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가 말했다 "엄마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사건은 언제나 별것 아닌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여름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딸내미와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점심을 먹었다
한참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며 그전날 막내가 만들어 놓은 레몬티라미수까지 꺼내서 후식으로 맛나게 먹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단내를 맡고 날아온 커다란 파리가 식탁 위에 앉았다.
빛의 속도로 처리 했다. 그런데 앉아 있으려니 여기서 앵 저기서 앵앵하는 소리들이 계속 들려왔다.
조금 큰 파리들이 날아다닐 때는 소리가 나지 않는가
점심으로 먹은 오삼불이 문제였나 보다
남편의 오삼불은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지들이 오삼불을 아는지 아니면 강렬한 오징어 냄새가 자극이 되었는지 순식간에
까맣고 반짝이는 파리들이 집안을 종횡무진 날아다녔다.
이층 복도 창문을 활짝 열어둔 탓에 온 동네 파리가 날아와 계모임이라도 하려는지 꾸역꾸역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우선 급하게 창문을 모두 닫았다.
그리고 길이가 조절이 되고 가벼운 빨간 파리채를 마치 잘 다듬어진 검처럼 들고 파리 사냥에 나섰다.
무림의 고수들이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하듯 크고 새까만 일명 똥파리를
한 번에 탁 또는 탁탁 두 번에 보내 버렸다.
나의 거침없는 파리채 군무? 에 어느새 앵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파리 소동은 일단락 나는 줄 알았다.
한바탕 파리채를 휘두르고 나니 이젠 정말 지난번에 사다 둔 방충망을 창문에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작업을 하자고 하니 자꾸 내일로 미루려는 게 아닌가 그런 남편에게
"진작 방충망 쳤놨으면 파리 안 들어왔지! 내가 매번 파리 잡는 걸로 운동해야겠어?"라며 눈을 치켜떴다.
독일 가정집들은 방충망이 따로 되어 있지 않는 곳이 많다.
한국의 아파트처럼 창문에 튼튼하게 따로 되어 있는 방충망 새시?를 달려면 비싸기도 하려니와 여름이 길지 않아 그런 시설을 따로 하는 집들은 드물다.
필요하면 주로 건축자재 상가인 Baumarkt 바우막 또는 Bauhaus 바우하우스 가서 창문에 잘라 붙일 수 있는 방충망들을 사다 직접 붙인다.
그런데 그 방충망의 종류도 천차만별이고 크기도 맞아야 해서 아무거나 들고 올 수는 없다.
우리 집 같은 경우도 조금 튼튼한 방충망을 사다 온 집안 창문을 모두 샐프로 하려면 그 재료비 도 만만치 않다.
괜찮은 것은 한 짝에 100유로가 넘어가니 재료비만 수천 유로가 나올 판이다.
게다가 오래된 창문들이 많아 요즘 간단하게 나오는 것들은 맞지도 않는다.
그래서 두루마리 천 뭉텅이 처럼 되어 있는 저렴한 것들을 사다 하나하나 자르고 테이프 붙여서 하다 보니
작업 시간도 만만치 않고 망이 튼튼하지 않아 거의 매년 연례행사로 다시 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과일 바구니에서 복숭아를 하나 꺼내 먹으려던 딸내미는 기함하며 소리쳤다.
"엄마 파리!"
이번엔,노안 온 눈에는 잘 뵈지도 않는 초파리였다.
평소 설거지 나 청소할 때 신나게 틀어 두는 노래 중 하나인 영탁의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영탁 님 팬이에요!)
아 젠장 그냥 잡으면 되는 큰 파리에 비해 초파리는 난위도가 높다
일단 집안에서 한번 생겨 나면 워낙 작아
빠르게 잘 빠져나간다
파리채 도 무용지물이요 번식마저 빠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병원으로 찾아온 한 환자가 너무 고마웠다며 파인애플, 사과 배, 복숭아, 오렌지, 키위, 포도 등등이 담긴 커다란 과일 바구니를 선물했다.
그동안 병원에서 꽃다발부터 손수 뜬 양말, 정원에서 직접 딴 체리, 꿀, 쨈, 케이크 등등 종류 다른 여러 가지 선물을 받아 보았지만 과일 바구니는 처음이다.
보통 초콜릿이나 커피 등을 선물로 받을 때면 직원 들과 나누기도 하고 아예 직원들끼리 간식으로 먹으라고 병원에 두기도 한다
그런데 종류 다양한 과일 바구니는 나누기도 애매하고 특히나 환자가 남편에게 너무 고마웠다며 카드까지 꽂아서 선물하는 덕분에 집으로 들고 왔다.
과일 바구니 모양이 너무 예뻐서 과일을 냉장고에 넣지 않고 거실에 두었던 것이 문제였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라는 노래 에서 등장 하는 영탁님의 뒷목잡는 댄스가 저절로
따라 나왔다
아띠~~~
그런데 이 초파리 들은 어디서 온 걸까?
아.. 생각났다 남편이 요즘 정원에 거름으로 쓴다고 주방에 커피 가루들도 말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채에 받여 두는 날이 종종 있었다.
그때 생긴 게 틀림없다
급기야 파리를 종류 별로 만난 딸내미는
“파리 천국이고만 잘 치워야지, 우리 기숙사 에도 음식물 쓰레기 제때 안 치워서 방에 파리 생긴 애들 있어!"라고 했다.
딸내미의 야물딱 스런 핀잔에 남편은 껄껄 웃으며 "네 엄마 처녀 적 때부터 내가 알아봤지!"
라며 전혀 관련 없는? 옛날옛적 이야기를 꺼냈다
"글쎄, 아빠가 엄마 방에 놀러 갔다가 찬장에서 빨래가 나오는 바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아빠 그날 빨래에 깔려 죽을 뻔했다!"
우쒸 머라니? 드라마 라도 보고 있는 듯 부녀는 함께 깔깔거리고 웃었고
딸내미 붙들고 엄마 흉을 잔뜩 보며 좋다고 웃고 있는 남편은 예전에 동네마다 있던 바보 형아 같아 보였다.
우리는 연애 때 각자 독일의 학생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예고도 없이 내가 살고 있던 기숙사를 찾아왔고 당황한 나는 침대랑 방 여기저기 에 널브러져 있던 옷 들을 급하게 여기저기 쑤셔 넣었더랬다.
남편을 방밖에 잠시 세워 두고 말이다.
그러다 뭐가 필요했더라? 아!,그래 차를 한잔 마시기로 하고 내가 물을 끓이는 동안 남편에게 찬장에서 컵을 꺼내라고 했는데...
그때까지 내가 살던 기숙사의 구조를 잘 모르던 남편이 컵 들어 있던 찬장이 아니라 그 옆에 옷장을 여는 바람에 숨겨둔 옷들이 남편에게 우수수 떨어지고 말았다.
작은 기숙사 방에 달린 붙박이 장이라 일부는 찬장으로 쓰고 일부는 옷장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남편에게 빨래도 제때 안 하고 꽁꽁 숨겨 두는 지저분녀로 등극했다.
그래도 좋다고 쫓아다닐 때는 언제고 남편은 뻑하면 그날 감춰둔 옷 우수수 떨어질 때를 꺼내 들고는 한다. 얄밉게 시리...
파리와 그날 일이 뭔 상관이란 말인가
게다가 파리가 나 때문에 생겨났나?
엄격히 이야기하자면 빨리빨리 버려야 할 음식물 쓰레기를 정원용 친환경 거름으로 쓴다고 체에 걸러 말린 사람이 잘못 아닌가
어이없어하고 있는데 딸내미는 "걱정 마 엄마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청소해 주는 분 모셔 올게!"
엄마 힘들까 봐 걱정해 주는 다 큰 딸내미가 대견하고 고맙기는 했다만 졸지에 청소 안 해서 방에 파리 생겼다는 기숙사 지지한 친구가 된듯한 이얄딱구리한 감정은 뭔가 말이다.
그날 나는 남편이 너무 얄미워 그전에 크게 활약했던 빨간 파리채로 소파 위에서 입 헤벌리고 있는
그 툭 튀어나온 주둥이를 풀수윙으로 갈겨 버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눌러 참아야 했다.
좌우지당간 한번 생겨 버린 초파리로 인해 우리는 파리와 의 전쟁을 선포했다.
며칠 동안 초파리 잡느라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독일 마트에 가면 꼭 예전 중국집에 가면 달려 있던 기다란 파리 끈끈이 같이 생긴 것을 살 수가 있다
그것도 사다가 달고 인터넷 검색으로 식초와 세제로 만든 초파리 함정도 만들어 두었다.
그런데 요 초파리들이 어찌나 머리가 좋은지 그 주변만 맴돌더니 식초로 들어가지를 않는 거다
결국 그다지 효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다 저녁에 맥주 한잔을 마시는데 어디서 잽싸게 초파리가 날아들었다. 나는 옳다구나 이거다 하며 빙고를 외쳤다.
물론 내가 최애 하는 맥주라 아깝기는 했지만 과일 맥주는 파리에게 양보하는 걸로~ㅎㅎ
그렇게 만든 초파리 특급 덫으로 파리와의 전쟁을 끝내고 다시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초파리 특급 장치
과일맛과 향이 첨가된 달달한 맥주 한잔(*과일 향이 달달하게 나는 음료 면 뭐든 가능합니다)
이쑤시개
비닐랩
컵 하나
집에 사용하지 않는 유리컵에 달달한 과일 향이 나는 맥주 또는 음료수를 한잔을 담고
비닐 랩으로 컵 전체를 물 샐 틈 없이 꽁꽁 감싼다.
그리고 컵 윗부분에 이쑤시개로 작은 구멍을 낸다
이때 너무 큰 구멍은 금물! 달콤한 유혹에 걸려든 초파리들이 정신 차리고 빠져나가는 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시간을 두면 차곡차곡 모여든 것을 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