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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15. 2023

딸내미의 선물 시들지 않는 꽃다발


얼마 전 우리 가족은 다섯이 (멍뭉이 나리까지 여섯이) 다 모여 완전체가 되었다.

부활절 연휴를 맞아 다른 곳에 살고 있는 큰아들과 딸내미가 집으로 합류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평소 막내와 셋이 지내던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시장 보는 횟수와 양도 달라지고 집안 분위기도 왁자지껄 하니 비로소

사람 사는 집 같아진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자식들 모두 출가시키고 홀로 남은 시골 노인들처럼 달랑 남편과 둘만 있는 것도 아닌데 보통 우리 집은 꽤나 고요했구나 싶다.


사춘기의 절정을 달리고 계신 막내 나 똥꼬 발랄한 멍뭉이 나리나 모두 조용한 편이다.

막내는 밥때를 제외한 시간은 주로 제 방에서 지내고 식사 시간에도 별달리 말이 많지 않다.

사춘기 청소년은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도 우리가 물어야 나 간신히 대답을 해줄까 말까 이기 때문이다.

요것조것 다양한 화제로 대화 좀 시도 할라 치면  "엄마는 뭐가 그렇게 알고 싶은 것이 많아?"라며 짜증을 내기 십상이라 그마저도 눈치 게임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시크하신 막내도 형아와 누나가 집에 오면 덩달아 말도 많아지고 그간 우리에게는 하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술술 꺼내 놓게 된다.

그런 활기찬 분위기를 멍뭉이 나리도 느껴지는지...

집에서는 주로 현관 앞이 자기 자리인양 자리 잡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소리에 귀를 쫑긋 하고 다른 강아지가 집 앞을 지나가기라도 하면 짖어 대고 보초?를 서던가 아니면 먹다가 졸다가 하는 게 저의 임무 인양 하던 나리도 식구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깨발랄 해 진다


그렇게 막내를 수다쟁이로 만들고 나리가 우리 사이로 들어오게 하는 데는 역시나 눈치코치 빠른 분위기 메이커 딸내미의 역할이 크다.

딸내미가 날씨 좋은데 온 가족이 함께 공원 산책을 나가자고 하면 평소 라면 귀찮아할 막내도 연휴 기간 에도 일 처리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바쁘던 큰아들도 기꺼이 따라나선다.


공원을 길게 산책하며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누어도 언제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 진다.

지나간 시간 속에 있었던 일들을 순서 없이 나누어도 서로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가 가족임을 다시 한번 느끼며 서로에게 잔잔한 응원이 되어 주는 시간...

별 이야기 아니어도 언제나 웃음꽃이 만발이다. 이야기 속에는 함께 하지 않은 순간들 이 많지만 서로에 머릿속에는 그린 듯 상상이 가능하다.

가족은 많은 이야기를 전 하지 않아도 이미 서로에 대해 알고 있고 또 알아 가는 사이 다.  


오가던 수많은 이야기 속에 딸내미가 얼마 전 지나간 우리의 결혼기념일에 무엇을 했는지 물어 왔다.

"그날 뭐 했더라.. 음 일했지 병원일...!"

나의 대답에 아이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크게 웃었고 딸내미는 아빠에게 이번에는 잊지 않았느냐 물었다.

멋쩍어하는 남편을 대신에 다시 내가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도 아빠가 이번에는 결혼기념일인 거 그날 생각해 냈어. 마트 다녀와서는 아 꽃 사는 거 잊어버렸다 해서 웃고 말았지만 말이야!"


아이들에게 고자질하듯 이야기하고 나니 아닌 척했지만 남편에게 쪼금 섭섭했던 마음 한 조각이 바람 따라 흩어졌다.

사실 꽃 싫어하는 여자가 어디 있는가 며칠 못 가 시들어지는 것이 아까와 잘 사지 않을 뿐 선물로 받으면야 기쁘고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센스 없는 남편은 꽃 한 송이 없이 결혼기념일을 지나가면서 그나마 당일에 기억은 했다는 것에 위안을 가진 내가 "괜찮아 먹지도 못할 꽃 사야 뭐 해 아깝지!"라고 했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진짜로 그냥 넘어 가더란 말이다 눈치도 없게...


그런데...



엄마의 마음을 대번에 알아 차린 딸내미는 온 가족이 공원 산책을 했던 날 이후 서프라이즈로 화려하고 어여쁜 꽃다발 선물을 들고 왔다.

그것도 시들지 않는 것으로....


손으로 하는 것이면 요리던 그림이던 만들기이던 척척 잘하는 딸내미의 취미 중에 하나가 뜨개질이다.

아이는 그동안 생일, 크리스마스 등 때마다 식구들과 친구들 선물로 핸디 커버, 목도리, 모자, 노트북 커버, 헤어밴드, 양말 등등 꽤나 다양한 소품들을 짬짬이 만들었다.


이번엔 엄마 아빠의 지나간 결혼기념일을 위해 엄마가 좋아하는 장미, 글라디올라스, 겹벗꽃 등을 굵기 다른 색색의 털실로 한 올 한 올 떠서 꽃다발을 만들어 냈다.

시든 꽃을 아까와하는 엄마를 위해 딸내미는 시들지 않는 꽃을 선물하기로 한 거다.

그 깜찍한 아이디어와 다정한 마음이 예뻐서 마치 꽃에서 향긋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딸내미의 명품 꽃다발을 보고 있자니...

문득 시크하기 그지없던 사춘기 때의 딸내미가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났다.

지금은 누구 보다 엄마편인 딸내미이지만 그때는 많이 달랐다.

가끔 그 시절 이야기를 함께 하다 보면 저도 견면쩍게 웃으며 “왜 그랬나 몰라!”하며 웃고는 한다.


그때의 딸내미는 오늘날의 이 다정다감한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 웠다.

우리는 딸내미의 사춘기 무렵 남편의 직장 관계로 주를 바꿔 이사를 해야 했고

당연히 아이들은 전학을 했어야 했다.

안 그래도 한창 예민할 때인데 환경의 변화까지 얹어지니 난리도 아닐 수밖에...

지금 막내의 사춘기는 거기다 대면 애교인 셈이다.


독일도 동네마다 특히나 주마다의 차이가 크다.

특히나 아이들 학교는 공부해야 하는 교과 내용들도 학교 분위기 들도 여러 가지 다르게 마련이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에게 전부인 친한 친구들이 형성되던 시기에 아이들에게 주를 바꿔 간 전학은 다른 세상이었다.

다른 세상에 떨어진 딸내미는 그야말로 사춘기의 절정을 맞았다.


사춘기 절정이던 딸내미는 반항적이고 까칠하고 쌀쌀맞았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친구 들과 함께였던 전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엄마를 쿨하게 모른 척할 정도였다.

그 시절 아이와 함께 상처받으며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자면 이 밤을 새워도 부족하다.


사춘기의 딸내미에게 여느 독일 엄마와 생김새도 대화의 내용도 그때마다 크고 작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모습도 다른 엄마가 때로 갑갑하고 창피했을는지 모른다.

독일 아이들 속에서 한국인이라는 자존감이 아이 내면에 깊이 뿌리내릴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일 게다.


그 시절 그렇게 엄마에게 눈 흘기며 다녔던 한글학교 덕분에 딸내미는 한국어를 읽고 쓰고 할 수 있고 집에서는 무조건 한국말을 해야 한다는 것 덕분에 지금 그렇게 재밌어하는 한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볼 수 있다.

또 남들보다 갑절은 더 한 유난스런 사춘기를 보냈기에 딸내미는 지금 누구 보다 엄마의 마음을 속속들이 잘 헤아려 주는지도 모르겠다.


딸내미의 시들지 않을 꽃다발엔 물도 필요 없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같은 모습으로 계속 반짝이며 아름다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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