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Jul 10. 2023

트라우마 극복과 1유로

등 떠밀려 시작한 트라우마 극복


트라우마 란?

일상에서 간혹 말하는 트라우마는 주로 어떤 일을 겪고 생긴 마음의 상처를 말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함께 있는 것이라 서로가 무관 할 수 없다.

심리적인 상처로 인해 육체적인 증상도 동반할 수도 있고 또는 반대로 육체적인 상처로 비롯된 마음의 상처가 오랜 세월 남기도 한다.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일상의 일들로 트라우마 가 생겨서

요샛말로 일명 마상(신조어 알고 있음에 기쁜 1인)을 입은 것이 신체적 증상으로 연결되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독일은 신경정신과를 가기 전 언제나 제일 먼저 가정의 진료를 우선으로 받기 때문에 많은 케이스들을

만나게 됩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거식증이 생긴 사람도 있고 형제의 질병으로 인해 건강 염려증이 생긴 사람도 있으며

남편의 폭행으로 인해 공황이 온 이도 있고 소위 너무 잘난 부모 형제로 인해 강박증과 함께 수면 장애가 생긴 이도 있다

그렇게 일상생활이 어려운 트라우마들 사이에서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트라우마 라 이야기하기도 민망하지만 내게도 한두 개 작은 트라우마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물이다. 나는 깊은 물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수영을 하기는 하는데 꼭 발이 닫는 곳에서만 수영을 할 수가 있다

때문에 언제나 아이들 노는 곳 물이 허리춤에 오는 얕은 수영장에서 폼은 대서양이라도 건너듯 수영을 한다.

(이유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아직은 절반의  수영)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독일의 시립 수영장


숨이 막히게 더운 날이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이미 그 주 주말이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워낙 이 동네 날씨가 들쑥날쑥해서 오늘 20도였다가 그다음 날 29도가 넘어 가도 또는 그 반대여도 전혀 이상 할 것은 없지만 그 주 내내 더웠다.

그렇게 한결같이 내리 더우니 그것도 힘들고 체력이 달렸다.


오전 진료를 마치고 급한 왕진을 하고 남편과 수영장으로 갔다.

독일에서 잘 되어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시립 수영장이다. 어느 동네이던 동네마다 시립 수영장이 몇 개씩은 지역 별로 나뉘어 있다. 그래서 자동차 안에 수영 가방을 싣고 다니다 조금 짬만 나면 쉽게 수영장을 갈 수가 있다.


이번에는 겨우내 다녔던 온천 수영장이 아니라 병원 근처 시립 수영장으로 향했다.

가깝기도 하거니와 물도 차고 (그래서 겨울엔 못 갑니다) 가격도 착하다.

온천 수영장은 둘이 가면 1시간 30분에 30유로 를 내야 한다. 그것도 적립 카드가 있어 보너스를 받은 가격이다. (요즘은 여름이라 한 시간 더 주기는 합니다 ㅎㅎ)

한화로 약 4만 원 돈 한다.


그런데 시립 수영장은 하루종일 이어도 둘이 합쳐 7유로이니 가격이 착하다. (한화로 약 9천 원 돈이니 )

물론 시설 면에서 차이는 나지만 간단히 몸을 풀고 물에서 왔다 갔다 하며 수영을 하기에는 충분하다.


이 시립 수영장 안에는 실내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 두 곳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아이들이 배도 띄우고 공놀이도 하고 물에 뛰어들며 놀기도 하는 깊은 곳이 130cm 인 어린이 풀..

그리고 깊은 곳이 2미터 인 수영만 할 수 있는 어른들 풀장으로 나뉜다.

나는 당연히 어린이 풀에서만 논다?


대체로 어린이 풀 안에는 아이를 동반한 부모 거나 아이들 뿐이고 가끔 아이들이 많은 날은 조금 뻘쭘 하기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내 할 일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 아빠들이 어린이 풀 안 군데군데 보였다.

처음엔 혹시 베이비 수영 강습이 있나?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딱 피지컬이 북극곰을 연상케 하는 아저씨가 어린이 풀로 들어왔다.

나는 쾌재를 부르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보통 강습이 있으면 수영장 앞에 쓰여 있거나 수영장 가장자리로 줄이 쳐져 있을 텐데 아무것도 없잖아 게다가 저렇게 튼실한 아저씨도 들어왔잖아!'

어린이 풀장 안 구석 벽 쪽에는 월풀 기능이 있다. 그래서 가끔 어른들도 벽에 붙어 서서 일명 뽀글이로 허리나 다리에 물마사지를 하고는 한다.


독일에서는 어려서부터 수영 수업을 받기 때문에 수영을 못하는 또는 물을 무서워하는 어른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더더군다나 나처럼 발이 물에 닿는 곳에서만 수영이 가능한 사람은 아직 만나 보지 못했다.


나는 아기 들과 뒤섞여 나름 열심히 나만의 수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얀색 티셔츠에 검은색 반바지에 머리는 하나로 질끈 동여 묶고 누가 봐도 수영장에서 일하는 안전요원 처자가 내게 다가오더니 "저기 지금 여기서 이러고 계시면 안돼요"

라는 게 아닌가?

아니 어디서 마이 듣던 소리 아닌가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추억의 개콘 열렬 팬 인증)


어른이라고 어린이 풀에서 놀지 말라는 법도 없고 특별한 이유가 생각이 나지 않던

나는 너무 뜻밖이라 "왜요? 뭐가 안된다는 거죠?"라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이 처자가 좀 전에 내가 보았던 북극곰 같이 생긴 아저씨를 가리키며

"좀 있음 여기서 베이비 수영 강습 이 있어요" 하지 않는가


왓뜨? 이럴 수가 진짜 베이비 강습이었잖아 게다가 저 아저씨가 수영 강사라고?

보통 베이비 수영 강습이라 하면 젊은 엄마 아빠와 아기들 그리고 탄탄하고 상냥한 젊은 여성 수영코치가 대부분이었다.


상상을 초월하기는 했지만 무안한 마음을 애써 다독이던 나는 안전요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몰랐어요 보통 강습 전에는 수영장 벽에 안내문이 쓰여 있거나 풀 앞에 줄을 치잖아요 오늘은 아무것도 안되어 있었서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러자 너무도 친절함이 묻어 나는 목소리의 안전요원은 내게

"네 죄송해요 그건 저희 실수 에요 동료가 안내문을 붙인 다는 걸 잊어버렸고 제가 지금 줄을 치려고 했는데 먼저 들어와 계셨어요!"라고 했다.


등 떠밀려 트라우마 극복하기


이런 쉣뜨! 쫓겨나다 시피 어린이 풀에서 나오며 사실 몹시 쪽팔렸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럼 이제 나는 여기서 뭐 하나?'였다.


수영장 안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한창 열심히 수영하고 있는 남편에게 

이제 그만 가자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영복 입고 햇빛도 없는 실내에서 일광욕 이라도 하듯 자빠져 있을수도 없고 남은 것은 오로지 깊고 깊은 어른들의  (사실 아이들 중에서도 수영을 하는 아이들은 그곳에서 수영을 한다)뿐이다.


망설일  없이 일단 물안에 들어갔다.

어른들   앞쪽은 그래도 내가 서면 물이 가슴팍까지 오니  앞에서 왔다 갔다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도 깊이는 그 앞쪽뿐이라는 거다

내가  딛고   있는 곳은 온리  앞쪽뿐이고 주로 그쪽으로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길목이라 마냥  있을 수도 없다


나의 난감한 표정을 눈치챈 남편은 중간에 서 있을 테니 거기 까지만 오라고 했다.

키 177인 남편이 발뒤꿈치를 들고 서있는 그곳은 아마도 180이 넘는 곳일 것이다.

망설이며 벽 쪽으로 붙어선 나는 남편이 있는 곳까지 발이 닿나 안 닿나 콩콩 거리며 다녀 보았다.


마치 멀리서 보면 예전에 아이들 놀이 기구인 스카이 콩콩이라도 물속에서 타고 있는  보였을 것이다.

 쪽에는  칸짜리 계단이 되어 어 올라갈 수가 있다

여차하면 벽꼭대기를 붙들거나  중간에 있는 메탈 손잡이(보통 옆쪽에서 입수할  필요한..) 잡으면 되니 안심이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남편은 "의심은 많아서" 라며 껄껄 웃었다


그렇게 풀장  가장자리  쪽에 붙어 서서 중간쯤에 남편을 말뚝처럼 세워 두고 거기까지 수영을 해서 가기를  

어느 순간 남편이 조금 뒤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움직였지? 하는 표정으로 눈을 세모꼴이 되게 만들고 남편에게 앞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랬더니..

어느새 남편이 수영을 해서 내게 와서는 

옆에 봐봐  아저씨 보다 네가  수영을 잘해 아까 보다 조금만  뒤로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라고 했다.


진짜 그 옆쪽에서 어느 아저씨가 물에 가라앉을 듯 깊게 잠겨 가며 허우적 대듯 수영을 하고 있었고 수영장 물은 파도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그래, 저렇게 해도 물에 뜨는데!'라는 생각이 들며 조금의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남편이 슬금슬금 뒤로 가는 것 같은데 싶었지만 계속 수영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보니 남편은 수영장  끝쪽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내가 수영하고 있던 그곳도 이미  키를 훌쩍 넘은 곳일 테다

나는 죽기 살기로 수영을 했다 깊은 곳이라 불안해지고 무서 웠지만 돌아 가느니 앞으로 가는   빠를  같아서였다.


그렇게 얼떨결에 수영장 한 바퀴를 돌았다. 내 생애 처음으로 깊은 풀에서 수영을 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거봐 되잖아!"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세상에 믿을  하나 없어!"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되게 뿌듯했다.

' 되네! 나도 어린이 풀장에서가 아니라 어른 풀에서 제대로 수영을 했어!' 싶어 감격스러웠다.

비록  떠밀려서  거지만 어쩐지 나의 물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쯤 희석되는 느낌이었고 이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을 끝내고 스스로 그렇게 기특해하며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들어갔는데 탈의실 안 거울 밑에 반짝반짝한 1유로가 놓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 "오늘 잘했어 1유로어치 칭찬해!" 하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누군가 실수로 캐비닛에 넣었던 동전을 깜박하고 두고 갔을 테지만  갈아입다 말고 누구 것이냐 물으러 돌아다닐 수도 없고 그냥 가방에 넣어 두기로 했다.

언젠가 캐비닛에 넣을 동전이 없는 사람에게 선물하지 뭐 하면서 말이다.


여러모로 특별한 날이었다. 50 조금? 넘은 평생 번도 해보지 못한 깊은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고

길바닥에서도 주워 본 적 없는.. 누군가 준비해 준 것 같은 모습의 1유로를 득템 했다.


어쩌면 다음번 수영장에    어린이 풀장으로 직행할지도 모른다.

아직은 진행형의 트라우마이기에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는 것이다.

비록  떠밀려  것이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에 온 산타와 도둑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