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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28. 2023

여름에 온 산타와 도둑녀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말 행사? 중에 하나인 갗 구운 빵을 사러 가기 위해 남편과 문밖을 나섰다.

그러다 우리는 울타리 밖에서 밤새 정원은 잘 잤나? 하고는 정원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요즘 나름 꽃밭에도 정성을 들이고 있고 텃밭도 가꾸고 있어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정원 들여다보는 게 취미가 되었다

사람이나 정원이나 정성 들인 만큼 아니겠는가


그전날 지지대를 받쳐준  가지의 토마토는 밤새 조금   듯하고 콜라비는 조금 햇빛이 적은 듯해서  쪽으로 빼내어 주어야겠고 콜리플라워 는 너무 직사광선을 받는 쪽이라 약간 옆으로 들여놔 주어야겠다.

호박과 고구마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한번  주고 루꼴라, 바질 등의 허브는 어서 따서 샐러드에 넣어 주기를 기다리는  풍성해지고 있다.


또 하얀 꽃이 피고 초록의 딸기알이 맺힌 딸기는 빨갛게 익어 가기만 남았다.

하얗고 노란 장미 봉오리 들은 하나둘 피어나고 있었고 짙은 붉은색 장미와 자주색 장미는 그야말로 만개하고 있었다.

몇 가지 종류는 없지만 우리 집 정원 안에서는 장미 장미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저렇게 눈으로 해야 할 일들을 잠시 체크하고 있는데 남편이 물었다.

"어? 저게 뭐지?"


남편이 가리키는 곳에는 커다란 화분이 놓여 있었다.

의심 많은 나는 "누가 버릴 것 같다 둔 거 아냐?"라고 했고 남편은 "에이 상태 좋은데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라 팔긴 아저씨가 가져다 준거겠지!"라고 했다.

남편은 가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유머를 발사 해서 나를 웃기고는 한다

물론 그 뜬금없는게 내 취향저격 이라는 거이 문제지만 말이다


우리 집이 길거리와 인접하다 보니 그동안 화분이나 꽃나무 또는 자전거 등을 누가 훔쳐간 적은 있었어도 뭘 가져도 준 적은 없었어서 의심이 먼저 들었지만 자세히 보니 진짜 쓸만한 화분이었다.

큰 화분은 꽤 비싼데....


요즘 우리가 열심히 정원 가꾸는 걸 보고 지나다니던 이웃들이 어머 예뻐요 소리를 자주 했었는데 그중에 한 명인가?

나는 "웬 여름에 산타"? 라며 퉁명스레 말했으나 입고리는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크리스마스이브 모두가 잠든 밤에 산타 가 다녀 간 것처럼 우리 집 울타리 안에 누군가 커다란 화분을 넣어 두었으니 말이다.


이 동네에서 누군가 필요 없어진 것들을 선물이에요 라는 푯말과 함께 집 밖에 내다 놓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마치 “너네가 예쁘게 써줘!” 하는 것처럼 친절히 집 안에 넣어 주고 간 경우는 처음이다.



여름에 찾아온 산타 덕분에 우리는 빵가게로 가기 전 계획에 없는 꽃상가로 달려갔다.

요즘 독일 꽃상가 에는 장미 그리고 제라늄과 베고니아가 한참이다.

원래는 큰 화분에 심을 장미 하나만 사러 간 것이지만 간 김에? 베고니아 몇 개와 아직 이름을 외우지 못했지만 예쁜 여름꽃 몇 개를 더 담았다.

이 어여쁜 여름꽃 은 마치 여자들 꽃무늬 원피스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아직 자리가 남아 있는 허브밭에 심을 레몬그라스 하나 더 넣었다.


그리고 세일 중인 거름 몇 통과 장미 흙을 담았다.

정원 가꾸기를 하다 보니 흙도 그냥 물티플로 아무거나 함께 쓰는 게 아니라 장미는 장미 용 흙으로 채소는 채소용 그것도 채소침대에 심은 허브들은 채소침대용 흙으로 각기 흙들도 용도가 다 따로 있더라는 거다

무슨 일이던 경험이 쌓이면 이렇게 저렇게 하나둘 배워 나가게 되는 거 같아 뿌듯해진다.  


원래도 연휴가 되면 독일 가정들은 꽃 사러 꽃상가로 건축 자재 사러 바우하우스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꽃을 계산하고 있는데 직원 아주머니가 토요일엔 정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사람들이 미어터졌었다고 했다.

날씨 좋은 날 정원에 나가 앉아 흙 파고 꽃 심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만이 아닌 거다.


고르고 골라온 장미는 여름 산타가 가져다준 화분과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어울렸다.

심어 놓으니 그럴 듯 해 졌다.

갓 구운 고소한 빵과 커피를 마시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정원일을 했다.  

덕분에 우리 정원이 더 풍성해졌다.

거의 주말마다 땅 파고 심고 하다 보니 이제 자리만 잘 잡아 놓으면 금방 일을 끝내고는 한다.  


가져온 꽃들을 다 심고 냉커피 타다 얼음 동동 띄어 남편과 정원에 앉아 있었다.

바람은 솔솔 불어오고 우리 집 아름드리나무가 천연 파라솔이 되어 주어 빛을 가려 주고 가끔 나무 위로 날아다니던 새들도 땅으로 내려와 다니니 우리에겐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물론 대로변과 인접해 있어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인사를 나누어야 하고 간혹 자동차 클랙션 소리가 도시임을 알려 주고는 하지만..

어느새 자란 꽃나무 틈바구니에 앉아 새들의 지저김을 듣고 있노라면 산속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정원에 앉아 멍 때리고 있다가 내시야 잡힌 한 여인네가 있었으니...

우리 집 울타리에 쪼그리고 앉아 걸려 있는 자전거 열쇠에 손을 대고 있었다.

아마도 그쪽 에서는 나무에 가린 우리가 앉아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았던것 같다.


우리집 울타리 중에 하나는 언젠가 동네 축제 때 땅바닥으로 떨어져 나갔다.

음악과 알코올에 취한 이들이 남의 집 울타리에 기대고 흔들어 댔기 때문이다. 그 후 고쳤는데 붙인 부분이 또 다시 부러 졌다.


기술자를 불렀는데 아직 오지 않고 있어 임시방편으로 울타리와 울타리 사이를 4개의 자전거 열쇠로 고정을 해 두었다.


그런데 어느 여인네가 옆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그중에 조금 비싼 번호를 맞추어 열어야 하는 열쇠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나는 날듯이 울타리 앞으로 가서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고 계신 그녀의 머리 위에 서서  물었다

"지금 뭐 하세요?"


그러자 그녀는 잠시 당황한 듯했다가 "아니 이 울타리 말이에요 위험해 보여서요!"

"고장이 났으면 고쳐 야지 이거 이렇게 두었다가 길가 쪽으로 넘어가면 길 가던 사람 어떡해요?"

하는 게 아닌가

이거 봐라 딱 봐도 뭔 짓을 하려다 걸린 시추에이션이 아니던가?


나는 가소롭 다는 듯이 웃으며 "좀 전에 손대고 계셨던 거 우리 물건이고요 이 울타리도 우리 거예요

개인 물품에 손대신 거예요 지금"

"고쳐도 우리가 고치고 바로 해도 우리가 해야지 남의 것에 손대시면 안 되죠!"

"그리고 이 울타리 튼튼하게 고정되어 있어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랬더니 문은 좋은데 왜 고치지 않고 그냥 두냐느니 이러다 누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느니

온갖 오지랖을 떨며 걱정하는 척?을 해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자전거 열쇠 훔쳐 가려다 딱 걸려서 아닌 척하려고 애쓰는 것 같더라는 거다.

원래 찔리는 것이 많은 사람이 변명이 길게 마련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열쇠를 풀고는 있었으나 훔쳐 가는 것을 목격한 것은 아니니 나는 어쩌면 그냥 오지랖이 넓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도둑 취급은 하지 않았다.


단지 지난번 우리  울타리가 고장 났을  이미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야기와 

가끔 우리  울타리에 자전거 묶어 두고 시내 갔다 오는 양심 불량들 있는데 다음번에  그러면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힘주어 말해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울타리 고장 났을 때는 CCTV 없어  찾았는데 요즘은 건너편 이웃집에CCTV 있어 만약 누군가 우리 집에서 뭔가를 가져가려고 한다면 분명 찍힐 것이라는 말도 함께  주었다.

거기다 "가령 자전거 열쇠 같은 거 말이죠!"라는 말을 덧붙여서..

그랬더니 그녀는 나는 자전거 열쇠 내 거 있어요 라며 슬금슬금 그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같은 날 커다란 화분을 여름 산타 에게 선물 받았고 정황상 자전거 열쇠 도둑녀로 강력히 의심되는 여인네를 만났다.

날이 좋아 정원일을 열심히 하고 오래 나가 앉아 있다 보니 별일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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