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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07. 2024

독일 직원이 환호하며 눈물 흘린 이유


핑크색 겹벗꽃이 흐트러지게 피어나던 어느 봄날이었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마저 분홍빛으로 물들일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휴가 간 직원을 대신해서 오후 근무가 있는 날이었다. 덕분에 오전을 통째로 쓸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거기다가 4월 월급이 통장에 꽂힌 날이기도하다.

여러모로 마음이 넉넉해 진체 아침 일찍 동네 작은 쇼핑센터로 향했다.


월급이 들어오면 며칠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월급날은 무언가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한다.

종이 가득 적힌 사야 할 것들 목록을 확인하고 어디부터 들를까? 생각했다.

동네 작은 쇼핑센터 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빵가게, 우체국, 마트, 약국, 드럭스토어, 옷가게 등등..

휴가도 월차도 아닌데 평소 같으면 일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쇼핑을 가려니 입가에 저절로 웃음기가 머물렀다.

로션, 샴푸, 선크림 등을 사야 하니 우선 쇼핑센터 2층에 디럭스토어부터 가기로 한다.


운동도 될 겸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려니 내가 내는 헉헉 거리는 숨소리에 내가 놀란다.

요즘? 들어 살이 쪄도 너무 쪘다는 사실이 새삼 인식된다.

핑계를 대자면 팬데믹을 지나며 급 찌기도 했고 시기가 묘하게도 갱년기와 맞물려서 시너지 효과를 낸 데다가 갱년기 증상 때문에 호르몬제를 복용 중이라 체중이 은행 대출이자 불듯 물가 오르듯 날이면 날마다

쭉쭉 올라가고 있다.

단지 운동을 시작한 지 몇 개월째라 몸이 체지방을 밀어내고 근육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굳게 믿고 싶을 뿐이다.


남들이 보면 어디서 마라톤이라도 뛰다 왔나 싶게 헐떡 거리며 쇼핑센터 2층에 올라갔다.

디럭스토어를 가려면 패밀리라는 옷가게를지나쳐 가야 하는데 빨간색으로 붙여둔 세일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패밀리는 이름 그대로 아이들 옷, 장난감, 양말, 속옷부터 엄마 아빠, 옷, 속옷, 양말, 가방, 액세서리, 신발 등등 다양하게 온 가족이 한 번에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독일 전국에 체인점이 있는 패밀리의 옷은 스타일리시하지는 않으나 편안한 것이 특징이다.

거기다가 아이 것이나 어른 것이나 가격대비 사용된 면의 재질이 제법 좋다.


때문에 주로 우리 집 남자들 티셔츠나 속옷 또는 양말 살 때 들리고는 하는 곳이다.

그런데 때마침 샬랄라 한 봄 원피스를 세일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맘이 흔들렸다 악마가 내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래, 오늘 한번 너를 위해 질러봐! 니 월급 탔잖아! “

살이 찌고 나서 옷을 사러 간 게 언제였던가싶다.

어쩌다 시내를 오가며 쇼윈도에 걸려있는 예쁜 옷들을 보며 "저거 비슷한 거 옷장에 있잖아 열심히 운동해서 예전으로 돌아가면 옷이 쌨어 살을 빼는 게 돈을 버는겨~!“라며 눈을 꾹 감고는 했다.


그런 간절한 마음에도 비협조적인 몸띵이는 돌아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으니 점점 옷장 안에 걸려 대기중인 옷들이 늘어 가고 있다.

세일 들어간 화사한 봄 원피스 들을 본 순간어쩔 수 없다 나중에 살 빠지면 입을 옷 천지가 되더라도 지금 당장 원피스 하나는 사야겠다 싶었다.

나는 매의 눈이 되어 걸려있는 색깔별 사이즈별 원피스들을 탐색하며 이거 저것 들었다 놨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원피스는 디자인이 몸에 타이트하게 붙는 핏이라 조금? 크게 입어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옷은 여유롭게 걸치듯 입을 수 있어한 치수 작게 입어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도 있다.

이미 커질 때로 커진 몸에 들어갈 사이즈가 몇 개 없지만 다행히 독일 옷들은 한국옷 사이즈에 비해 넉넉하게 나오는 편이라 아직은 입을 수 있는 사이즈들이 남아 있다.


머리를 갸우뚱 거리며 고민하다가 가게 안 직원으로 보이는 이에게

"밖에 걸려 있는 원피스 입어 봐도 되지요? 한 번에 몇 개 까지 입어 볼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독일의 어떤 옷가게 들은 한 번에 옷을 몇 벌까지 입어 볼 수 있다고 제한된 곳들도 있고 몇 벌을 탈의실 안에 들고 가는지 번호표를 나눠 주는 곳도 있다.

가끔 모르고 몇 벌 더 들고 갔다 성질을 내는 직원을 만나기도 한다.


원래 독일어 말투가 사근사근한 것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거니와 불친절한 직원 덕분에 때로 내돈내산인데 협찬받은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 상대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안다. 병원 일도 나름 서비스 직이라 잘 안다.

하루 종일 무한반복 옷정리를 해야 하는 직원 입장에서는 손님이 한 번에 많은 옷을 입어 본다고 흩트려 놓고 가버리면 다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짜증이 나기도 하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맘 좋아 보이는 직원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저희 가게는 그런 제한 없어요.

원하시는 것 시간 되시는 만큼 실컷 입어 보세요!" 하는 게 아닌가

분명 지난번 직원과는 많이 달랐다. 역시 사람은 체구가 좀 있어 줘야 맘도 넓지 해가며 개인적은 감정을 가득 담아 "고마워요"를 날리며 양팔 가득 옷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이 옷 저 옷 입어 보다 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것도 있고 상상과는 다른 사이즈들도 있어서 사이즈를 바꿔 오기 위해 탈의실과 매장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옷을 다시 가져다 둔다고 매장 안을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또 다른 옷들이 눈에 들어오고 어? 저거 아까 못 봤는데.. 하는 옷들이 보이고 급기야 세 개 사면 두 개 값만 내면 되는 세일 상품들이 자꾸만 눈에 띄었다


원피스 하나 사러 왔다가 어느새, 원피스, 바지, 티셔츠, 양말, 빤쥬 골고루 골라 놓고 보니 뉘 집 옷장을 털어 온 듯 옷이 한가득이 되어버렸다.

아침이라 다른 사람도 없는 넓은 탈의실 안에서 이걸 골라? 저걸 골라? 하면서 연신 옷들을 늘어놓고 고민을 했다.

그런데 이것 빼자니 저게 아쉽고 저걸 빼자니 요게 아쉬웠다.

내가 고른 대부분의 옷들이 2 플러서 1이라 하나만 따로 고르자니 왠지 손해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요런 게 다 장삿속인데 말이다.

눈 찔끔 감고.. 이거 아끼면 딸내미 용돈 더 보내 줄 수 있는데.. 저거 아끼면 막내 뭐 사줄 수 있는데..

하는 건 일단 넣어 두고 오늘은 나만을 위해서 과감해 지기로 했다

얼마 있으면 내 생일이니 생일 선물 미리 주는 셈 치자고 하며 말이다.


그렇게 옷들을 바리바리 들고 계산대에 사뿐히? 내려놓았다.

환한 미소가 아주 어여쁜 직원이 다 골랐냐며 한참 많은 옷더미를 쳐다보더니 패밀리 적립 카드가 있느냐 물었다.

나는 아직 없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언젠가 다른 직원도 이 적립카드가 있느냐?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 적립 카드가 인터넷에서 앱을 다운로드하여서 뭣을 어떻게 하라고 했는데 내게는 어렵고 복잡스러웠다.


나는 직원에게 "적립 카드가 있으면 좋은 게 뭐가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친절한 직원은 "일정 점수가 적립되면 세일하는

품목뿐만 아니라 일반 상품도 세일되는 퍼센트 쿠폰을 받으실 수 있어요!"라고 했다.


순간 '어차피 자주 오는 곳도 아니고 적립할 만큼 살 일도 없을 텐데 만들어야 하나?' 싶었다.

그때 직원이 혹시라도 누가 들을 새라 작게 속삭였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요 손님께만 알려 드릴게요 이번주 토요일에 재킷 들만 모아서 반짝 세일을 해요

이건 저도 조금 전에 직원 메일로 받았답니다. 이 적립카드가 있는 분들만 50퍼센트 세일 쿠폰을 받으실 수 있어요!"

반값 할인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지만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지난번에 다른 직원분이 적립 카드 이야기 하셔서 인터넷으로 해 보려고 했는데 저는 잘 안되더라고요"라고 했다.


그러자 직원은 다정한 말투로

"손님 그럼 제가 도와 드릴까요?"라는 게 아닌가

그 친절함에 너무 고맙기는 했지만 내 것 하겠다고 일하는 직원을 계속 붙들고 있기가 미안하지 않은가..

"아유 아니에요 바쁘실 텐데.." 했다.

그랬더니 직원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행히 지금 바쁘지 않아서 금방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라며 하나하나 일일이 대신해 주었다.


그렇게 적립 카드를 받아 든 나는 마치 상장받은 아이처럼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독일에서 이렇게 까지 친절하고 상냥하게 손님을 응대하는 직원을 만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핑크빛 블라우스를 입고 갈색의 긴 머리를 내려뜨리고 귀여운 웃음을 짓고 있는 직원은 우리로 하면 부잣집 맏며느리 상이다 할 만큼 복스럽게 생겼다.

도와줘서 하는 칭찬이 아니라 사람이 참 좋아 보였다.

직원은 계산을 하기 위해 하나하나 따로 바코드를 찍으며 크고 작은 개수가 합쳐져 한참인데도 짜증 스런 표정 하나 없이 즐거이 일을 했다


직원이 마지막 바코드를 스캔하고 나서 적립카드를 꽂았을 때였다. 갑자기 계산대가 요란하게 흔들리고 푸르륵 푸르륵 소리를 내며 긴 계산서를 뱉어냈다

그와 동시에 직원의 입에서는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이 쏟아졌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무슨 일이에요?"라고 물었고 직원은 계산대 위에 올린 손을 바르르 떨며 "어머나 손님 이게 뭔 일이래요?" 라며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그때 까지도 사태 파악이 안 된 나는 직원의 다음말에 기함하고 말았다.

직원은 아직도 조금 올라간 목소리 톤으로 "손님 축하드려요 오늘 100번째 손님이시라 모두 공짜세요!

저도 말로만 들었지 이런 경우는 처음 봐요!"

라고 했다.


그녀가 길게 뽑힌 영수증을 내게 내밀며 흥분된 목소리로 박수까지 치며 알려준 바에 의하면 이 전국구 인 체인점 옷가게는 가끔 깜짝 이벤트를 하는데 언제 어느 때 하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했다.

그날 내가 받은 이벤트는 전국적으로 집계된 100번째 손님에게 주는 깜짝 이벤트였다.

더 정확히 말해 100번째 적립카드를 사용한 사람에게 주는 모든 게 공짜 이벤트였던 거다.


놀라고 흥분된 표정의 직원은 입고 있던 핑크색 블라우스처럼 핑크빛 볼이 되어 서는

"아 정말 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요.

여기 보이시죠 계산된 모든 항목에 0이 찍혔잖아요 정말 축하드려요!"

라며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체 기뻐해 주었다.


나는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싶기도 하고 선물 받는 액수가 커서 너무 놀랍기도 했다

제대로 계산했다면 300유로가 넘었다 한화로 50만 원 가까이다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처음 만난 사람이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는 모습을 보니 그만 울컥 해 졌다.

"아 말도 안 돼요~~ 저는요~~ 장난감 뽑기 조차 한 번도 된 적 없던 사람이에요~~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염소 한 마리를 데려 온 듯 녹음해 놓은 것을 틀은 듯 내가 말하고 있는 데도 마치 딴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내 목소리가 낯설게 들려왔다.


그렇게 직원과 함께 방방 뛰며 감동의 도가니 탕을 끓였다

남들이 보면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매달 땄나? 싶게 서로 마주 보고 눈물 콧물 다 빼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믿을 수 없는 행운에 기뻐하며 한 손으로는 들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옷가방을 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 섰다.

이미 드럭스토어 우리로하면 올리브영 같은 로즈만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꽤나 무건운 옷봉투를 들고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때 까지도 놀란 가슴이 진정 되지 않아 얼떨떨 했다.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쇼핑센터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도 이게 무슨 일인가? 꿈인가? 생신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이래서 복권이 되는 사람이 있구나 하며 공짜로 받은 커다란 봉투 안에 곱게 접혀 있는옷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만약 아까 저 바지를 입어 본다고 다시 탈의실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100번째 손님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 그 다정한 직원이 적립카드를 만들어 준다고 도와주지 않았다면 100번째 손님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다 보니 함께 기뻐해 준 직원에게 뭐 라도 작은 선물을 해야지 그냥 이대로 집으로 갈 수는 없겠다 싶었다.


튼실한 옷봉투를 끙끙 거리며 들고 아래층 마트에서 꽃 한 다발과 작은 초콜릿 상자를 사서 들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커다란 옷봉투에 꽃다발까지 들고 올라갔지만 기분 탓인지 아까처럼 계단을 오르는 게 마냥 힘들지는 않았다.

내가 다시 그 옷가게로 들어 서자 누구와 통화를 하던 직원은 "내가 좀 전에 말한 손님이 다시 왔어 조금 있다 다시 전화하자"라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서 다른 지점에 있는 직원인데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그 사람도 이런 이벤트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 하면서 놀라 더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꽃다발과 초콜릿 상자를 조용히 내밀며 "오늘 내게 일어난 행운은 당신이 선한 마음으로 나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일어난 기적인 것 같아요 그러니 내 행운의 작은 부분을 나눠 드리고 싶어요

고마워요!" 라고 했다.

그녀는 "아 어떻게 나 또 눈물 나요!" 라며 눈물을 흘렸고 나는 두 눈이 접히게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는 이 놀라운 이야기를 아껴 두었다가 내 생일이라고 모인 식구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표정으로 입을 모아 말했다 "엄마 대~박 럭키!"

순간 그럴줄 알았으면 조금 더 담을걸 그랬나?하는 간사함이 모락 모락 올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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