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에스프레소 를 닮은 그녀.
독일에서 서양 회화를 전공한 나는 한동안 독일 중부 헤센 주 소속의
미술관협회라는 곳에서 직원으로 일을 했었다.
직원 정장을 입고 명찰 달고 눈썹이 휘날리게 정시에 출근해서는 일 나왔다는 표시로
기계에 카드 넣고 삑~ 동료들과 열심히 일하다 땡~ 하고 시간 되면 이제 집에 들어간다고
또 카드에 삑~찍고 퇴근하는 독일의 흔하디 흔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회사원 생활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안에서 어디서고 쉽게 만나 지지 않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 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지금 내가
꽃 피고 새 울어야 하는 4월에 내리는 눈을 뚫고? 헐레벌떡 만나러 가는 친구 아라 (그녀의 앳칭) 다.
예전 미술관협회에서 일하고 있던 그때 동료들 사이에서 아라는
우리로 하자면 "잘 났어 정말~"정도의 별명으로 불려지고 있었다.
왜냐 하면 그녀 는 워낙 똑 소리 나는 일처리에 영어, 불어 등 외국어에도 능통했고
누가 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거기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입바른 돌직구를 날리는 조금은? 까칠한 스타일에다가
탁월한 능력으로 윗사람들 에게 일찌감치 인정을 받아 구조 조정의 칼바람 속에서도
가장 먼저 열외였으며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도 동료 들과 함께 식사 하거나 커피 한잔 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능력은 있지만 나 홀로 좋사오니...스타일 이였기 때문이다.
독일은 한국처럼 회식문화 등으로 원치 않아도 자리보전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밥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동네 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동료들 간의 유대관계는 여기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비타민 B라고 속칭하기도 한다.
특히나 부서 특성상 여성들이 많은 곳일 경우 좀 튄다 싶으면 뒷담화 의 주인공이
되기 십상 이다.
그렇게 홀로 독야청청, 승승장구하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미술관협회를
그만두고 새로운 뭔가를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은
우리 모두 에게 저렇게 4월 하늘에 눈이 쏟아져 내리고 그 펄펄 날리는 눈 속에
버스 정류장 한편에 말없이 우두커니 서서 무척이나 추워 보이는 때 이른 여름 신상 광고 판
언냐의 헐벗은 모습만큼이나 뜬금없고 뜨악한 소식이었다.
우선 아라의 스토리를 다 풀어내기 전에 어떻게 까탈스러운... 별명이 "잘났어 정말~" 이였던
그녀와 털털하다 못해 존재감 미약하던 내가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겠다.
어느 날
큰 기획 전시회를 잘 마무리하고 직원 들끼리 자축하기 위해 포트럭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각자 무엇을 가지고 올 것 인지에 대해 써넣는 리스트를 보면서 어떤 맛난 음식을
준비할 까나? 고민하다가 같은 종류의 고민을 하고 있나 보다 싶던 아라와 나란히 서서
자연 스레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참 동안
음식에 관해 서로 의견을 나누다 나는 왜 아라 가 그동안 동료 들과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을 내켜하지 않았는지
그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양파, 버터 등등 여러 가지 음식에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왜 생겼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음식 성분에 관한 알레르기 증상 때문에 병원도 많이 찾아 다니고 좋다는
여러 가지 자연 민방 요법 들도 병행 해 보았으나 결국 그녀의 알레르기증상은
스스로 음식 조심하는 식이 요법이 답일 수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남들과 함께 하는 식탁에 둘러앉아 이거 먹으면 안 돼~ 저것도 먹으면 안 돼~ 하며 골라내야 하는
자기의 상황이 썩 유쾌하지 않았으며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굳이 원하지 않았던 거다.
안 겪어 본 사람이야 그 스트레스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히스타민 등등 음식 성분에 다양한 알레르기 가 있는 나는 동병상련
그러나 가려야 하는 식품군의 종류와 가짓수로 보자면 그녀는
내게 댈 봐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새발의 피..
때로는 나의 약함과 어려움이 다른 누군가 에게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깊게 와 닿았다.
그렇게
그 후로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고 의외로 통하는 구석도 많아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늘 서로를 응원하고, 언제 만나도 좋은 절친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겠다는 소식은
정말 이지 놀랄 일이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그 일에 딱 들어맞는 그 일이 천직인 것 같은 사람 미술관 협회에서 아라 가 그랬다.
그랬던 그녀가 새롭게 찾았다는 무언가는
멋지구리 한 다른 직장이 아니라
가바 하나 달랑 매고 다시 대학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 나이? 에 학생 들을 가르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다시 새로운 것을 공부하러....
어느 날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정년퇴직할 때 다 되어서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다시 대학을 다니겠다는 그녀의 기행? 에 모두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걱정하던 우리에게 아라는 너무나 행복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내 인생에서 지금처럼 가슴이 세차게 뛰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것으로
꼭 지금 이여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아?"
그런 아라가 59세 생일을 맞았다 59세의 대학생 멋진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며
나는 그녀의 인생이 앞으로도 더없이 반짝 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