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의 여름과 빵 터진 이야기 하나
지난주 주말 아침이었다. 남편과 자주 가는 빵집에 들러 라테 한잔 마시고 운동을 하러
피트니스센터로 올라갔다
운동을 시작 한지 반년이 되었지만 아직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잘한 변화 들은 몸소 체험하고 있다.
이제는 빵집에 앉아 갓 구운 빵 냄새를 솔솔 맡고서도 그 유혹을 뿌리치고 커피 한잔만
딱 하고 운동을 갈 수 있다.
또 예전의 나라면 운동을 가지 않아도 좋을 핑계가 무한 리필인데 주말 이면
어김없이 운동을 간다.
그리고 처음 5kg 짜리도 쩔쩔매던 내가 지금은 45kg짜리도 거뜬하니 그만큼
힘과 루틴이 생겼다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매번 쭉쭉 올라가기만 하던 체중계가 일단 멈춰 섰다.
우선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갱년기라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있어 체중증가는
예정되어 있던 건데.. 더 이상 무한정 올라가지는 않고 있으니 말이다.
상쾌하게 헬스장으로 들어가니 입구부터 한산하다.
요즘은 여름이라 그런지 헬스장이 텅 비어 있을 때가 많다.
여전히 2층에 근육 강화 코너 들은 사람들이 많지만 언제나 바글바글 하던 러닝 머신을 비롯한 유산소 운동 코너들은 비어 있을 때가 많다.
덕분에 매번 원하는 자리에 가서 할 수가 있다.
본격적으로 휴가 철이 시작 되면 더 여유롭게 운동 할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창가 쪽에 있는 러닝머신에 자리를 잡고 걷기를 시작하고 있는데 평소에 늘 먼저 나와 있던 남편이 그제야 내쪽으로 걸어오며 새로운 소식을 전해 줬다.
남편은 헬스장 왼쪽 끝에 있는 남자들 탈의실이 잠겨 있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뭔 일 인가 물었더니 한 달 동안 공사를 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대체 탈의실을 찾아 헤매느라 늦었노라 했다.
나는 러닝머신의 숫자를 올리며 "그럼 그동안 남자들은 어디서 옷 갈아 입어?"
라고 물었고 남편은 "우리가 애용하는 스트레칭 룸"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이번달은 남자 탈의실 다음 달은 여자 탈의실 이렇게 돌아가며
공사를 한다고 했다.
공사 기간 동안 스트레칭 룸은 임시 탈의실로 개조되어 사용한다는 거다.
독일에서는 보통 여름에 실내 수영장, 실내 체육관등의 수리들을 많이 한다.
아무래도 방학과 휴가철이 겹치고 날씨가 좋아 야외 활동이 늘어나 실내
이용객의 숫자가 다른 때에 비해 적어지는 시기 여서 그렇다.
오래된 탈의실이 새것으로 바뀐다는 건 무지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럼 스트레칭은?
그제야 창가 쪽에 쪼르미 줄지어 나와 있는 스트레칭 기구들이 보였다.
위치가 영 거시기 했다.
아늑하게 안쪽으로 들어가 분리되어 있던 스트레칭 룸이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
다 보이는 창가에서 보란 듯이 가열찬 스트레칭을 하기는 쫌 그렇지 않은가
거기다 진동 롤러 기는 계단식 유산소 기 바로 옆에 걸쳐지듯 세워져 있었다.
저걸 어떻게 사용하라는 말인지…
저 통돌이처럼 생긴 롤러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다리 등 할 것 없이 돌아가며 마사지를
받듯 뭉친 근육을 풀어 줄 수가 있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좋아라 하는 템 중에 하나다.
우리도 유산소 운동을 하고 꼭 한 번씩 근육을 풀어 주기 위해 진동 롤러 마사지 기를
사용하는데 그걸 두 달이나 못쓴다고 생각하니 왠지 아쉬웠다.
아쉬운 눈으로 창가의 스트레칭 기 들과 진동 롤러기를 보다가 난데없이
지난번 일이 떠올라 러닝머신 위에서 부들부들 떨며 웃었다.
걷거나 뛰거나 할 때 호흡이 되게 중요한데.갑자기 웃음이 터지니 연거푸 숨을 쉬게 되어 옆구리가 아파왔다.
아이고 배야 ㅋㅋㅋ
내가 빵 터진 사건은 스트레칭 룸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애용하는 스트레칭 룸은 팔, 다리, 어깨, 등, 허리 등, 등을
풀어 주도록 되어 있는 각기 종류 다른 스트레칭 끼들 이 다섯 개로 나뉘어 놓여 있고 방 중간쯤에 있는 기둥이 하나 있다
그 앞 쪽에는 각자 사용 후 다음 사람을 위해 닦아 놓으라고 뽑아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물휴지와 휴지통 이 놓여 있다.
창가 에는 넓은 창문만큼 큼직한 벽면이 두 곳에 있다.
그곳에서 맨손 체조 같은 스트레칭이 용이하게 공간이 나뉘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맨 구석에 커다란 통 모양으로 생긴 진동 롤러기가 놓여 있다.
일명 통돌이 얘는 앉아서 다리를 얹어 놓고 스타트를 누르면 30초가량 둥글게 둥글게 롤러가 돌아가며 다리 근육을 풀어 준다.
길게 위쪽으로 맞춰 앉으면 허벅지 쪽, 다리를 앞쪽으로 접듯이 당겨서 짧게
들어 올리면 종아리 쪽 또 등 허리 쪽은 내려가 앉아서 들이 대거나 아예 누워서 대고 있으면 같은 방법으로 롤로가 굴러 가며 근육 전체를 골고루 문지르듯 풀어 준다.
한마디로 어디든 들이 대고 스타트만 눌러 주면 알아서 마사지가 되는 거다.
그렇게 통돌이는 부위 별로 근육을 풀어 주는 데 탁월해서 인기가 많다.
그날도..
먼저 와 있던 처자가 앉아서 허벅지 근육을 풀어 주고 있길래 나는 순서대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창가에서 벽 잡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으며 그 다른쪽 벽면에 체격이 큰 남자 한 명이 기린처럼 목을 늘리듯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다들 각각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퓩~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잘못 들었나 했는데
다음번엔 퓨퓨퓨퓩 하는 의문의 소리가 연타로 귓가에 꽂혔다.
나는 고개를 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그 이상한 소리는 나만들었는지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다시 한번 두리번 대니 벽 잡고 있던 남편이나 기둥에 서 있던 남자는 모두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런데..
통돌이 위에 앉아 있던 여인네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익어 있었다.
오~ 너구나 그소리 바로 너로 구나~!
그 퓨퓨퓨퓩 거리며 또렷하게 들려오던 소리는 마치 타이어 또는 풍선 바람 빠질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고..,
태연한 척 핸드폰을 뒤적이며 통돌이 위에 앉아 있던 그 처자의 튼실한 허벅지
저 먼 곳에서부터 메아리처럼 울려오던 소리임이 분명했다.
귀까지 빨개진 그녀의 얼굴이 그것을 증명했고 진동으로 돌아가던 통돌이의 힘찬 움직임으로 마이크처럼 울려댄 음향 효과뿐아니라 방향제처럼 방 전체로 은은히 퍼져 가던 그 숨길 수 없는 스멜이 그걸 뒷받침했다.
사람이 운동을 하다 보면 장운동이 활발해져 그럴 수도 있지 이해 한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콧속에 빨려들어 오듯
훅 하고 들어온 스멜에 나도 모르게 "어억!" 하는 외마디 비명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정말이지 그럼에도 꿋꿋하게 통돌이 위에 앉은 그녀에게 묻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 너 대체 뭘 먹은 게냐?"
대형 유리로 되어 있는 스트레칭 룸은 전면이 두 개의 커다란 유리 창문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안에서는 창문을 열 수가 없도록 말 그대로 통짜로 되어 있는 통유리다.
안에는 환기 시설이 되어 있지만 이 예기치 못한 사건은 창문이라도 활짝 열고 환기를
시켜야 직빵일 텐데 방법이 없었다.
힘차게 돌아가는 통돌이를 타고 점점 방안 가득 퍼져 가는 환장하겠는 스멜 때문에 코를 잡고 싶을 때...
그녀는 결정타 한방을 더 퓨욱 하고 날렸다
이번건 소리뿐만 아니라 스멜도 그전의 것들 보다 더 강력했다.
이쯤 되면 웬만한 사람 같으면 하던거 멈추고 잽싸게 자리를 뜰만도 한데..
그녀는 달랐다.아무렇지도 않은 척 버티고 있는 그녀가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혹시라도 움직이면 "제가 그랬어요!“라고 자백?하는 꼴이 될까봐 못 움직이나 싶어 안쓰럽기까지 했다.
정말 속에서는"야! 그냥 싸고 오지 그러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밀려 왔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녀의 밀폐된 공간에서의 만행이 어느새 귀 막고 있던 두 남자에게도
빠짐없이 전해질 때쯤..
양쪽 허벅다리와 종아리 근육을 모두 풀고 난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포즈로 새빨간 얼굴은 숨기지 못한 채 여유로움을 가장한 발걸음도 빠르게 사라 져 갔다.
나는 그녀의 양심 찔린듯한 적나라한 뒷모습을 보며 빵 터졌다.
그리고 무지 입이 간질 간질해 졌다 아마도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이렇게 외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동네 사람들~! 나는 다 안다 쟤가 여기서 뭔 짓을 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