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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07. 2017

독일의 3대가 반한 돼지불고기 깻잎쌈

깻잎에 양념장 환상의 콤비

언제 짧은 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다녔던가 싶게 비 오고 제법 쌀쌀하던 이번 주
그중에서 유독 화요일 독일 날씨는 비가 한번 제대로 쏟아지겠구나
싶게 후덥지근하고 습한 날이었다.

한국요리 강습이 있어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집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독일의 문화센터 KFB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한국요리 강습이었지만 그날은 조깅 동우회 친구들의 그룹 강습 이어서 수강생들 중에 대부분이 아는 사람들이라 마치 추석에 큰집 가는 기분으로 출발했다.

때로 돌발 상황은 더 나은 상황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친구들이 섞여 있는 강습이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때 보다 더 정성 들여 식재료 준비 하고

나도 모르게 욕심껏 것조것 챙기게 되었다.

그래서 평소 강습 때마다 가져갈 짐이 많아 종종 생략했던 불판에 가스버너까지 가느라(독일의 문화센터의 실습실은 전기 렌즈로 되어 있다)

차에 실어 나르는 것을 도맡아 도와주던 남편도 "오우 평소보다 2배는 되는 것 같다"며

"오늘은 동네 잔칫집 같겠는걸"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남편의 농담이 실제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나 둘 사람들이 문화센터로 모여들고 강습을 시작하고 보니 출석부에 나와 있는 등록인원 은 12명 에서 17명으로 늘어 있었고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뒤섞여 마치 어느 집 결혼식 피로연 장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종종 등록 인원보다 한두 명 많았던 강습들은 더러 있어 왔지만 이렇게 한 조 보다 많은 다섯 명이 더 들이닥치는 것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다 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으나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한국요리를 경험해보고 싶어 모였다 는 것이 중요하다.

나머지 전개되는 상황은 온전히 맡겨진 강사의 몫인 것이다.

수강생들의 구성원을 파악하면 답이 보인다.

나는 내 몫으로 떨어진 과제를 보다 슬기롭고 재치 있게 해결하기 위해 이론 수업을 입으로 진행하며 머릿속으로는 수강생들의 구성원과 특이사항 등등을 빠르게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수강생들은 80대 노부부와 40대의 딸 그리고 9살의 손자까지 3대가 함께한 가족들부터 50대 이웃 친구들 70대 60대 조깅 동우회 친구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 대부분이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였다. 게다가 완전 채식주의 자인 비건 들에 조리 시간이 길어지면 금방 지루해하는 어린이 수강생까지 있어서 준비되어 있던 식재료 들을 놓고 계획했던 실습의 내용과 순서를 전적으로 바꾸어 나갔다.

같은 재료로 조리법은 간단한 것으로

원래 계획되었던 메뉴인 손이 많이 가는 편인 잡채와 전을 생략하고 그 대신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 우리의 설날 풍경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만두를 빚었다.

보통은 조별로 각각 만들어야 하는 만두소를 큰 통에 고기 간 것, 잡채 당면, 두부, 쑥주, 파, 마늘 등을 넣고 대량으로 함께 한 번에 만들어 식재료를 조별로 다시 나누어야 하는 번거로움과 썰고 지지고 볶아야 하는 조리 시간을 절약했다. (물론 비건 용 채소 만두소는 따로 만들었다.) 그 가운데  우리의 9살짜리 수강생 요하네스는 마늘 생강 다지는 것부터 조리 과정의 대부분을 오늘에 어시스 텐트로 활약했는데 조막만 한 손으로 콩콩콩 마늘 다지는 것도 얼마나 야무지던지.....

생략된 메뉴들에서 생긴 넉넉한 채소들은 그 자리에서 돼지 불고기 상차림의 모둠 야채 접시로 거듭났다.

불고기 옆 곁들이 채소는 생야채를 즐기는 독일 사람들에게 더없이 멋진 한상차림이 되어 주었고 그중에서도

특히나 우리 집 정원에서 따갔던 원래는 채소전 속에 들어가게 될 예정이었던 깻잎이 대박이 났다. 독일 사람들도 깨, 그리고 참기름 은 잘 알고 많이들 먹고 있으나 들기름, 깻잎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더구나 생긴 것이 이 동네에 많고 많은  나뭇잎 같이 생긴 것을 고기와 영념장 얹어 이렇게 쌈을 싸서 먹으면 맛나다고 보여 줄 때는 고개를 갸우뚱하던 독일 사람들이 한쌈씩 먹어 보게 했더니... 향 짙은 깻잎에 된장, 고추장 섞은 양념장을 노릇노릇 구워진 돼지 불고기 얹어 한쌈 하는 환상적인 맛에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너도 나도 상추에 깻잎을 얹어 쌈 느라 난리가 났다.

80대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9살짜리 손자까지 가스 불판에서 바로 익은 냄새부터 끝내주는 돼지 불고기를 상추와 깻잎에 양념장 콕 찍어 얹어 쌈 싸서 정신없이 드시느라 입도 손도 바빴다.

그 흐뭇한 광경을 지켜보자니 여기가 한국인가 독일인가 헛갈리는 순간이었다.

요리의 가짓수는 절반으로 맛과 분위기는 두배로

그날의 강습에서는 평소 네다섯 가지의 한국요리를 하는 다른 강습 때에 비해 수강생들이 직접 만들어 본 한국요리의 가짓수는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리하는 과정 그리고 음식을 함께 나누는 분위기는 평소보다 두배는 즐겁고 가족적이었다.

그 안에 아는 얼굴들이 많이 섞여 있어 그렇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딸에 손자까지 독일 가정의 삼대가 함께 했고, 수강생들에게 한국요리에 대해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알려 주어야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상황에 맞추고 나니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갔다. 

한국의 명절 분위기를 독일 사람들과 제대로 만끽해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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