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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Dec 22. 2023

엉뚱한 남편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나무?


이젠 정말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올해는 크리스마스를 향한 모든 준비가 늦어져 버리고 말았다.

특히나 크리스마스 준비는 언제나 나무부터 사다 놓고 시작했었는데...

올해는 미루고 미루다 막판? 에 크리스마스 나무를 부랴부랴 사러 갔다.


독일에서는 잘라 놓은 전나무를 가져다 집안에 세워 두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집들이 많다.

그 때문에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동네 주차장 넓은 마트 근처에는 크리스마스 나무 파는 곳들이 일찌감치 문을 열고는 한다


우리가 갔던 곳도 EDEKA 라는 마트 옆에 크리스마스 나무 파는 곳이었다.

우리처럼 느지막이 크리스마스 나무 사러 온 아주머니 한분과 아자씨 한분이 각각 나무를 고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적당한 크기의 보기에도 예쁜 나무들은 이미 다 팔리고..

당연히 아주 크거나 작거나 한 나무들이 남기 마련이다.

뭐 하느라 이제 왔을까? 구시렁 대며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남아 있는 것들 중에 괜찮은 나무를 다른 이들에게 뺏길세라 매의 눈이 되어 서는 말이다



괜찮아 보이는 것들은 이미 누가 사서 포장해  것들 뿐이고 남아 있는 것들은 천장을 뚫어 버릴  크거나 너무 미니 미니 하게 작거나 또는 적당한 크기여도 삐죽하게 키만 크고 풍성한 가지가 없어 크리스마스 데코를 올려놓아도 예쁘기 어렵게 생긴 것들뿐이었다.


우리 집은 독일의 옛날집 치고 천장이 낮아 저렇게 큰 나무는 드려 놓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다른 해에 비해 너무 작은 나무를 드려 놓자니 가뜩이나 딸내미가 없는 크리스마스라 쓸쓸한데 왠지 더 휑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이래 저래 고민하며 눈으로 나무를 고르고 있는데..

적당한 크기에 나뭇가지와 잎도 풍성한 것이 딱 하나 눈에 들어왔다.


내가 반가운 목소리로 "어? 요거 괜찮은 것 같은데요?"라고 했더니 나무 파는 아자씨가

"그건 화분에 심어져 있는 거예요!"라고 했다.

나는 "에이 어쩐지…그럼.." 됐어요라고 말하려는데 남편이 잽싸게 "이걸로 할게요!"라며 나무값을 치러 버리는 게 아닌가


나무 파는 아재는 벙쩌서는 떨떠름해 있는 내 눈치를 보며 "진짜 이거 하시게요?"라고 재차 물었다.

이미 남편이 돈도 내버렸고 너무 확신해 마지않아 두 눈을 반짝이는 남편의 모습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럼에도 내 살다 살다 흙이 가득 담긴 화분에 심겨 있는 전나무를 크리스마스 나무로 사 보기는 처음이다.

크리스마스 나무 고정 하는 스텐더

일반적으로 크리스마스 나무로 사용되는 전나무는 이렇게(위에 사진) 나무 둥치가 잘려서 편편하게 되어 있다

그 나무 둥치를 스탠더 (나무 밑에 사진)라고 불리는 것으로 고정시켜서 거실에 세워 두고 크리스마스 연휴가 되기 전에 데커레이션 을 한다

색색의 방울들을 달고 꼬마전구를 켜서 반짝이게 만들고 말이다.


이렇게 화분에 심겨 있는 전나무 들은 보통 가정집 문 앞이나 정원에 세워 두고 밖으로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을 한다.

집안이 온실도 아니고 흙 질질 흘려 가며 화분째 가져다 놓는 집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아마 나무 파는 아재도 집안 용으로는 처음 팔아 봤을게다.

그래도 친절하게 포장해 줄까냐고 묻던 나무 파는 아재는 쩔쩔매며 포장을 해 주었다.

당연하지! 보통 나무 둥치만 달려 있는 나무들은 저 은색 통에 넣었다 빼면 자동차에 싣고 운반하기 쉽게 나뭇가지들이 날씬하고 가지런히 망사 그물로 잘 포장되어 나온다.


그런데 뿌리째 흙 가득 들어 있는 화분을 들고 저 통에 넣고 꺼냈다 뺐다 포장을 하려니 무게도 만만치 않고 중간에 흙이 줄줄 세니 이만저만 난감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호기심 많고 엉뚱하신 남편은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냥 두 눈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이번에 우린 특별한 크리스마스 나무를 산 거야! 늘 크리스마스 와 연말까지만 쓰고 버리는 게 아까웠잖아 게다가 내다 버리는 것도 얼마나 일이야!(독일은 새해가 되면 동네마다 크리스마스 나무 버리는 날이 정해져 있다) 이렇게 화분에 심겨 있으니 쓰고 정원에 내놓으면 되고 잘 키워서

내년에도 쓰고 그 후년에도 쓰면 야 이거 일석 삼조네!"

나는 조용히 눈으로 쌍욕을 날렸다 염.병.허.네..


집으로 오는 길 이미 자동차 트렁크는 흙으로 가득했고 화분을 옮기느라 손도 입은 잠바와 바지도 흙투성이가 되었다.

비 오는 날 밤 야산에 누구 하나 묻어 버리고 왔다 해도 이상치 않을 형상을 해서는 거실 가운데 자빠져 있는 화분에 심긴 흙덩이 나무를 보며 아무리 생각해도 겁나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이게 비 오는 날 왠 미췬짓이란 말인가?


흙바닥이 된 거실로 들어서던  막내는 오마이갓뜨를 외쳤고 그런 막내에게 나는 거실 가운데 자빠져 계신 나무를 가리키며 "아들 이게 이번 크리스마스 나무다 아빠가 잘 키워서 내년에도 또 쓴데 "

라고 했다.

나무를 쳐다보던 막내는 시크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년? 쟤 곧 죽게 생겼는데!"


그렇다 남편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나무는 뿌리가 화분과 분리 되기 직전 있었다.

그 모습에 놀란 남편은 헐레벌떡 건축자재 상가에서 흙을 사 오고 정원에서 커다란 화분을 가져다가  

일명 분갈이를 하고 다시 꼼꼼히 심었다.


주적주적 비 오는 날 다른 때였다면 가지 않았을 건축자재 상가까지 다녀오고 보통 같으면 하지 않아도 되었을 방바닥에 널브러진 흙을 닦아내며 빡침 게이지가 올라가고 있는 내게

남편은 또 한 번 신이 나서 말했다

"이거 봐 이렇게 심어 놓으니 그럴듯하잖아 내년엔 커 있을 거고 그 후년엔 더 커 있을 거야

 한번 사서 계속 쓰는 크리스마스 나무 끝내주지 않냐?"


밖에 나둬야 할 흙 들어간 화분을 거실에 두고도 빙구 같이 웃고 있던 남편에게 나는 어이상실의 썩소를 날리며 말했다.

"그렇것지..이 나무 내년에 후년에 더 커지면 화분을 더 큰 걸로 바꿔 주거나 땅에 지대로 심어야 것지..

큰 화분 이면 무거워서 못 들 거고 땅에 심으면 다시 파야겄지"

내 말에 아이 같이 들떠 말하던 남편의 눈은 점차 커지고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내가 날린 마지막 한마디에 우리는 빵 터지고 말았다.

"그려서.. 해마다.. 크리스마스 나무를 심었다 팠다 할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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