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안 여성 전용 사우나
헬스장 안의 건식 사우나 문이 덜커덕 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가녀리지만 단단해 보이는 여인네가 위풍도 당당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여성 전용 사우나는 공간이 좁은 편이다.
다섯 명 정도 들어와 있으면 그 안이 꽉 찼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날이면 안 그래도 더운 공간 안이 답답해지기 마련이다.
나무 의자 위로 각자 커다란 수건을 피크닉 돗자리 펴듯 내놓지 않는다면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게 다행이지만 말이다.
때로는 남녀 혼성 사우나 쪽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유로울 때도 있다.
독일 사우나에서는 우리의 찜질방처럼 옷을 입고 가는 것이 아니라 태초의
모습 그대로 들어가야 한다
때문에 위생을 위해 각자 가져간 수건을 바닥에 깔고 앉도록 정해져 있다.
에덴동산 같은 모습의 혼성 사우나가 놀라울 일이 아닌 동네에서
그래도 여성 사우나가 따로 있는 게 어딘가.
당당히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온 여인네는 왠지 특별한 포스가 풍겼다.
굽슬굽슬한 단발머리 정도의 금발머리를 바짝 틀어 올리고 목부터 등짝까지
그리고 양팔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문신이 눈에 띄어 그런지 몸에 난 커다란 칼자국
같은 것 때문인지 어쨌거나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녀는 빽빽한 사우나의 중간을 가벼이 가로질러 성큼성큼 위쪽으로 올라왔다
보통은 사우나 안으로 들어 오려다 가도 먼저 와 있던 사람들로 인해
자리가 비좁아 보이면 대부분 열었던 문을 다시 닫는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어느새 좁은 사이를 삐집고 들어와 잽싸게 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 모습이 마치 만원 버스에서 누군가 내리려고 벨을 누를 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자리를 잽싸게 꽤어 차는 모습처럼 날랬다.
그 순간 중간 정도의 자리에 앉아 있던 노란 수건을 깔고 있던 여인네가
갑자기 들어와 비좁은 자리를 파고 들어와 앉은 상대방을 한번 훑어 보고는
급기야 황급히 일어나 나갔다.
한 사람이 나가고 여유공간이 조금 생기자 그녀가 움직였다.
목부터 등짝까지 그려진 독수리가 날게 생긴 그녀는 긴 다리를 쭉 하고 뻗치고 앉았다.
하필이면 내쪽으로 말이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나는 그녀의 왼쪽 위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기세에 괜스레 졸아서 이미 살짝 옆으로 비켜 준지 오래다
그런데 내가 사우나 밖으로 나가려면 그녀가 뻗쳐 놓은 다리를 거두워 줘야 한다
즉 필히 저기 미안한데 다리 좀 치워 주시겠어요라고 말을 해야 한다는 거다.
사실 독일에서 문신, 타투는 별게 아니다.
그냥 모양내느라 머리를 파랗게 염색하는 것과 별반차이 없다고나 할까?
문신, 타투하면 우리에겐 왠지 어둠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지만 여기서는 그저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이 동네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타투를 하고 다니는 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물론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지만 중년들도 꽤 있고 노년층 에도 종종 있다.
찾아보니 독일 사람들의 타투, 문신은 1905년 에서 1910년 사이에 처음 독일 함부르크라는 항구 도시
에서 출발 했다고 한다.
보통 손목이나 다리에 있는 타투는 작은 편이고 그 모양은 꽤나 다양하다.
남자들은 글씨, 또는 뱀, 거미, 칼, 독수리. 십자가 같은 것을 그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여자들은 작은 꽃이나 부채, 별 같은 것을 그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흑빛의 타투로 그려져 있는 것을 더 자주 보기는 하지만 게 중에는 칼라풀 한 문신들도 많다.
수영장이나 사우나를 가면 몸을 병풍 삼아 칼라풀 한 타투를 전신에 감고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만나게 된다.
마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온몸에 그림을 그려댄 사람들 중에는 몸에다가 일기를 썼는지
옛날 옛적 라틴어 글씨를 또는 아라비아어로 도배되어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사람의 얼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기도 하며 꽃집을 하는지 몸에 그려진 나무나 꽃들이
식물원 저리 가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종이에 그림을 그리던 자기 몸에 그림을 그리던 그건 개인의 자유이니
상관없다
그런데 헬스장 안 사우나에서 만난 문신녀? 의 문신은 왠지 섬뜩하게 다가왔다
목부터 등짝까지 내려오는 곳에는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독수리가
팔뚝에는 건드리면 물릴 것 같아 보이는 지네 인지 전갈 인지가 그려져 있었고
배 쪽에 칼로 그은듯한 흉터가 크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사우나로 들어 온후 벽에 붙은 모래시계에서 모래 빠져나가듯 남아 있던 사람들도
한 명 두 명 사우나 문을 열고 나갔다.
사실 그들은 할 만큼 해서 시간 돼서 나갔을 텐데 괜스레 그녀의 남다른 기세에 눌린 나는
왠지 그녀 때문인 것 같아 보였다.
덕분에 어정쩡하게 앉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나는 얼떨결에 그녀와
단둘이 사우나에 남아 있게 되었다.
젠장!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친 나는 마지못해 말을 걸기 시작 했다.
"요즘 날씨가 추워졌어요 이제 가을이 없는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사람과도 무리 없이 나눌 수 있는 대화 날씨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아기 같은 목소리로 사근 사근 하게 답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똥 같은 날씨 에요!"
참고로 독일에서 똥이라는 단어를 욕으로 자주 쓰는데 그 의미는 우리의 18과 닮아 있다고 하겠다.
시크하고 허스키한 보이스를 상상하던 나는 그녀의 반전 저는 목소리에 놀라고
그 목소리에 찰진 욕이 구성지게 느껴진 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날씨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주거니 받거니 생각보다 자연스레 이어졌다.
보기? 와는 전혀 다른 그녀는 평범한 회사원이었고 취미로 친구 들과 만든
락밴드에서 가끔 공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신과의 콜라보로 내가 흠칫했던 칼자국은 스키장에서 스키 타다
다쳐서 수술을 했던 모양이다.
한동안 헬스장도 못 다니고 재활하다가 얼마 전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쏘리~! 친구 내 상상 속에서 너를 완전 다른 곳에 취직시켰더랬다 ㅋㅋ
그날이 내가 산드라를 만난 첫날이었다.
우리는 그 후로 헬스장 절친이 되었고 만날 때마다 폭풍수다를 떨어 댄다
요즘 그녀는 만날때 마다 헬스장에서 하는 강습 중에 겁나 빠르게 자전거를 질주하는
스피드 바이클을 함께 하자고 꼬셔 대고 있다.
물론 아직 까지 나는 다리가 짧아 패달에 안닿을수도 있다,요사이 무릎이 살짝 안좋아 진것 같다.
시간이 잘 맞지 않는다 등등 요 핑계 조핑계로 빠져나가고 있지만 말이다.
알고 보니 그녀는 운동광이었다.
어쩐지 근육이 엄청 탄탄한 해 보이더라니..
오늘도 나는 입에만 근육이 붙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