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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y 24. 2023

정원 마법 봉투는 인생을 닮았다

5천 원의 마법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


날씨가 들쑥날쑥하다 어제는 한여름처럼 후덥지근하고 비가 왔다.

이제는 독일도 서서히 여름에 들어서고 있는 듯하다

거기에 맞춰 우리 집 정원도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겨울이 물러나고 언제나 봄의 시작을 맨 먼저 알리는 건 노란 수선화다.

노랗고 하늘 하늘한 수선화가 여기저기서 피어나면 빨간 튤립이 꽃밭 가득 해 진다.

그렇게 우리 집 정원 꽃밭은 한껏 봄을 들여놓는다.


그러다 새들의 생기 발랄한 지저귐을 배경 음악 삼아 초록이 흘러내릴듯한 신록이 우거질 때면 장미의 계절이 찾아온다.

장미가 한아름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5월이 오면 어느새 수선화와 튤립은 자취를 감추고 꽃밭은 초록의 대롱만 남아 마치 파 밭 같은 모양새를 띄고는 한다.

남의 애를 봐주느니 파밭을 맨다는 그 파밭 말이다


이웃집 헬가트 할머니네 정원은 색색의 장미와 붉은 작약이 넘실댄다.

바로 맞은편인 우리 집 정원은 몇 개 안 되는 장미 남의 집에서 몇 송이 빌려 온 듯 여기 하나 저기 하나 피고 천지가 초록 대롱만 남았다



무계획이 계획이여
항상 새롭다


휑해진 정원을 보며 우리는 심을 꽃을 사러 꽃상가로 달려갔다.

이웃집 헬가트 할머니처럼 시기별 구근 들과 꽃나무들을 잘 배치해 두었다면

해마다 같은 꽃들을 순차적으로 만났겠지만….


그렇게 시기적절하게 정원을 돌보는 데는 보통 정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요일별 드라마 챙겨 보는 거는 댈 봐가 아니다

물 주고 시든 꽃잎 정리해 주고 때맞춰

거름 주고 햇빛이 많이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해서 자리에 맞게 심고…


헬가트 할머니처럼 정원을 계획해서

예쁘게 가꾸려면 시간도 정성도 돈도 들여야 한다

확실히 좋은 구근이 꽃도 화려하고 오래간다 물론 비싸다


꽃값도 아까워하고 시간도 정성도 부족한 우리는 주로 세일 품목을 노린다

그중에서 예쁘고 큰 것으로 골라 정원에 심는다

그러니 마치 수명 다한 전구 갈듯 꽃들을 해마다 갈아 끼우듯 해서 정원은 그때마다 다른 모습을 한다

오래전 딸네집 놀러 오신 친정 엄니가 만들어 주고 가신 엄마의 꽃밭만 빼고 말이다


정원 마법 봉투 라니?

이번 세일 품목에는 가을까지 꽃을 볼 수 있는 제라늄과 짧지만 여름내 볼 수 있는 베고니아, 사루비아 꽃들 이였다

골라온 꽃들을 요기조기 세워 두고 어디다 심을까? 자리를 물색했다

옷을 갈아입듯 이렇게 저렇게 놓아 보니 마치 처음부터 자기 자리인양 맞는 곳들이

찾아진다

꽃들도 다 자기 자리가 있는가 보다


때 이른 코스모스를 어디다 심으면 좋을까? 하는데 남편이 언젠가 마트에서 사다 놓은 정원 마법 봉투를 먼저 심자고 했다.


정원 마법 봉투가 무엇인고 하니 글자 그대로 정원에 심어 두면 마법처럼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피어 나는 꽃씨를 담은 봉투다.

그런데 요거이 참 재미나게 생겼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꽃씨가 담긴 봉투가 아니다

생긴 것이 올록볼록하게 무늬가 들어간 두루마리 휴지 같이 보인다.

어떻게? 봉투를 열면 요렇게 생겼다 (아래 사진 )


정원 마법이라고 쓰여 있는 꽃씨 봉투를 열면 두루마리 휴지를 차곡차곡 잘 접어 담은 것 같은 하얗고 긴 종이가 나온다.

그 종이 안에 군데군데 꽃씨들이 들어가 있다

좀더 정확히 설명 하자면…

땅에 심으면 시간대 별로 발화해서 피어날 수많은 꽃들의 꽃씨들이 종이에 부착되어 있다.

봉투 하나에 3유로 99 (한화로 하면 약 5천 원 정도 한다.)5천원의 마법인 셈이다.


마트에서 3유로 99센트에 판매 하는 정원 마법  봉투는 정원 마법 이라는 회사명 이자 상품 명이에요 여러 종류가 있어요 지난번엔 여름꽃 믹스 였고 이번엔 전원 정원 믹스에요
햇빛에 비춰보면 크기고 모양도 다양한 씨앗이 잘 보여요 이렇게 생긴 씨앗 들은 어떤 꽃을 피워 낼까? 무지 궁금 하답니다

휴지 버리는 거 아님 주의

멀리서 보면 마치 땅속에 휴지를 묻어 버리는 거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이름 모를 여러 가지의 씨앗들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예쁘게 고개 내밀 정원 마법이다.

땅을 깊게 파고 그 위에 하얀 종이에 씨앗들이 송송 듬성듬성 붙어 있는 것을

땅 속에 골고루 깔아 두고 그 위를 흙으로 덮는다.


그리고 덮인 흙을 손으로 두덕 두덕 잘 마무리한 후에 그 옆 쪽으로 코스모스랑 여름 흰꽃을 심었다.

여름 흰꽃(이름을 까먹음 ㅎㅎ) 과 코스모스가 지고 나면 저 정원 마법 봉투에 그려져

있는 뭔가가 피어날 것이다.


어떤 어여쁜 꽃이 피어날 까?

작년에 엄마의 꽃밭에 심어두었던 정원 마법 봉투에서 올봄 세 가지의 색감 다른 종모양의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났다.


새로운 씨앗들을 한껏 품은 정원 마법봉투는 문득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갈 때 수많은 만남을 가지게 된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다른 만남이 이어 진다.

그 만남은 기대했던 것이기도 하고 계획되어 있는 것일 때도 있으며 또 어느 때는

우연한 뜻밖의 만남이기도 하다.

조만간 땅 위로 어떤 마법이 일어날른지...

마치 보물 찾기를 하는 아이의 마음이 되어 콩닥콩닥 기대를 하게 된다.

작년에 심은 여름꽃 믹스 정원 마법 봉투 에서 피워낸 꽃 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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