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사우나 토크
이제 헬스장을 다닌 지 몇 개월 되었다고 새로 들어온 신입이 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얼마 전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한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많다. 이건 어떻게 하나? 저건 어떻게 할까? 저문 은 무슨 문인가?
등등..
운동에 관해서는 아직 누구에게 알려 줄 만큼 되지 못하지만 헬스장 안에 내부 사항은 빼꼼하게 안다.
해서 가끔 공간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알려 주고는 한다 마치 꽤나 오래 다닌 사람들 같은 포스로 다가..
그중에서 종종 듣게 되는 질문 중에 하나가 저 문 열면 뭐가 있나요? 다.
우리가 다니고 있는 헬스장은 2층으로 나뉘어 여러 곳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문들이 널렸다
특히나 여자 탈의실 안은 똑같이 생긴 문이
주르미 줄 섰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왔다 갔다 해야 할 앞쪽에 출입문 왼쪽으로 화장실문 또 그 중간에 샤워장 문 그리고 맨 오른쪽에 사우나로 들아 가는 문이 있다.
똑같이 생긴 케비넷들 옆에 똑같이 생긴 문들이 방향마다 있는 셈이다.
어떤 어벙한 사람은 출입문과 화장실문을 헛갈려서 나갔다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누구겠는가? 그 어벙한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사우나로 가는 문을 열면 그곳에도 문들이 수두룩이다.
문을 열면 바로 왼쪽 끝으로 안이 들여다 보이는 사우나가 있다.
안이 온통 나무로 되어 삼층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사우나 안은 나처럼 체격 있는 사람은 대여섯 명이 들어가면 꽉 찰 테고 날씬이 들은 열명까지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크기다.
중간중간에 우리네 목침처럼 나무로 되어 있는 베개들이 있고 사람들이 많지 않을 때는 아예 자빠지시는 사람도 많다
그 사우나 옆에는 미니 샤워실이 있다 하얀 호수가 뱀이 똬리 튼 듯 끼워진 수돗가와 나란히 두 개의 샤워기가 부착되어 있다
하나는 미적지근한 물이 또 하나는 한여름에도 시리게 차가울 물이 소낙비 내리듯 쏟아진다.
한 번은 사우나 안에서 수다 떨다 빨간 고구마가 되어 나온 적이 있었다.
열을 시킬 겸 건강에도 좋다 하니 냉수 틀었다 기절하는 줄 알았다.
건강해 지려다가 쇼크사로 갈 뻔했다
미니 샤워장 바로 옆에는 우리로 하면 한증막이라고 해야 할까?
하얗고 뜨거운 증기가 가득한 Dampfbad라는 욕실이 하나 나온다 그 안에 앉아 있으면 마치..,
안개가 자욱한 후덥지근한 열대 식물원 또는 정글 안에 앉아 있는 착각이 들고는 한다
재밌는 것은 어릴 때는 덥고 답답해서 그렇게도 싫던 한증막이 나이 드니 몸이 노글노글 해 지고 좋더라는 거다.
그리고 그 옆으로 또 문이 하나 더 나온다 그곳이 남녀 공용 사우나로 가는 길이다.
어느 날 바로 그 앞에서 신입이 하이케를 만났다 내가 만난 일곱 번째 하이케였다.
독일에서 하이케라는 여성의 이름은 주로 나이 40대 이상에서 많다
마치 우리 때 한 반에 서너 명 이상은 되었던 은주 또는 지영 이 처럼 자주 만나진다.
커다란 타월 하나 들고 사우나로 들어가려는데.. 남녀 혼용 사우나로 가는 문 앞에
누가 봐도 어제 등록했어요라고 보이는 신입이 한 명이 엉거주춤 서있었다
회색 운동복 바지에 수박색 운동셔츠를 입고 짧은 단발쯤 되어 보이는 금발머리를 하나로 꽁지처럼 묶고 선 중년의 여인네가 내게 물었다
"여긴 뭐 하는 데에요?" 그 문 들어가는 앞쪽 벽에 코딱지 만하게 화장실 표시 같은 남녀 그림이 붙어 있고 그 밑에 더 작은 글씨로 웰니스라고 쓰여 있지만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때는 누군가 에게 묻는 게 제일 빠르지 않겠는가
나는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저 쪽 문을 통과해서 가면 남자 탈의실이 있고 남자 사우나 가 있고
그 옆에 남녀 혼용 사우나 와 누워서 편히 쉴수 있는 휴식공간이 들어가 있데요 거긴 더 크고 넓데요"
내가 실제로 들어가 본 것이 아니니 남편에게 들었던 대로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자신의 몸을 빠르게 한번 훑어 보더니 "아유 굳이 원친 않네요!" 라며 웃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제스처라 함께 웃었다.
그리고 나는 집 보러 온 사람에게 집구경 시켜 주는 동네 부동산 아주머니처럼 손가락을 들어 "조 쪽이 여성 전용 사우나고 요 쪽이 여성 전용 증기욕실이에요 그 옆에는 미니 샤워실이고요 밖에 있는 샤워장은 훨씬 크고요 따뜻한 물은 그쪽에서 나와요 이쪽은 냉수 그리고 밍 큰 한 물이에요"라고 자세히 덧붙여 주었다.
그리고는..
커다란 인디언핑크빛 수건을 드레스처럼 싸매고 사우나로 향했다
문을 여니 안에서 훅하는 열기와 나무 향이 나를 반겼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사우나 안에 수건을 펴고 그 위에 안아 벽 쪽에 붙어 있는 색색의 모래시계 중에 하얀색을 택해 거꾸로 돌린다.
하얀색의 모래가 소리 없이 떨어진다. 5분 10분 15분 간격으로 빗금이 그어져 있는 모래시계를 말없이 쳐다보는데 사우나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누군가 들어오나 보다 했는데.. 아까 그 꽁지머리 여인네였다.
우리는 세상 솔직한 모습으로 마주 앉아 통성명을 했다
그녀의 이름은 하이케 내가 예상했던 대로 엊그제 등록하고 사우나 쪽은 처음 들어와 보았다고 했다.
그녀는 담배를 피우다가 끊어서 갑자기 살이 찐 데다가 갱년기가 시작되어서 도저히 운동을 안 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했다.
익히 아는 증상이다 우리 환자들 중에도 금연하다가 담배 대신 간식 먹으며 살이 급 찐 사람들이 더러 있다.
또 갱년기는 지금 내~가 그 덕분에 후덕해진 사람이라 너무 잘 알지 않겠는가
우리는 비슷한 연배에 갱년기라는 같은 코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운동을 시작하니 식욕이 당겨서 오히려 살이 늘고 있다고 했다.
하이케는 나도 그렇다고 물개 박수를 쳤다.
웃고 있는 하이케에게 나는 “헬스장 에서 해주는 강습은 들어가 보았니”?라고 물었다
그녀는 운동을 해서 조금 몸이 단단해지면 요가 또는 힙합 댄스 등의 강습을 받으려고
한다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을 바라보듯 쳐다보며 "나도 그래!" 라며
저번에 "요가 수업 하는 것 창문 너머 봤더니 동작이 만만치가 않아!"라고 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던 우리의 "나도 그래!"
토크가 메들리처럼 이어지며 언젠가 코미디 프로에 패러디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오래된 영화에서 최민식 배우님의 그 레전드대사 "내가 느그 서장이랑 어~! 사우나도 가고 어~! 밥도 묵고 어~! 하던 그 장면 말이다.
역시나 서로 가릴 것 없는 모습으로 사우나에서 나누는 대화는 진솔하게 되고 급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나도 어! 그래 어!" 토크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우나 문이 다시 한번
벌컥 하고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