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지난해가 되어 버린 크리스마스 와 연말에 벌어진 일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이삼일을 앞두고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른 때 같았다면 맛있는 음식 익어 가는 냄새와 식구들이 북쩍이며 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온기를 더했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 모여 풀하우스가 되었지만 집안 공기는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 엄동설한에 보일러가 나오지 않아 벽난로에 불을 지피지 않으면 집에서도 외투를 입고 앉아서 서로의 입김을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티브이에서 가끔 보던 야외촬영장인 줄.. 집안에 냉기가 가득할 뿐만 아니라 온수도 나오지 않으니 수도꼭지에서는 냉수가 쏟아진다.
(궁금한 분들은 요기 클릭:100 년 된 독일집의 겨울 이벤트-!)
애초에 백 년 된 집의 보일러 문제가 들어
번쩍 눈 깜짝할 사이에 해결될 것이라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곳이 어디인가? 뭐든 했다 하면 오래 걸리는.. 마치 서류를 위해 절차를 만들어 낸 듯한 서류의 나라...
성질 급한 놈은 기다리다 숨 넘어가기 딱 좋은 나라 독일이 아니던가
그래도 그렇지...
일사천리는 아니어도 일의 진전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이지 보일러 교체도 아니고 배수관 교체 공사가 이다지도 오~래 걸릴 것이라
생각도 못했다.
하필이면 타이밍 거시기 하게 크리스마스 연휴와 연말이 맞물려 공사를 진행해 줄 회사를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주방에서 밥 하다 냅다 동상 걸리게 생긴 상황이 몇 주째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모여 다섯 식구 완전체가 되자 사용할 그릇도 늘어갔다.
컵 이나 접시, 국그릇 같은 자잘한 그릇들은 식기 세척기를 돌린다 해도 양념이나 기름이 뭍은 큰 냄비나 프라이팬 같은 것들은 손으로 설거지해야 한다.
매일 빵만 뜯어먹을 수도 없고 밥 하나 국 하나를 하려 해도 씻고 다듬고 썰고 해야 하는 일이 좀 많은가
중간중간 물을 끓여 쓴다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말이다.
수도꼭지 틀면 나오는.. 흡사 지리산 계곡물을 퍼온 듯 차가운 물을 만지며
주방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손이 꽁꽁 언다.
뻘게진 손가락이 채 녹기도 전에 채소 등을 씻고 다듬고 썰고 하다 보면 밥하고 국 하나 끓이는 일도 쉽지가 않지만 그마저도 감사할 따름이다.
다행히 전기는 들어오니 말이다.
얼음물 같은 물로 주방일을 하다 보면 종종? 아니 자주!
마치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한 느낌이 들고는 한다.
그러나 그때는 없던 전기도 들어오고 전자제품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몇백 년 전이었다면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작불 때 가며 가마솥에 밥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얼은 손가락 일 망정.. 손가락 하나 들고 우아하게 누르기만 하면 취사가 시작됩니다 라는 낭랑한 아낙네의 음성을 들으며 밥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중간중간에 언 손을 녹여 가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가족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식탁을 차려 냈다.
비록 평소보다 준비하고 치우는 시간이 두 배는 더 걸리고 한겨울 산꼭대기 야외에서 식당을 하는 듯한 착각이 일기는 했으나 그래도 가족이 모두 모여 맛난 것을 나누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 또한 적응하기 나름이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겨울에 보일러도 안 나오는 냉방완비의 집안 공기도.. 얼음물과 함께 하는 주방 일도 이렇게 저렇게 대안들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온 가족이 주로 거실에서 지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루 종일 벽난로에 나무를 넣고 때우다 보면 마치 산꼭대기 산장
으로 놀러 라도 온 기분이 된다.
또 욕실 하나를 정해 놓고 전기 주전자로 수시로 뜨거운 물을 끓여서 식구 대로 얼음물 양치질과 세수를 면했다.
그리고 잘 때는 각자 침대에 한국에서 가져온 전기장판과 아마존에서 급하게 마련한
전기장판을 각각 깔아주고 작지만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전기난로들로 찬기운을
가시게 해 주었다.
그 덕분에 잠들기 전에 잠시나마 찬기운을 희석시킬 수 있었다 단지 그것들은 틀 때뿐이라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미리 뜨거운 물을 끓여서 통에 담아 두었다가 설거지할 때 섞어서 사용하거나
식재료를 다듬고 자르고 할 때마다 덜어 둔따뜻 하거나 미지근해진 물에 손가락을 담가 녹였다.
마치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이 아쉬운 대로 문명의 것들을 대신할 무언가를 하나씩 만들어 가듯 하나둘 대안책들을 마련해 갔다.
그런데 도통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샤워다.
온 가족이 극기 훈련 나온 것도 아닌데 얼음물 샤워를 할 수도 없고 다섯 명이나 되는
식구들을 위한 방대한 양의 물을 하루 종일 끓여 댈 수도 없으니 말이다.
어떻게 이 대략 난감한 문제를 해결 하나?
매일 온천 수영장을 가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가..
요즘 들어 더 열과 성을 다해 다니고 있는
헬스장에서 남편의 눈에 띈 문구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바로 "크리스마스에는 당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을 초대하세요!"
라는 헬스장 크리스마스 연휴 이벤트 문구였다.
땡큐 하게도 우리가 다니는 헬스장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 또는 1월 1일 등의 공휴일에도
오픈 시간을 평소와 달리 해서 문을 열었다.
즉 모든 날에 문을 여는 연중무휴였다.
덕분에 크리스마스 연휴로 텅텅 비게 될 헬스장에 회원마다
누구든 한 사람씩 매일 초대할 수 있는 무료 이벤트를 시행한다고 했다.
남편은 이거다! 하며 쾌재를 불렀고 나는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각각 두 사람을 초대하기 위해서는 회원인 우리가 필수로 함께 가야 했고
우린 한 명이 더 있다. 그거야 한 명 에게 일주일 짜리 헬스장 이용권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끊어 주면 되니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식구들의 삼시세끼 또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은가
그것도 오래 걸려서...
우리 집 세 아이들은 연령대만큼이나 각자하고 있는 일도 다르다.
집에서야 모이고 헤쳐 모이고 하기가 용이했으나 일단 어딘가에
시간 맞춰 간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뜨거운 물 신경 쓰지 않고 따뜻하게 씻을 수 있다는 것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우선 아이들 마다 다른 시간을 요리조리 맞추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감자 볶다가도 국 끓일 재료 다듬다가도 헬스장 가자! 하면
운동 가방 챙겨 들고 헬스장으로 달려갈 준비를 해야 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식구들이 따뜻한 물로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크리스마스 연휴와 연말 연초 할 것 없이 매일 온 가족이 헬스장을 갔다
샤워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덕분에 운동도 했지만 우린 따뜻한 물에 씻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런 우리의 사정을 모르는 트레이너 들은 남들 놀러 가는 연휴에도 변함없이
운동 가방을 들고 헬스장을 찾은 우리를 칭찬 가득한 눈길로 보았다.
다섯이나 되는 비슷하게 생긴 온 가족이 매일 헬스장에 출근 도장을 찍으니
얼마나 눈에 띄고 파이팅 넘쳐 보였겠느냐 말이다.
연휴는 끝났지만 오늘도 우리는 운동을 핑계 삼아 씻으러 헬스장 간다
그 어느 때 보다 열심인 우리들의 슬기로운 헬스장 사용법이었다.
To. 애정하는 독자님들
해가 바뀌었지만 아직도 냉방에 살고 있는 달달달
김자까 인사드립니다.
이런저런 일들로 새해 인사가 조금 늦었습니다.
울 독자님들
모두 모두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2026년도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요.
아직도 보일러가 해결이 안 되고 있어서 앞으로도 보일러 타령이
몇 편은 더 나오지 싶습니다 ㅎㅎ
중간중간 새로운 내용 들고 오겠습니다
독일에서 당분간 자연인 흉내 중인
김중희 드림