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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27. 2023

작가님네, 꽃들이랑 텃밭 야채들은 잘 견뎌냈나요?

 라고 애독자님이 물으셨다.


나뭇잎으로 카펫을 깔았다.

폭풍우 몰아 치던 목요일을 지나 물이 빠져나가고 난 자리는 초록의 나뭇잎들이 길바닥에 마치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크고 작은 나뭇가지들과 누군가 꺾어 놓은 듯 한 굵은 나무 둥치들이 길목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지 않았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할지 모른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 멀쩡히 도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을 만났다.


날씨는 다시 말끔해졌지만 나는 요즘 출근 전이면 늘 해오던 정원에 나가는 걸 하지 않았다.

밤새 꽃들은 얼마나 많이 피었나? 또 빨갛게 익은 딸기는 몇 개나 늘었을까? 노란 호박꽃은 활짝 피었으려나? 새침하게 생긴 노란 토마토 꽃들은 몇 개나 더 늘었나? 라며 정원과 나누던 아침 인사말이다.


차마 정원에 나가 눈으로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자세히 보이지 않아도 소리 만으로도 충분히 상상이 갈 때가 있다.

그날 때려 붇듯 쏟아지던 우박과 비 그리고 바람 소리는 정원이 나마 나지 않겠구나

하는 것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때로는 현실을 마주하기가 두려울 때가 있지 않던가..

그날 아침이 내게 그랬다...

거꾸로 된 비포 & 애프터


퇴근해서 마주한 정원은 그야말로 쑥대밭이었다

집 앞 아름드리나무들은 나뭇잎이 뭉터기로 떨어져 마치 대머리가 된 듯

헐빈해졌다

그 나뭇잎들이 집 안팎 바닥에 나뒹굴며 마른 나물이 되어가고 있었고 정원 구석구석 에도 곳곳에 잘라진 나뭇가지들로 빼곡했다.  


정성 들여 가꾸던 화단은 자취를 감췄다. 분명 그전날 아침까지 색색의 빛깔로 피어 있던 장미와 제라늄 그리고 소녀 소녀한 원피스에 그려진 꽃들을 닮았던 여름꽃 들과 하얗고 빨갛던 베고니아 그 어여쁘던 모습들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마치 한여름밤의 꿈을 꾸었던 것처럼 말이다.

before & after
before & after
before &
 after
before &
after

또 아침 이면 생생히 피어 나 감상하는 재미를 준 노란 호박꽃도 한알 두 알 아껴 가며 따 먹던 빨간

딸기도 매일 파릇파릇 돋아 나던 상추 들과 허브들도 이젠 없다.

원래는 비포 보다 에프터가 월등히 달라져야 하는데…

거꾸로 비포 와는 정말 달라진 에프터의 모습을 만난다


순간  개월 동안 주말 이면 꽃상가로 달려가고 매일 정원에 나가 앉아  주고 마른  따주고 이쪽에 마법봉투 심고 저쪽에 꽃들 심고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허무하다  단어는 아마 이런 상황에 쓰라고 만들어진 단어일 다.

아쉬움에 휴우 하며 한숨을 크게 쉬고는 이제 어떻게 하지? 하는 막막한 마음으로 정원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었다.

언젠가 때아닌 우박 또는 폭우로 농가의 피해가 어쩌고 하는 뉴스를 보았을 때 아이고 저런.. 어쩌나.. 했지만

솔직히 이렇게 까지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연재해로 손바닥만 한 정원 화단과 텃밭이 이모양이 되고 나니 절절히 도 짐작이 간다.

이 작고 흉내만 냈던 텃밭과 화단이 이렇게 망가진 것으로도 이리 한숨이 나오는데

농사를 망친 농부님네들 속은 어떠셨을까? 하고 말이다

before & after
before & after
한알의 작은 기적

그렇게 정원 한가운데 망연자실 서 있는데 우리 집 똥꼬 발랄 멍뭉이 나리가 정원 안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모습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고 눈으로 나리를 좇다 문득 무언가  안에 가득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파란 토마토 한알이었다.

세상에나! 우박에 비바람에 커다란 나무도 쓰러지고 나뭇가지도 뚝뚝 꺾여 나갔건만

대가 꺾여 뒤로 뒤집어진 체 꽃잎 날아가 버린 제라늄 줄기와 뒤엉켜 있던 토마토 줄기에 작고 조그만 한알의 초록 토마토가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줄기와 같은 초록 색 이어서 메말라 버린 가지 사이에 달려 있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엄지손가락 만한 크기의 열매는 어제 생겨 났을 리 없다.

그렇다면 저 한알의 토마토는 분명 그 우박과 폭풍우를 견디고 살아남았던 거다.

오며 가며 이웃들이 남기던 "아유   토마토 진짜  자라네요!"라는 인사말을 들으며 그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쭉쭉  자라 올라가던 초록의 싱그럽던 줄기도 꺾이고 잎도 말라 마치 마른 우거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던 토마토에 아직 달려 있는 열매를 보니 어쩌면 토마토를 살려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이 뽀글뽀글 올라왔다.


작은 정원 가위를 가지고 완전히 말라 버린 가지들을 자르고 줄기를 곧바로 세워 정원용 고리로 세워둔 대나무 막대에 잘 연결해서 일으켜 두었다.

하나하나 잎을 떼고 줄기를 잘라 내고 세우고 마치  머리를 숏커트 하듯 정리 정돈을 했다

어쩌면 그 안에서 다시 생겨날지 모를 토마토 한알이 품은 작은 기적을 기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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