL은 원장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건강 상의 문제로 그다음 날 시험을 보러 갈 수 없는 환자에게 의사 편지 두장을 건네주었다.

문제는 그 편지를 외상으로 주었다는 거다.

외상이 무언가 값을 치르지 않고 나중에 주기로 하고 물건을 먼저 건네주는 것 아닌가?

예전 우리 어린 시절 동네 슈퍼는 외상이 가능했다.

그런데 독일에서 외상이 어디 있는가?


당장 의사 편지는 필요하고 현금이 없으니 다음날 가져다주겠다는 말과 함께 사라진 환자는 2주째 모습을 드러 내지 않고 있었다.

우리병원에서 가장 젊은 직원이자 유일하게 미혼인 직원GL이 잘생긴 환자의 간곡한 부탁에 홀렸던?지 아님 경찰대 학생이라 믿음직스러워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좌우지당간 비용을 받지 않고 보냈는데 환자가 두문불출 나타나지 않자 난감 했던 거다.


직원은 '이일을 워쩌나? 저 까칠한 매니저 알면 난릴 날 건데..' 해가며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게다.

맘 좋은 원장쌤에 비해 빡빡한? 편인 내 눈치가 몹시도 보였을 테다.

그래서 들키기 전에 자진 납세?를 한 거다.


GL 에게 상황을 모두 전해 들은 나는 어떻게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단 의사편지는 지병에 관련된 것이나 개인적으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에 사보험에서 처리되지 않는다.

본인이 책임지고 병원에 지불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원에게 그 편지껀은 청구서를 따로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며 사보험 청구서와 별도로 그 직원이 정성을 담아 손글씨로 편지를 쓰라고 했다.

20유로가 중해서가 아니라 법적으로 비용을 받고 주어야 하는 확인서이며 이렇게 저렇게 예외가 생기면 이런저런 케이스가 늘게 마련이고 그때마다 우리가 그 비용을 받으러 쫓아 다닐 수도 없지 않겠느냐?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직원에게 작은 종이에 환자분이 바빠서 혹시 잊어버렸는지 모르지만 지급된 의사편지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셔야 된다는 내용을 담으라고 했다.  


그날 진료비 청구서와 직원의 손글씨로 쓰인 편지를 함께 담았다.

봉투에 우표를 붙이며 나는 “어쩌면 니 편지를 받고 잊고 있다 그 환자가 다시 생각나서 내일이라도 들고 올 수도 있고 아니면 잊어야지 어쩌겠느냐!"라고 말했다.

물론 다음부터는 외상은 절대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GL은 알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잔뜩 걱정하다가 문제를 해결해 주니 마음이 가벼워져서이기도 할테고 아마도 나의 따발총 잔소리를 용케 피했다 싶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좌우지당간 그렇게 우리는 그 환자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장장 한 달이 너머 그 환자가 20유로를 담은 흰 봉투를 들고 병원을 다시 찾았다.

가끔은 병원에서 이렇게 기대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미 잊은지 오래거나 먹튀를 다짐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환자가 어쩌면 우리 직원의 손글씨를 보고 생각이 났던지 아님 마음이 움직였는지 알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은 아직 믿고 살만한 구석이 많구나 였다.

갑자기 생긴 20유로 (한화로 약 2만 7천원가량)반가 웠지만 서로 간의 믿음이 깨지지 않아 더 다행스럽고 고마운 날이었다.

봄기운 품은 햇살을 받은 듯 마음이 푸근해지는 진료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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