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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12. 2023

요즘 독일 마트에는 복숭아, 살구가  한창이다

천도복숭아와 추억 하나


요즘 독일 마트에는 복숭아와 살구가 한창이다.

얼마 전까지 밭딸기가 시즌이었는데 어느새 끝물이 되어 가고 빨갛고 노랗고 하얀 종류 다른 복숭아들과 오렌지 빛깔의 살구가 지천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7월에 접어들어 중순으로 가고 있다.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지나 가는지 일하면서 서류에 날짜를  확인하건만 숫자는 숫자일 뿐이던가..

마트에서 제철 과일이 바뀌어 가는 걸 보고서야 불현듯 달이 바뀌고 계절이 무르익어 가는 게 실감이 나고는 한다

'이젠 정말 한여름이구나!'하고 말이다.


2주 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속해 있는 헤센주의 아이들 여름방학이 시작될 테고(독일은 주마다 방학일자가 다릅니다.) 8월 초가 되면 우리 병원도 여름휴가에 들어간다.

해 바뀐 지 엊그제 같은데 또 이렇게 반년이 후딱 하니 지나가고 있다.


빨갛고 반질 반질한 천도복숭아, 하얀 솜털이 보숭보숭한 흰 복숭아, 도리 납작하게 생긴 납작 복숭아 그리고 오렌지 빛깔에 군데군데 볼연지를 찍어 바른듯한 빵긋 빨긋한 살구..

요즘 독일 마트 과일 칸의 맨 중앙을 차지하고 계신 과일 들 이시다.


대부분 독일에 비해 날씨가 좋은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이웃 나라에서 건너온 것들이지만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간질이며 "지금이 제철이여~!"를 외치는 듯하다.

그 강력한 단내에 어느새 작고 작은 초파리들이 하나둘 주위를 맴돈다. (그 덕분에 위에 사진 가격표 위에서 떡하니 포즈를 잡고 있는 파리들이 생동감 있게 포토슈팅이 되었습니다 ㅎㅎ)


얼마 전까지 위풍당당하게 과일칸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밭딸기들은 이제 쌔들 쌔들 끝물임을 알려 준다.

우리 집 미니 딸기밭만 믿고 기다렸다 우박에 폭풍우 쌔려 맞고 농사가 망하는 바람에

올해는 수제 딸기잼을 만들지 못했다


끝물 된 딸기를 보니 진작 마트에서 사다가 딸기 잼을 만들어 둘걸 하는 후회가 살짝 되기는 했지만 많이 먹어야 살만 찌지 하며 아쉬움을 접는다


무엇을 골라 담을까? 하다 제일 먼저 빨간 넥타리넨 우리로 천도복숭아를 담았다.

세일이라 1kg 한 박스에 담긴 조금 작은 것은 2유로 59 조금 크고 골라 담는 것은 1kg에 4.49유로 한다.

한화로 약 6천 원 돈 한다. 제철이라 가격도 착하다.


겉면이 반질 반질한 빨간 바탕에 짙은 노란색이 곁들여진 천도복숭아는 예전 한국에서 먹던 것과  닮아 있다.

한입 베어 물면 단물이 입안 가득하던 그 맛도 말이다.


보통 봄, 가을, 겨울에 마트 과일칸 한쪽 귀퉁이에 보일 듯 말 듯 나와 있는 비싼 천도복숭아는 오래 보관되었던 것이라 뜨거운 물에 데친 듯 물컹하고 맹맹한 것이 여름에 먹는  맛이 나지 않는다.


나는 워낙 과일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복숭아 그것도 천도복숭아를 제일 좋아한다.

때문에 어릴 때는 밥 안 먹고 과일로 배 채우는 날도 더러 있었다.

잘 익은 것으로 골라 담다 보니 옛 추억 하나가 슬며시 따라온다.


내가 어린 시절 한국에는 집 앞 슈퍼 에도 과일을 팔았지만 골목골목으로 트럭을 몰고 와서 과일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금으로 보면 현지 직송인 거다.)

커다란 은색의 대야를 머리에 이고 제철 과일들을 팔러 다니는 분들이 있었다.



그중에 우리가 늘 갈치 아즈매 라 부르던 분이 계셨다.

그분은 여름을 제외한 나머지 날들에는 새벽에 수산 시장에서 은빛 나는 싱싱한 갈치를 받아다 머리에 이고 동네마다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팔고는 하셨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시원한 목소리를 가졌던 갈치 아즈매가 그 굵직하고 뻥 뚫린 듯한 목소리로

"갈치요 신선한 갈치가 왔어요~!" 또는 "복숭아요 자두요!" 하고 외치면 골목 끝에

까지 쩌렁쩌렁 울리고는 했다.


부산 사람인 친정엄마는 그렇게 아주머니가 오실 때면 "갈치 아즈매요 여기요 파란 대문!" 하고 아주머니를 불러 세우고는 했다

그렇게 갈치 아즈매는 선선한 날은 갈치를 

더운 날은 복숭아 자두를 팔아 아이들을 키운다고 했다.

아즈매의 딸내미는 공부도 잘했다고 친정엄마는 아즈매도 대단하고 딸내미도 기특하다고 연신 칭찬을 하고는 하셨다


엄마의 부르는 소리에 갈치 아즈매는 반가운 미소를 띤 체 땀이 송골송골 한 얼굴로 우리 집 대문 안으로 들어 서고는 했었다.

엄마는 그런 아즈매 에게 대청마루에 자리를 내어 드리고 여름이면 얼음이 동동 뜬 시원한 미숫가루를 한잔

타 드리고 갈치를 파는 봄가을 에는 향이 짙은 커피 한잔을 내어 드렸다


그러면 갈치 아즈매는 고맙다며 갈치를 파실 때는 그중 두꺼운 놈으로 골라 주시고 복숭아 자두를 파실 때면 작고 겉면에 짙은 초록의 무늬가 있고 속 안은 빨간 일명 개구리 자두, 또는 피자두라 부르던 작은 자두 한두 알을 내 손에 쥐어 주시고는 했다.


그 시절 갈치 아즈매의 천도복숭아는 정말 맛났다.

우리는 여름 낮이면 복숭아요 자두요 하는 아즈매의 우렁찬 목소리를 기다리고는 했다.


대청마루에 드러누워 선풍기 돌아가는 쪽으로 목침 하나 베고 벌러덩 누워 더워 더워를 외치다가도 엄마의 “복숭아 먹어라”소리면 벌떡 일어나 그 달콤한 물이 주르륵 흐르던 천도복숭아를 입에 물었다.

가끔은 동생들과 가위바위보로 서로 부채질해주기 놀이도 해가며 먹던 천도복숭아는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깔깔하지만 시원했던 대나무 돗자리 위에 전날 모기에 물려 빨개진 팔이나 다리를 대대고 있으면 어느새 네모난 대나무 자욱이 모기 물린 위로 함께 모양을 만든다


그리고 금세 몸의 열기로 미지근해지던 자리 위를 몸을 돌돌 굴려 가며 시원한 곳을 찾던 여름...

가끔 매엠매엠 맴 쓰르릅 쓱쓱 하는 매미들의 소리가 배경음악이 되고 처마 끝에 초록의 덩굴 아래 매달린 여주가 노랗게 익어 가던 계절...


그 여름이 나는 천도복숭아가 제철일 때면 늘 떠오르고는 한다.

살아가면서 사람의 추억 중 어느 장면은 마치 동화책의 한 장면처럼 곱게 기록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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