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주말 아침 우리는 운동 가방을 챙겨 들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영락없는 봄 날씨 여서 인지 주말 같지 않게 헬스장 안은 꽤나 널널했다
어쩐 일이래 를 되뇌며 향긋한 카푸치노 한잔을 마신다
처음부터 이곳이 마음에 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카페 분위기의 휴식 공간이 있다는 거다
운동 시작 하기 전이나 운동 끝내고 앉아서 한가로이 커피 한잔 마시고 있다 보면
여유롭기도 하고 왠지 뿌듯해진다.
마치 학창 시절 시험기간에 공부는 안 하면서 도서관에 책 펴놓고 앉아 있으면 괜스레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던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때론 커피를 마시러 온 건지 운동을 하러 온 건지 헛갈릴 때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운동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게
핼스장 에서의 카푸치노 한잔은 운동을 가기 위한 꼬드김 이자 빠지지 않고 나온 것에 대한 샐프 칭찬 스티커 같은 것이다
커피 한잔 후에는 스트레칭 룸으로 가서 가볍게? 몸을 풀어 주고 러닝 머신 위에서
1km 정도를 빠르게 걷는다.
조금 빨리 걸으면 10분 이내가 되기도 하고 천천히 걸으면 15분이 되기도 하니 시간은 10분에서 15분
정도로 잡되 운동 전에 워밍업으로 하는 러닝은 1km로 짧게 정했다.
워밍업을 하고 Egym을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왔다.
아래 러닝머신과 워밍업 하는 코너들이 텅 비어 있길래 여기도 여유롭겠지 했는데 웬걸 여긴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층에는 코너별로 공간들이 7개가량 나뉘어 있어서 요기서부터는 각자 원하는 것 위주로 움직인다.
남편은 먼저 코어와 근육강화 코너에서 원하는 곳을 골라하는 걸 좋아하고 나는 Egym부터 하는 걸 좋아해서 각자 할 것 하고 다시 만난다.
Egym은 전에도 잠깐 설명한 바 있지만 다리 앞뒤로 운동, 팔 안으로 밖으로 운동 등허리 위아래로 운동 이렇게 6가지 종목을 기계별로 나누어 운동하는 코너다.
그전에 트레이너와 미리 사람마다 몸크기와 가능한 무게를 맞춰 두어서 카드만 갖다 대면 이름이 뜨는 것과 동시에 그 사람에게 맞는 운동이 설정된다.
그야말로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 코너이니 '이거 팔 길이는 제대로 맞췄나?' '무게는 너무 무거워서 허리에 부담 가는 거 아니야?'
'어? 다리 길이가 너무 짧게 지정되어 있어서 무릎이 너무 접히는 거 아니야?' 등등 기계마다 다른 설정에 대한 고민을 따로 안 해도 되어서 운알못인 내게 편안한 코너 중에 하나다.
어쨌거나 Egym 중에 첫 번째 인 다리 운동을 하기 위해 창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한분이 천천히 끝을 내고 다음으로 넘어가셨고 나는 내 운동 수건을
걸쳐 두고 물휴지를 뽑고 있었다.
독일 핼스장에서의 에티켓 중에 하나가 운동기구에 흘린 땀이 묻지 않게 각자 수건들을 깔고 한다
그리고 운동 후에는 수건을 깔았음에도 손이 닿았거나 몸이 닿았던 곳들을 다음 사람을 위해 물휴지로 꼼꼼히 닦아 준다.
때문에 헬스장 도처에 물휴지 뽑는 곳과 휴지통이 놓여 있다.
그런데 길고 뾰족하게 생긴 여인네가 다가와서는 내게 "여기선 순서 대로 해야 해!"라고 했다.
헐 얘 봐라~내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내 순서인데 뭐 어쩌라고?
그게 무슨 시나락 까먹는 소리인고 하면..
Egym에서는 보통 1번부터 6번까지 순서대로 2바퀴 또는 3바퀴 돌고는 한다.
비는 곳마다 사람들이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 다른 사람의 앞을 막지만 않는다면
문제 될게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3번을 하고 있는데 4번 할 차례에 누가 4번이 비었다고
쪼르르 가서 먼저 가로채서 하면 계속 앞뒤로 엉킬 수가 있어 이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1번부터 시작해서 6번으로 끝을 냈으면 몇 바퀴 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막 1번을 하려고 먼저 기다린 사람 뒤에 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6번을 끝내고 1번을 해야겠는데 먼저 기다리고 있던 사람에게
"지가 먼저 해야 겠슈!"라고 한 거다.
흡사 관람차 순서대로 기다리다 자리에 앉는데 한번 타고 내리면서 "내가 한번 더 타려고 해!"
라며 기다리고 있던 사람에게 "넌 다음 것 타!"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 이라고나 할까?
순서대로 자리가 났고 내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먼저 시작하는 게 맞다
그런데 왠지..
요 얌체녀 에게 참 교육을 시켜 줘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 예의 없고 상도덕 없는 처자는 헬스장에서 나름 유명한 사람이다.
늘 검은색 운동복을 위아래로 입고 염색한 검정머리를 높이 치켜올려 묵고 눈썹도 시커멓게
칠하고 다니는 그녀를 우리는 시커먼스라 부른다.
이 시커먼스는 무슨 운동을 하든 간에 앞에서 운동하는 사람 마음 불편 하게
바싹 옆에 붙어 서서 기다린다.
밀착경호도 아니고 밀착 기다림 이건 뭐냐고..
빨리빨리 끝내고 얼른 비켜라는 무언의 몸짓 과도 같지 않은가
사람이 함께 운동을 하려면 서로 배려라는 것을 해야지 말이야
같은 운동이라 할지라도 사람마다 걸리는 시간이 다르지 않은가.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함께 운동하는 공간인데..
지맘대로 하고 싶으면 집에다 헬스장을 만들던가..
나는 속으로 오냐 잘 됐다 너도 뒤에서 누가 너처럼 딱 달라붙어서 기다리는
그 밀착 기다림의 쫄깃한 맛을 한번 맛보렴 하는 생각으로..
"그래? 그럼 네가 먼저 해!"라고 쿨하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그랬더니 고년이 글쎄 당연하다는 듯이 씩 웃고는 자리에 앉지 뭔가
나는 그녀가 평소 그랬듯이 숨소리도 서로 들리도록 가까이 붙어 서서 기다려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도 그건 불편했던지..
내게 저기 비었는데 저기서부터 하는 건 어때?"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 썩소를 날려 주며 "아니 싫어 나는 순서대로 하는 게 좋아!" 라며
대화를 핑계삼아 더 가까이 가 주었다.
그랬더니 운동을 하다가도 나를 쳐다보며 "저쪽도 비었네 저쪽부터 거꾸로 돌면 되겠네!"
라며 내 운동 순서를 지가 정해 주지 않는가?
나는 이때다 싶어 너 말 잘했다 를 담아 "그렇게 거꾸로 하는 게 괜찮을 것 같았으면 네가 거기서부터 하지 그랬어?"라고 했다.
나의 얄짤없는 반박에 시커먼스는 자기도 모르는 체 고개를 세차게 위아래로 끄덕이며 “맞지!”라고
했다
그리고는 생각해 보니 뭔가 거시기 했던지...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는 운동을 마무리하고 다음 운동으로 넘어가면서도 "진짜 고마워!"라고
했다
나는 눈빛에 앞으로 조심해 를 얻어 너그러운 척 미소를 날리며 "별말씀을~!"을 날려 주었다.
아마도 시커먼스는 Egym에서 만큼은 다시는 그녀 위주의 순서라는 말을 꺼내 들고
"내가 먼저 할게!"라는 얌체 짓을 하지 못할 것이다.
운동을 빡시게 한날 보다 더 홀가분한 날이었다.
To 애정하는 독자님
울 독자님들.. 잘 지내고 계시지요
잠수 명인 김자까 인사드립니다.ㅎㅎ
쓰고 싶은 이야기들은 한참인데..
매번 뭔 놈의 일들이 이렇게나 많이 생기는지...
지나고 보면 한주가 후딱 가있고 잠시 뭐 하다 보면 한 달이 지나가네요
어찌나 시간은 쏜살 같이 흐르는지.. 계획한 것에 반도 못하고
슉슉 지나가는 날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매일 건강하게 계절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제목은 요즘 젊은이? 들이 뭐뭐 썰 푼다 이렇게 쓰길래 한번 따라 해
보았습니다 재미있으셨나요?
또 짬짬이 이야기보따리 풀러 오겠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시기를요
독일에서 김중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