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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Feb 09. 2017

한국요리 강습 전 맛보기 음식

시금치나물과 김치 참치 김밥


한국 요리강습 중에 가장 자주 있는 시간이 저녁 6시다.

식재료 소개와 한국음식 문화에 대한 짧은 이론 시간을 하다 배고파 오기 십상인 때다.

그래서 언제나 강습 전 맛보기 음식을 해서 들고 간다.

어느 때는 강습 메뉴를 정할 때 보다 "오늘 맛보기 음식은 뭘로 해가지?"가 더

고민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데 오늘은 장 보러 가서 단박에 내 맘을 설레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바로 초록의 시금치..

'긴 겨울을 나다 보니 푸른 싱그러움이 그리운 게야!'라고 구시렁대며

세일하는 옷 더미 속에서 용케 하나 골라내듯 그게 그거로 보이는 1kg짜리 시금치 포대? 중에

이쁜 놈 들로 2 포대 골라 담으며 되뇌었다.

"그래, 오늘 맛보기는 너로 정했어!"


수강생들에게 나누어 줄 레시피를 인쇄하는 동안 큰 냄비에 찬물을 받아 소금 작은 한 스푼 넣고 불위에 얹는다.

물이 끓는 동안 찬물에 시금치를 씻고 다듬는다.

냄비 안에 물이 뽀르르 끓어오를 때쯤 만지면 손안 가득 푸른 풀물이 들 것 같은 초록의 시금치를 살짝 담갔다 뺀다.

뜨거운 열기에 금세 푸른 잎은 숨이 죽고 한 뼘쯤 작아진 시금치를 찬물에 헹구어 물기를 꼭꼭 눌러 짜면서

드는 생각...

감칠맛 나는 우리네 음식만큼이나
우리말은 참 예쁘고도 맛깔스럽구나

물기 꼭 짜 놓은 시금치에 마늘 콕콕 다지고, 파송송 썰어서 간장, 국간장 쪼르륵, 참기름 톡톡 , 마늘 콕콕 찧어서, 파 송송 썰어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끝!

마치 노래를 부르듯 리듬감 있게 흘러나오는 우리말 어감에 아직 혀 끝에도 닿지 못한 음식의 맛이 어느새 머릿속에 생생 하게 그려진다

음률을 담은 음표 그려진 악보처럼.... 손가락 들어 한입 집어 먹어 본 시금치나물은 아삭 하고 짭조름하면 서도 고소하고 달다.

음.. 상큼한 봄을 부르는 맛이다.


큼직하게 잘라 얹은 계란 지단 위에 펠트잘라트 들과 루꼴라가 살포시 내려앉았어요. 그 위에 참치랑 김치 볶은 것 쪼로미....

오늘의 맛보기 음식 넘버 2는 김치 참치 김밥. 집집마다 특별한 날을 위한 비장의 무기?

한두 가지씩은 있지 않은가? 얘도 우리 집에서는 그중의 하나 다.

독일에서 살면서 두부, 콩나물, 깻잎처럼 우리 밥상에 수시로 올라가는 식재료 들이 필요할 때마다

문만 열면 나가면 있는 마트에서 바로바로 조달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므로

나름대로 여기서 대체할 수 있는 식재료 들을 찾아 나선다.

향긋한 깻잎을 대신해서 쌉싸름하면 서도 입맛을 돋워 주는 루꼴라와 펠트잘라트

의 보드라운 식감은 김밥에 아주 잘 어울린다.

특히나 김치 참치 김밥에 딱이다.

기름 조금 두르고 잘 익은 김치 살짝 물에 헹궈 물기 쪽 짜서 송송 썰어 준 것과

참치 기름 쪽 뺀 것을 섞어 팬에 잠깐 볶아서 식힌 후에 소금, 참기름 밑간 한 밥에

크게 부친 계란 지단 넓게 깔고 그 위에 루꼴라와 펠트잘라트 얹어

또르르 말면 끝!

벌써 마음은 돗자리 들고 피크닉 가고 있다.


이렇게 맛보기 음식 들을 양손 가득 준비한 날에는 든든한 것이 강습하러 가는 발걸음 도 왠지 더 가볍다.

마치, 개학하는 날 그 전날까지 방학 숙제 용케 다 끝내 놓고

신바람 나게 학교 가는 아이처럼...

뭐 그 김에 우리 집 식구들 저녁도 해결해 놓은 것이 지만 멀리 한 시간 반 또는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에서도 강습을 받기 위해 달려오는 수강생들의 성의를 생각하면

무언가 먹이고 강습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놓이게 한다.



강습 시간 6시 보다 일찍 와서 대기 중이신 수강생들에게 맛보기 음식들을 담아서 나누어 달라 부탁을 했더니 즐거이 일을 거들며 뿜어 내는 눈빛에서 "우와 맛나 보인다!"라는 것이

그냥 자막으로 쓰인다. 흥미 보람찬 거!

"생각보다 훨씬 맛나!" 하면서 시금치나물과 김치 참치 김밥을 먹으며

계속해서 레시피를 묻고 강추하는 수강생들의 열화 같은 호응에 힘입어

다음번 강습에 본 메뉴로 데뷔시키기로 했다.


오늘 강습에서는 생전 처음 김밥을 먹어 보았거나, 처음 만들어 본 독일 사람들이 대부분 이였는데,

커플로, 또는 친구들, 가족으로 많이 오셨다.

그중 나의 엄마 미소를 계속해서 흩뿌리게 해 주었던 귀요미 16살짜리 수강생은 아빠와 함께 왔는데

원래는 엄마와 딸이 오려고 등록해 놓은 강습에 엄마가 갑자기 회사에서 출장 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아빠가 대타로 오셨다 했다.

서로 옆구리 터진 김밥 만들어 놓고 놀리고 재밌어하는 부녀 지간이 마냥 흐뭇해 웃음이 저절로 지어 지고는 했다.

흔한 경우로 보통 독일 사람들이 처음 만드는 김밥은 위에 왼쪽 사진처럼 멀쩡히 싸진 것과 옆구리 터진 김밥이 섞이거나

또는 옆구리가 처절히 터지는 김 따로 밥 따로 경우가 많은데 이 귀여운 딸내미가 옆구리 터진 김밥들을 방향 바꿔 누르듯 접시에 새워 담았더니 김밥 옆구리 터진 것이 저절로 달라붙더란다.

탁월한 대처법이었다.

위에 오른쪽 사진에 김밥이 옆으로 놓인 것이 아니라 마치 통처럼

새워진 이유였다.

그리고 우리 딸내미 또래의 고등학생 커플과 젊은 커플들이 이번 밸런타인데이 에는 꽃과 초콜릿 대신 자기들은 김밥을 함께 말아 예쁘게 도시락을 만들어 보겠다 해서 모두 에게 박수를 받았다.

남은 강습 시간 동안에는 한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어떤 선물을 하는지

화이트 데이라는 것도 있고, 등등 한국의 수많은 데이에 대한 이야기 들로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때보다 즐겁고 달달하게 김밥을 말았던 요리 강습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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