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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04. 2016

한국 요리 강습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들


한국 요리 강습 플랜과 대반전

한식 요리 강습을 하고 있는 독일의 문화 센터 두 군데 중 한 곳인 KFB는

요리 강습 스케줄 표를 일 년 계획으로 하고 있다.

또 다른 한 곳인 VHS는 일 년에 두 번 학기 별로 요리강습을 계획한다.

내일까지 내년 여름 학기 강습 계획을 VHS 문화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그래야 때 맞춰 프로그램 책자를 찍고 웹 사이트에 강습 일정 들을 차질 없이 올려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센터 두 군데를 나누어 정신없이 계획서를 작성하다 보니 어느새 그동안의 요리 강습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중에서도 한국 요리 강습이 문화센터 Vhs에서 있었던 날이었다.

원래 한 강습에 정원 수가 16명인데 예고 없이 초과된 인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이유인즉슨 인터넷으로 수강 신청을 했던 4명의 수강생  들은

"대기자 명단에 올라갔습니다" 하는 메시지를 이번 강습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신나서 강습을 오게 된 것이다.


언제나 식재료, 레시피 등의 강습 준비를 넉넉히 하는 편인 나는 강사 재량으로 그들을 강습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요리 강습을 하기 위해 몇 번을 수강 신청했다가 매번 빠른 시간 내에 마감이 되는 바람에 기다리기만 하다가 이번엔 드디어 참여할 수 있겠구나 싶어 너무 기뻤다는 사람들을 강사 가 미리 알고 있지 못했다고 해서

어떻게 그냥 가시라 하겠는가?

실습실이 좁으면 좁은 대로 준비된 식재료도 요리조리 서로 나누어서 진행하기로 했다.

다른 수강생 들 도 다른 수강생 들 도 흔쾌히 이해해 주고 모두가 즐겁게 강습에 임했다.

나는 이렇게 대기자 명단까지 가지고 있게 된 한국요리 강습의 상황에 감회가 남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처음은 늘 어렵지만 한국요리 강습을 문화센터 VHS에서 시작할 때가 정말 만만치 않았다.

그 시절은 케이 문화의 반향이 일어나기 전이였고 낯선 것을 좋아하지 않고 어찌 보면 두려워하는 독일에서 그때까지 한국요리 강습이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 하기 전이였다.


지금 한국 요리 강습을 하고 있는 두 곳의 문화센터 중 한 곳인 Vhs는 독일 거의 모든 지역에 있는 지역 문화센터다. 정부와 각 기관의 지원과 후원을 받아 다른 곳에 비해 강습료도

부담이 적고 독일어 어학 코스부터 법학, 철학, 스포츠, 문화, 역사, 요리, 음악 각 분야별 강습이 다양하게 학기 별로 이루어지는 이곳을 독일 사람들은 시민 대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 만큼 이곳 의 분야별 담당자 들은 나름 까다롭고 콧대가 센 편이다.

처음 요리강습 파트 마케팅 담당자와 미팅을 했을 때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담당자인 헬가트는 "한식? 글쎄.... 초밥 강습 이 라면 몰라도.....

 ..... 우리 문화 센터에 프로그램으로 책자에 찍어 넣었어도 정원 수가 미달이어서

시작도 못해 보고 폐지됐던 요리 강습 부지기수 다 "

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럼 에도 문화센터의 마케팅 담당자가 한국요리강습을 프로그램에 넣어 준 이유는  



첫째는 카셀로 이사 오기 전 다른 도시에서 요리강습을 했던

나의 경력이 제법 화려 했다. 버젓한 곳에서만 이름을 널리 날렸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요리에 관심 있어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제대로 된 문화센터가 아니어도 양로원, 유치원, 학교,

시에서 하는 문화 행사, 교회 봉사 여성문화회관 봉사 등 가리지 않고 때로는 강사료 받지 않고

어느 때는 내 돈 들여 식재료 사 들고도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었다.


둘째는 일식 코스 요리 강습과 초밥 강습에 관심 이 많았던 담당자에게 나는 한국요리 강습을 학기 수업에 넣어 주는 조건으로 일식 코스 요리 강습 반 과 초밥 초급 반, 중급 반 강습을

해 주기로 했었다.


물론 그때까지 만 해도 담당자는 한식 강습은 덤이니까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할 수 없지..

라는 식으로 한 학기에 할 수 있는 한국요리 강습 시간을 몇 번 이내라고 제한하기까지

했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 한국요리 강습이 언젠가는 독일의 문화센터에서 제대로 대박이 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한국 요리는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움이 있는 만큼 정성이 듬뿍 들어간다

또 다양한 양념과 다채 로운 조리법은 깊은 감칠맛을 내며 신선한 제철 먹거리들을 담아내는 건강하고 자연 을 닮은 서로 의 마음이 소리 없이 소통되는 요리 다.

세상에 이런 요리가 어디 흔한 던가?


이제는 담당자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 한국요리 강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대기자 명단이 너무 길어....

한국요리 강습 이번 달 한 번만 더 늘려 주면 안 되겠니?"

그러면 나는 이렇게 허리를 펴고 도도 하게

이야기한다.

"그러게...  한국요리 강습이 계속 대박을 치네..

글쎄.... 시간 한번 보고..."

강습 안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언제나 그렇듯 신나고 재밌게 즐거운 마음으로 강습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중간중간 당황스러운 일들과 어려웠던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 많은 횟수의 강습을 하다 보니 함께 요리했던 모든 분들의 이름이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그날그날 강습의  분위기나 특징 들 그리고 함께 요리했던 메뉴들과 음식을 나누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중에는 이름까지 선명하게 기억되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그 특별한 사람들 중에 잊을 수 없는 몇 사람이 있다.

마티아스 처음에 그 친구가 한식 강습 초급반을  들어왔을 때 솔직히 속으로 많이 당황했었다.

강습은 언제나 팀으로 나누어 진행하는데 그는 지적 장애우로 다른 사람 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할 것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나의 모자란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그날 처음 만났던 같은 팀의 사람 들과

마치 옆 집 이웃 사람들처럼 잘 어울렸다

팀원들도 마티아스를 챙기고 그 또한 느리지만 하나하나 잘 따라와 주었다.


무엇보다 칼질이 많은 한국요리 강습에서 잠깐 실수하면 손을 베는 일이 다반사라 인 지라 처음 마티아스를 지켜보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불필요한 기우가 무색하리 만큼 마티아스는 끝까지 잘 따라 해 주었고 그 후 그는 한식 중급반까지 마쳤다.

물론  한식 중급반까지 마쳤다 해서 조리사가 될 만큼의 실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럼 에도 마티아스가 우리의 만두, 김치, 잡채, 비빔밥 등 손이 제법 많이 가고  독일 사람들에게

다소 낯선 양념과 조리 방법으로 요리해야 하는 한국요리와 식문화를 경험하고

이해하며 처음 만난 낯선 이들과 함께 요리하고 맛나게 식사를 나누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큰 감동이었다.


프라우케 그녀는 한국 사찰요리 강습 시간 30분이나 미리 와서

준비하는 것을 돕고 싶다고 해서 나를 살짝 당황스럽게 했던 아줌마 다.

왜냐 하면 그녀는 심한 육체적 장애로 목발을 짚고 서 있는 것도 힘겨워 보였기 때문이다.

부엌 바닥 미끄러운데,,,,,프라이팬에 기름 넣고 구을 것 꽤 되는데,..,,

어쩌지...

그날도 나는 속으로 걱정을 바리바리 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라우케는 강습 끝나고 뒷정리까지 다 돕고 맨 마지막에 집으로 갔다.

재료를 손질하고 다듬고 썰고 서 있어야 할 일 들이 많았고 실습장 안을 왔다 갔다

해야 할 일이 많았던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텐데  

그녀 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한국 음식이 이렇게 맛있는 것인지 몰랐다며

다음 달에 있을 궁중 요리반 에도 참여하고 싶다고 이야기해줘서 나를 뭉클하게 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는 안젤라 가 친구 들과 함께 한식 강습 초급 반에 참여했을

그때는 그녀가 우리와 다른 것이 아니라 몸 상태가 조금 편안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그동안의 강습 경험으로 충분히 알게 되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걷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그녀가 뭐 도울일 없냐고 물어 왔을 때 그녀가 덜 힘들게 도울 수 있는

것 들을 편안하게 맡길 수 있을 정도의 내공 이미 내 안에 생겨 났기 때문이다

동네 반장 아줌마 스타일의 안젤라는 밝은 성격에 다른 나라 식문화와 낯선 조리 법 에 빠르게 적응

하는 해박한 이해력과 유머러스 한 입담으로 종종 멘붕인 팀원들을 잘 따라올 수 있게 이끌어준

탁월한 팀장이었다.


강습에 참여하는 그룹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하루 저녁에 4가지 에서 많으면 5가지 한국 음식을

조리한다.

한 번도 한국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는 독일 사람들이 대부분인 강습 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안드로메다 음식이 나올 수 도 있기 때문에 중간중간 설명과 맛보기는 필수 템이다.   

또 한 명의 잊을 수 없는 그녀의 이름은 라우라 이론 수업을 끝내고 실습실에서 재료 설명과 시현을 마친 후에

팀별로 식재료를 나누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그녀에게 버섯 손질의 요령을 열심히 설명하고 지나 가려 는데

대답이 없는 것이다.

해서 다시 한번 설명을 하고 쳐다보는데 함께 왔던 그녀의 딸이

빠르게 내게 다가와서는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청각 장애가 있었다. 그때까지 나의 입모양으로 수업을 알아 들었고 그녀가 이해 못 한 부분의

보충 설명은 딸이 수화로 전달했기 때문에 직접 대화 가 오가기 전인 그 시점까지 나는 그녀 가

청각 장애우 인지 알지 못했다.

그 후로 그녀 에게는 입모양을 통해 그리고 손동작을 통해 한국 요리를 강습을 진행했고

서로가 공감하는 한국 음식의 감칠맛을 깊은 눈빛과 표정으로 서로 에게 근사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다 작성된 내년도 강습 일정표를 바라보며 내년 에는 어떤 사람들이 한국 요리 강습에 에 참여할지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즐거운 요리 강습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 요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독일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날을 위하여 ~~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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